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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Nov 15. 2024

정장

우당탕탕, 삼십 대 중반의 첫 직장 적응기(3)

아빠는 정장과 거리가 멀었다. 정장 입은 아빠의 사진은 엄마와의 결혼식 사진이 전부인데, 내가 아빠와 엄마 결혼식에 갔을 리는 없으니, 고로 아빠의 정장 입은 모습을 직접 본 기억이 없다. 엄마는 아빠가 재킷에 청바지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평생 현장에서 근무한 아빠에게 정장은 어색하고 불편했으리라.

나 또한 정장과는 거리가 멀다. 정장만 입으면 은박지로 싼 껌처럼 몸이 굳는다. 첫 정장은 누나가 결혼할 때 처음으로 입어보았다. 제법 가격이 나가는 네이비 계열 정장이었는데, 지금껏 입어본 횟수를 손에 꼽는다. 증명사진을 찍을 때, 면접을 볼 때, 경조사에 갈 때 아니면 입을 일이 없었다. 평소에는 입지도 않으니 점차 옷장 구석으로 밀려났다. 정장을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혀 갔다. 살이 많이 쪄서 단추가 잠기지도 않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계륵이었다. 정장은 격납고에서 쓸쓸히 녹슬어만 갔다.
 
꾸역꾸역 나이를 먹는 동안 여러 회사에 지원했다. 경쟁력이 떨어져서 면접까지 가보기도 힘들었다. 정장은 무슨. 구두랑도 멀어져만 갔다. 대신 일용직 일을 시작하며 작업복과 안전화에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정장과 최대한 멀어졌다고 생각했을 무렵, 면접 제의가 왔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장을 꺼내는 날이 오니 몹시 긴장되었다. 오랜 세월과 중력이 다려준 꼬깃한 정장을 꺼내 입고, 어설프게 넥타이를 걸쳤다. 발뒤꿈치에 밴드를 붙이고, 아저씨 양말이라고 부르던 양말을 당겨 신었다. 꼬질꼬질한 구두를 대충 문질러 신고 면접장소를 향해 출발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간절했던 만큼 긴장해서 목각인형처럼 면접을 보았다. 간만의 면접이니 경험만으로도 값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다. 취업에 성공했다.

이곳은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회사여서 정장을 입고 일하지는 않는다. 정장 입장에서는 아쉬울 테다. 정장은 그렇게 내게 엄지 손가락을 내밀고, "I will be back(나는 돌아올 것이다)."을 외치며 옷장 속으로 돌아갔다. 요즘은 경사가 있어도 편하게 입고 가느라 정장을 꺼내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처럼 정장을 찾을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이렇게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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