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습작

습작(1)

by 하설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현재 나는 한 스타트업의 Product Manage(이하 PM)으로 재직하고 있다. 작년 2월 창업을 하고 여러 경험을 하다, 지난 10월 이곳에 정착하며 11월 기존 사업자를 폐업했다. 이제 약 4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일은 익숙하지 않고, 언제나 부족하고 배울 부분이 많아 여전히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두렵고 지치기도 한다.


핑계지만, 일을 시작하며 기력적으로도 그렇고 시간적으로도 글을 쓰기 위해 앉아 몇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문득 '글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 수십 분을 보내도 한 문장도 적지 못해 모니터를 덮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글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나는 이렇게 글을 적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내 미래는 언제나 글과 문학, 예술과 함께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니 열정이 식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설령 열정이 식은 것이라고 하면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극복할 자신이 있다.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인가?

결과적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어떻게 썼는지 잊었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글을 쓸 때 '글에 집중하는 방법'을 잊었다고 말하고 싶다. 2017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며 문득 지나친 사물과 사람, 생각 따위를 글로 적어내기 위해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매일 적어도 한 문장을 적었고, 그 첫 문장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 만개의 문장을 적었다.


습관을 언제부턴가 놓아버렸다.

무언가를 무의식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끔 하는 '습관'을 들인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한 행동을 습관처럼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반복하며 해야 하고, 이 과정은 수많은 에너지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짧게는 며칠이, 길면 몇 년을 해도 습관처럼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제 습관처럼 좀 익숙해졌나' 싶어도 몇 주, 며칠만 하지 않아도 다시 잊어버린다. 처음 하는 것처럼 어색하고, 어려운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결론

결론적으로, 나는 처음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글을 써야 한다.


이유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사랑에 대한 이유를 찾지 않고 사전적인 정의를 정의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여전히 나는 글을 좋아하고, 내 미래를 예술로 정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계속 과거에만 머무르고 있다.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강에 떨어진 비가 아닌 도로에 떨어진 빗물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음에 안주하지 않고, 늘 방황하고 유랑하며 변화해야 함'을 뜻한다.

하지만, 지금 나는 과거에 이룬 업적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오직 그것만을 내세우고, '이 정도 했으면 됐지' 생각하며 도전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하게 말해, 나태해졌다. 작가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나의 펜촉이 마르고 있다'.


방법

아마 지금 일이 없었더라면 2017년에 그랬던 것처럼 밤을 새워가며 글을 써 책을 출판했을 것이다. 무언가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 결과에 대한 성과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고 믿는다. 하지만, 지금 나의 상황은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현재 나에게 있어 1순위는 현재 재직하고 있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글을 시작으로 다음 주부터는 1주일에 1~2회 '1시간 동안' 글을 써 업로드하려고 한다.

'무엇을 써야겠다' 주제를 정하지 않고, 완성이 되지 않아도 정확하게 '1시간만' 글을 쓰고 업로드할 예정이다. 1주일에 1~2회면 1달에 4~8회 정도로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수준이라고 판단했고, 충분히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제목은 '습작(n)'으로 통일하고자 한다.

매번 제목까지 고민하기에는 1시간이라는 시간이 매우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습작 1. 꿈과 이상에 대하여

문득 생각해 보니,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에 대하여 이야기한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글을 쓰는 이유는 다른 글에서도 여러 번 이야기해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어렸을 때 일이다. 정확하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책에서 '올림픽 100m 달리기에서 동메달을 딴 선수는 은메달을 딴 선수보다 더욱 행복을 느낀다'는 글을 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은 아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뜻이었겠지만, 당시 나는 '왜 다 메달을 땄는데 똑같이 행복해하지 않지?'라는 생각을 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대회에서 메달을 땄다는 것은 '세계 최고의 반열에 있음'을 증명한 것과 같은데, 행복함보다 아쉬움을 느낀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모두가 승리자이자 우승자가 되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교에 진학 후 문학 관련 교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교수님은 '시인과 소설가의 대립'에 대한 주제로 간단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소설가는 '시는 소설보다 상대적으로 쓰기 쉽기 때문에 문학으로 인정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고 하고, 시인은 '시는 고대부터 이어진 문학 장르인데,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문학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라고 주장한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교수님이 속한 학회나 그룹에서만 특수하게 일어나는 상황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쓴 글이 어떠한 장르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건 내가 전문적으로 글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작품이 장르와 카테고리에 묶인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해석과 이해에 대한 억압과 통제'를 가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사상과, 그리고 내가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말도 되지 않는 꿈일 수 있지만, 그래서 그런지 내가 가진 이상은 '모든 장르가 통합되고 파괴된 세계'이다.

시는 소설이 되고, 소설은 시가 되고, 그리고 그것은 수필이자 에세이가 되는 세계, 그리고 문학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문학이 되고, 그것이 춤이, 음식이 되는 세계이다.

내가 꿈꾸는 세계는 창조적 파괴이자 창조적 혁신이다. 그리고 결국 모두가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세계이다.


모두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고, 동일한 시선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세계를 꿈꾸고 있다.

이것이 나의 예술의 마지막 지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혹여 내가 이루지 못한다면 후대의 누군가가 이뤄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서로를 진정한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 시작점이 내가 쓴 글이기를 바라는 것이 내가 가진 현재의 이상이다.


KakaoTalk_20250207_235310493.jpg 2025.02.07.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