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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설 Mar 08. 2024

왼쪽 뺨마저 돌려 대는 것의 의미

예수의 비유로 살펴본 약자의 존엄과 비폭력 저항 (1)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요한복음 5:39, 표준 새번역


일반적으로 우리는 오른쪽 뺨을 맞은 후 왼쪽 뺨도 돌려대라는 의미를 생각할 때, 누군가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그를 사랑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당시 예수가 말씀하셨던 시대의 배경과 문화 속에서 이 말씀을 생각해 보면 조금은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약 2000년 전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는, 왼쪽 손을 사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 여겨졌습니다. 왼쪽 손을 사용했을 경우 공동체에서 10일간 추방되어 참회하는 벌을 받기도 했지요. 그래서 오른쪽 뺨을 맞았다는 건, 오른쪽 손등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뺨을 때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왼쪽 손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뺨을 때렸다면 부정한 일로 여겨졌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뺨을 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른손 손등으로 치는 방법이다...즉 그 의도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치욕을 주기 위험이며, 그 "꼬락서니"를 제대로 알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월터 윙크(Walter Wink), 『예수와 비폭력 저항』, 32p


그리고 당시 유대교 문화에서는 손등으로 상대방을 때리는 일은, 매우 모욕적인 일로 여겨졌습니다. 같은 계급의 사람이 주먹으로 상대방을 쳤다면 벌금이 4전이었지만 손등을 사용했다면 400전이 부과되었지요. 하지만 상위 신분의 경우에는 벌금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가 말한 오른쪽 뺨을 맞은 사람은, 상급자에게 손등으로 맞은 하급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같은 신분의 사람을 손등으로 치지는 않았기 때문에, 만일 그랬다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만했다...손등으로 때리는 것은 하급자를 훈계하는 통상적인 방법이었다. 주인은 종을, 남편은 아내를, 부모는 자녀를, 남자를 여자를, 로마인인 유대인을 손등으로 때렸다. , 33p


그렇다면 예수는 왜 오른쪽 뺨을 손등으로 맞은 사람에게 왼쪽 빰도 내어주라고 했을까요. 월터 윙크는 이를 단순한 포용이 아닌, 비폭력 저항의 의미로도 해석합니다. 오른쪽 뺨을 맞은 이가 왼쪽 뺨을 내어줄 때, 상대방은 한 가지 선택지에 놓입니다. 오른쪽 '손바닥'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뺨을 때려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오른쪽 손바닥을 사용한다는 것은, 당신과 나는 동등한 입장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나를 모욕하려고 했으나, 나의 존엄은 당신의 폭력으로 손상되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의 지위로 나를 누르려 했으나, 당신은 나의 품위를 뺏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지요.


그가 (오른손) 주먹으로 친다면 그는 스스로 상대방을 스스로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이 강자는 약자를 비인간화할 수 있는 힘을 빼앗긴 것이다. , 33p


아마 유대인 청중은 예수의 비유를 듣고 박장대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의 압제, 신분 사회 등 억압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에게, 예수의 비유는 요즈음 표현으로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졌겠지요.


그리고 지금도 (어떤 의미에선 2000년 전보다 더) 많은 폭력이 지위의 차이, 권력의 차이, 소유의 차이로 인해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 폭력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폭력에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는 당시 유대인 청중에게(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어느 누구도 우리의 존엄과 품위를 해칠 수 없다는 말을 전하고 싶지 않으셨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속상하지만 역사는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지위의 차이, 가지고 못 가진 것의 차이 등의 이유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은 우리 주위에 만연해 있습니다. 저 또한 그 폭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으로서, 누구도 당신의 존엄과 품위를 해칠 수 없다고, 당신 모습 그대로 소중하고 존엄하다는 말을 전하며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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