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오는 곳
우리는 술잔을 기울일 때 김광석 노래를 자주 듣곤 했다. 그 시절은 영화 스텝들 처우가 상당히 열악했던지라 우리들이 마시는 술은 늘 값이 제일 싼 소주나 막걸리였고, 담배 역시 값싼 디스 플러스였다.
영화인의 꿈을 키우며 밤 새 기울이던 소주 한잔 그리고 피어오른 담배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한 어둑어둑한 선술집. 그곳에 김광석의 노래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냥 마시다가도 김광석 노래가 나오면 쓰던 소주가 갑자기 달았고 값이 싸서 선택한 식은 어묵탕은 술술 넘어갔다.
우린 곧잘 밤이 새도록 주로 영화 현장 얘기나 영화인으로서 품은 빛나는 꿈 그리고 지리멸렬한 현실과 깜깜한 미래, 텅 빈 잔고,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 불교, 여행, 지리산과 히말라야, 북미 인디언, 우주의 별과 행성등 직장에 다니는 우리 나이의 평범한 세상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주제의 이야기들을 주로 나눴던 것 같다. 우린 그렇게 같은 길 위에 있었고 같은 꿈을 꾸었다.
우린 술잔을 기울이며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동이 트고 나서도 헤어지는 게 아쉬웠고, 이튿날 눈을 뜨면 당연한 듯 또 서로를 찾고는 했다. 우리는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이 힘든 세상의 유일한 의지처이자,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으며, 같은 영혼을 가진 것만 같은 소울 메이트였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은 가평에 있는 현등사였다. 전날부터 함박눈이 펑펑 내린 그날, 온통 하얀 세상을 달리며 우린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들었다.
준비하던 영화에서 내몰리듯 나온 뒤 한동안 울적해하던 그가 짧은 여행을 가자고 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바보 같은 우린 알게 되었다. 그 여행은 먼 길 떠나기 전 우리와 마지막 추억을 남기기 위하였음을.
전 날 내린 함박눈이 소복이 쌓이고
하얀 입김이 뽀얗게 피어오르던 날이었다.
그날, 그는 유달리 해맑게 웃었다. 우린 아이들처럼 함께 눈 위에 누워 실없이 웃으며 뒹굴고 눈싸움도 신나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 뒤 그가 불쑥 떠나고 난 뒤, 하얀 눈처럼 활짝 웃던 그날의 사진을 어머님께 보여드렸더니 이렇게 활짝 웃는 모습은 어린 시절 이후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그가 떠난 뒤, 겉으로는 예술인이니 영화인이니 한 껏 멋지게 포장된 그 이면에 온갖 인간군상들이 득실득실한. 정치질하고 서로를 짓밟고 교활하게 배신하고 올라서야 살아남는, 그 역겨운 곳에 다시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그 아이를 한껏 이용하고 내쳐서 죽음으로 몰아가고도 버젓이 장례식장에 온 이들과 그들이 보낸 영화사 화환을 집어던지지 못한 내 처지가 바보천치 같았다.
오래전, 나중에 세상을 떠나면 장례식에 어떤 노래가 흘러나왔으면 좋겠는지 이야기 나눴더랬다. 그리고 그때 그가 말한 곡은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였다. 친구의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내가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의 장례식 장에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를 작게나마 틀어 놓았던 것 그리고 화장터로 가는 길에 영정사진을 가슴에 꼭 품고 온 마음으로 소리 없이 우는 것뿐이었었다.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외로움에 시달리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별 볼 일 없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살려고 일을 하고 또 아프면 병원에 가는 내가 미웠다.
용기가 없어서 차마 죽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그렇게 별 볼일 없이 지내며 영화와는 상관없는 일거리를 찾던 어느 날, 내게 뜻밖의 제의가 하나가 들어왔는데 그건 김광석의 뮤지컬이었다. 왜?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채웠다. 김광석의 노래는커녕 그 뮤지컬 제목조차도 듣기 괴로워 망설이던 나를 주변인들은 설득했다. 떠난 이를 위해서라도 꼭 해야 한다고.
우리의 추억이 가득한 김광석의 노래들로 가득 채워진 뮤지컬.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난 100회 공연과 앙코르 공연까지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내 존재 자체가 수 없이 끝도 없는 시커먼 땅 속으로 처박히는 기분으로 겨우 버텼던 날들이었다.
어느 날은 중요한 리허설 때도 주체 못 하고 객석에 앉아 바보같이 오열을 했다. 음악소리가 공연장에 크게 울리고 객석은 불이 꺼져 아무도 못 봤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리허설이 끝나고 배우중 한 명이 넌지시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보았고 물론 그는 그 말을 믿지 않았겠지만 너무 감동이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며 바보같이 둘러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역시 매 공연마다 불 꺼진 무대 뒤 구석에서 몰래 자주 울었다.
계절도 마침 추운 겨울, 극장에 오갈 때 나오는 뽀얀 입김과 내리는 하얀 눈을 봐도 우리의 마지막 여행 그리고 그 안에서 활짝 웃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게 억지로 끌려가듯 매 회 공연을 오고 가며 한 겨울 찬 길바닥에서 그리고 어두운 공연장 구석에서 홀로 자꾸 울었고 그래도 이를 악물고 내게 주어진 100회 공연과 앙코르 공연까지 꽉 채워 일을 끝냈다.
그리고 나는 그 뒤로 다시는 김광석 노래를 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