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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설 Oct 25. 2022

이방인의 기록 1 (2022)

이방인의 기록 1 - 이방인.

내가 가진 뜻을 존중해주고 함께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랑하는 가족과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친구를 가졌다. 세상이 정한 행복의 조건, 그 대부분을 가졌다. 그 조건을 가진 자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것을 정한 자를 만난다면 뺨을 때리리라. 그리고 물어보리라, 행복을 당신은 누군데 그 기준을 정할 수 있냐고, 신도 정하지 못한 그 기준을 당신은 무슨 권리로 정할 수 있냐고. 행복과 사랑, 그 누구도 이에 대한 객관적 정의를 내릴 수 없다. 각자의 정의를 가지고 그에 맞춰 살아간다, 그것을 하나의 정의로 정형화하고자 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와 같다. 개인의 정의, 그리고 그 정의를 내리지 못한 존재를 나는 이방인이라고 칭한다.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말한다. 반항하는 인간보다는, 방황하는 인간에 가까운 이방인.

방황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목표를 정하지 못해, 자신을 알지 못해, 혹은 확고한 목표를 가졌으며 자신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아마 나는 세 번째의 경우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괜찮은 일자리를 가져 돈을 모으고, 출판사를 차려 반려동물 한 마리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육체적으로는 소박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부유한 삶을 원한다. 그를 이룰 수 있는 나의 능력과 장점을 알고, 그를 이루지 못할 나의 결점과 부족함을 안다. 이것이 내가 그리는 유토피아, 내가 쓰는 책의 절정이자 정오. 그러나 바라는 미래가 확고한 탓에, 나를 너무나 잘 아는 탓에, 작은 오점과 예상 못한 변수에 대응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저항하지 못한다.

행복의 기준을 정하지 못한 이방인은 타인의 행복의 기준을 따라야만 하는지, 자신 독자적인 행복의 기준을 찾기 위한 여정을 보내야만 하는지 정할 수 없다. 둘 중 무엇을 택한다고 하더라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뇌한다. 선택의 연속에 지쳐, 혹은 선택할 수 없어, 혹은 하나를 잃는다는 사실이 두려워 선택하지 못한다.

꿈을 가졌음에도, 확고한 목표를 가졌음에도 길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비참하다. 제아무리 구름 하나 없는 하늘에 떠오른 태양이 길을 밝혀도 길을 찾지 못한다. 방황의 이유는 대부분 외적인 요소가 아닌 내적의 고뇌.

지향하는 자는 언제나 방황한다고 한다. 아마 그렇다면 나는 평생 이방인의 삶을 살아가리. 인간은 언제나 바란다. 절대 채울 수 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때문에, 나는 나를 이방인이라고 칭함과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이라고 말한다. 인간에 가장 가까운 실존하는 존재 중 하나라고.

찬란하지는 않더라도 고귀하게 살아가자는 친구의 말을 나는 기억한다. 아마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금과 같이 방황하며 보낼 것이다. 후회하고, 두려워하고, 고뇌하며. 그저, 나의 마지막 소망은 이 삶이 전부 끝나고 타인이 나의 삶을 읽었을 때 하나의 예술로 기억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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