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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love Sep 21. 2017

#20 유명해지기 전에 가야 할 여행지, 소피아

여행의 끝자락, 가을 끝에 와있는 불가리아를 만나다.




11월 1일


어느새 11이란 숫자가 눈에 보였다. 10월에 시작했던 여행이 벌써 한 달 쯤 되었나보다.


10월 30일 밤, 두브로브니크에서 13시간 야간버스를 타고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에 도착했다. 봉고차처럼 작은 버스에 외국인들 속에서 한국인이 한 명 있었다. 스코페는 갈 생각도 못했던 도시이기도 하고, 스코페에 가서도 소피아로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상황에서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13시간을 달리고 달려, 몇개의 나라를 스쳤는지도 모르겠고, 정말 엉덩이가 아파서 못 앉아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쯤, 스코페에 도착했다. 다행히 소피아가는 버스가 괜찮은 시간에 있었고 배가 고파서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다. 버스터미널 근처에 큰 쇼핑몰이 하나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 쇼핑몰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스코페 물가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그 비싸다는 두브로브니크에서 와서 그런지 스코페물가는 껌값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시킨 클럽샌드위치, 까르보나라, 샐러드, 콜라 한잔이 11000원...? 우리나라에서는 까르보나라 하나만 11000원 받을까 더 받을까 인데... 말도 안되는 가격이다 정말. 여기 살고싶어.


그렇게 음식을 주문하고 앉으려고 하는데 그곳에서 식사를 하시던 한국인 남자분이 말을 걸었다.

"한국인이세요?" 

까만코트에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은 그분은 오흐리드에 사시는 한국분이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리가 마케도니아 디나르를 안찾아서 짐을 못맡겼다고 하니까 짐맡길 돈도 주시고 콜라도 하나 더 사주셨다.. 우와. 우린 스코페에서 천사를 만났다. 오흐리드가 그렇게 예쁘다고 말씀하셔서 언젠가 꼭 가자고 다짐했다.


스코페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나는 다시 오후버스를 타고 불가리아로 향한다. 갈 길이 멀어도 너무 멀다. 스코페에서도 약 4~5시간이 걸리는 불가리아. 내 여권에는 발칸반도의 나라란 나라 도장은 다 찍혀있다. 모든 국경을 넘어서 간 불가리아. 밤에 도착해서 도저히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택시를 타고 호스텔로 왔다. 불가리아에 사시면서 블로그를 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 블로그를 읽고 호스텔모스텔이 별로라 그래서 추천하는 다른 호스텔로 왔는데.. (나이팅게일호스텔) 정말 여긴 베드버그가 나올 것 같았다. 밤이라서 이부자리를 제대로 보지는 못했는데.. 샤워실도 너무 열악하고.. 여행하는 동안 뛰쳐나가고 싶은 숙소는 처음이었다. 나는 산티아고 걸을 때도 바닥에 자는 알베르게에서도 괜찮다고 했던 사람인데, 웬만하면 다 잘 자는 편인데 여긴 너무 찝찝했다.


그리고 나중에 만난 사람들이 하는 말이 호스텔모스텔이 진짜 좋단다. 여행자도 많고 밥도 괜찮고 등등 말을 한다. 그냥... 사람들 많이 가는 곳 갈 걸.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거의 18시간 타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씻고 포근하게 쉬고 싶은데... 샤워실은 냄새나고 베드버그 나올 것 같고..ㅋㅋ 정말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부리나케 나와서 바로 호텔을 갔다. 호텔을 가자마자 씻고 잠을 청했다.


이래서 블로그는 다 믿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또 깨달았다. 역시 실패의 경험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무난했던 모든 숙소에 감사하게 된 날이었다.



씻고 쉬다가 오후 시간이 되어서야 거리로 나왔다. 가을 옷만 가지고 왔는데 이곳의 사람들은 이미 초겨울 복장을 하고 있었다. 패딩에 털모자에. 나 혼자서 가을 옷을 입고 좋다고 돌아다녔다. 소피아는 이렇게 길에 헌책을 내놓고 파는 경우가 많았다. 읽지도 못하는 키릴 문자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소피아의 힙한 곳, "Raffy"

감이 떨어졌는지 메뉴를 잘못시켜서 먹지도 못하고 나왔다.



길을 걷고 있는데 한숨이 나왔다. 가을의 기운이 폴폴 풍겨서 그런건지.. 좋은 사람들이랑 있다가 갑자기 혼자가 되어서 그런건지.. 문득 혼자가 되고 보니 온 세상이 조용했다.


지금은 혼자다니고 혼자 밥먹는게 정말 너무나 익숙해졌지만, 저때만 해도 혼자 여행을 해도 혼자하는 모든 것들이 익숙하지 않았다. 항상 긴장되고, 편하지 않고, 눈치를 살폈다. 혼자라는 것을 편하게 느끼기엔 어린 나이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 땐 그랬는데..


오래된 소피아의 트램. 트램도 가을 색이 난다. 변하지 않은 이 모습들이 이곳의 매력이다.


내가 소피아에 오게 된건 딱 하나였다. 유명해지기 전에 가야할 여행지에서 소피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유럽에서 가장 여행하기 저렴한 곳'으로 꼽히기도 했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간 소피아는 소개 된 것과는 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었으나, 도시를 걸어다니면서 느꼈던 고즈넉함은 정말 반할 만 했다. 소피아에 있으면서 동유럽의 파리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느낌과 이미지가 파리랑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할로윈데이 다음 날이어서 그랬는지 길거리 곳곳에 호박을 팔고 있었다. 호박 크가 엄청 거대해서 신기하고 놀라고, 사람들은 놀란 내 모습에 웃기도 하고 그렇게 흘러가는 오후였다.



소피아 거리를 걷고 있는데 가족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예쁜 아이와 웃음이 예쁜 엄마, 그리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아빠. 그 모습이 너무 행복해보여서 사진 찍어도 되냐고 카메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아가랑 엄마가 활짝 웃어준다.


참 순박하고 즐거운 사람들이다. 소피아 사람들은 무뚝뚝한 얼굴과는 다르게 친절함이 넘쳐난다.


도착한 날, 저녁을 먹기 위해 문을 연 레스토랑을 찾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부부한테 길을 물어보니 가던 길을 돌아서 나를 레스토랑 앞으로 데려다주고 다시 발길을 돌려 돌아갔다. 고맙다는 인사에 웃으며 돌아서던 얼굴, 소피아 사람들의 매력에 반한 날이었다.



분수마저 음악이 되던 소피아 공원. 매력적인 도시에서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매력있는 도시, 물가는 더 매력적으로 싼 도시, 유명해지기 전에 가봐야 할 도시.


나에게 시간이 없는게 안타까웠다. 발칸을 다시 한번 돌고 싶어졌다. 마케도니아 오흐리드도 가보고 싶고 불가리아의 다른 도시들도 가보고 싶어졌다. 여행을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욕심이 많아지고 계획은 커져만간다.

'곧 다시 나올 수 있겠지?'


또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당신의 순간을 담습니다]


필름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여행한 이야기.

유럽의 여름, 가을, 겨울을 필름으로 담아낸 사진집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필름으로 세상을 담는 것이 즐거웠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했다.

풍경보다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담고 싶었다. 필름은 찍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너무나 달라지는 사진이기에, 여행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겪었던 순간의 감정들을 온전히 담아내려고 했다. 어린 시절 아빠가 찍어주었던 사진처럼, 그리움의 감성이 묻어나는 사진들이 힘든 시간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 알지 못했던 유럽의 매력, 볼 수 없었던 영화같은 순간들, 책에서는 더 많은 필름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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