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강자인가
사람들이 서로를 약하거나 강하다고 보는 한, 진정한 교제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개념 없이는 어떠한 교제도 성립될 수 없다. 모든 인간이 동일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은 우리의 강한 반응과 약한 반응 뒤에 숨겨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에서 교제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인간을 강하거나, 약한 외향에 따라 판단하는 이 시대의 커다란 오류를 반박해야 한다...우리는 지금 강자에게 아첨하고, 약자를 무시하는 거짓된 철학 속에 살고 있다.
폴 투르니에, 『강자와 약자』
묵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예수는 죽기 전날 왜 제자들의 발을 씻겼을까, 생각하며 다이어리에 일기를 끄적인 적이 있다.
자신을 부인하고 도망가버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그분의 모습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제자들은 예수가 죽기 전날까지 서로 누가 큰지 다투었다.
내일 죽을 예수를 바로 앞에 두고, 높은 자리에 가기 위해 다투는 제자들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가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그리고 무릎을 꿇은 채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순간
강자와 약자가 존재한다는 제자들의 환상은 힘을 잃는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 발을 씻기라 말한다.
그들이 만든, 큰 자와 작은 자가 존재한다는 착각이 무너지기 전엔 참된 교제가 불가했기에,
어쩌면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렇지 않게 교회에서-내가-타자를 강자와 약자로 이분할 때, 나는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잠시나마 서로의 발을 씻기려고 할 때,
강자와 약자가 존재한다는 착각은 얼마간 힘을 잃는다.
어쩌면 그래서 계속해서 발을 씻기는 자리에 나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는 타자의 발을 밟고 올라서려 하기 때문에
그리고 끊임없이 내려다보려 하는 사람은,
결코 하늘을 보지 못하기에 말이다.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으며,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
『요한복음 13장』 , 새번역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