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 작가님과 함께 하는 글쓰기, 간결하게 쓰기
스마트폰을 들었다 놓는다. 엄마 번호가 떠있는 화면이 검게 바뀐다. 한숨을 쉰다.
30년 전, 엄마가 사라졌다. 아빠는 돈을 벌러 갔다. 동생과 둘이 자취를 시작했다. 아빠는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는 법과 밥 짓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왔다 갔다. 한동안 번개탄을 피워댔으나, 그 간격은 점점 길어졌다. 봄이 오고, 여름이 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밥을 하고, 햄이나 계란을 굽고, 김을 더해서 밥상을 차렸다. 도시락은 고모들이 준 반찬에 소시지를 더해서 채웠다. 그 사이 아빠는 미역국 끓이는 법을 알려주었고, 저절로 된장을 풀어 먹을 줄도 알게 되었다.
자취를 하기 전에는 설거지도 한 번 해보지 않았다. 엄마는 말버릇처럼 "너는 이런 거 하지 마."라고 하셨다. 할 줄 아는 사람이 평생 하는 거라고 알려주지 않고, 공부를 시켰다. 동네에서 제일 먼저 한글을 익혔고, 매일 책만 읽어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심부름도 보내지 않았다. 엄마는 대학이 가고 싶었다고 했다.
"외할머니가 외삼촌만 대학 보내고, 난 공부도 못 하게 맨날 일만 시켰어. 공부는 니 외삼촌보다 엄마가 더 잘했는데... 외할머니가 미워어."
그렇게 말하시던 엄마는, 지겨운 싸움 끝에 이혼하고 집을 나갔다. 이혼은 아빠와 헤어지는 것만은 아니었다. 나와 동생과도 헤어졌다. 엄마는 집을 나가며, 내게 집안일을 가르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진미채 같은 반찬 하는 법은 알려줄 걸 하고.
엄마를 다시 만난 건 결혼 전이었다. 17년 전, 헤어진 지 10년이 넘은 후. 다시 만난 엄마의 질문은,
"대학은 다녔니?"
였다. 길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들을 보면 나를 떠올렸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소화가 되지 않는 것 같이 답답했다. 물을 마셨다.
남편의 어머니는 결혼을 반대했다. 이혼한 집 자식이라 싫다고 했다. 이혼하지 않기로 약속받고 결혼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남편의 어머니는 엄마가 죽은 것이 아니니 결혼식 하루만 이혼하지 않은 사돈 노릇을 하길 바라셨다. 아빠는 거절하며 큰 고모를 옆자리에 앉혔다.
큰 고모는 아빠보다 10살 이상 나이가 많았다. 엄마는 하객으로 참석하여 아빠 눈을 피해 다니며, 멀리서 결혼식을 보고 가셨다.
엄마는 헤어진 시간을 메꾸려는 듯, [좋은 생각]에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적어 보내고, 만날 때마다 옷을 사주셨다. 내가 아이를 낳으니, 외손주들도 잘 챙겨주신다. 그래도 나는 전화를 먼저 걸기를 망설이고, 엄마는 먼저 전화하지 않는다. 지난번에 안부 전화를 하니, 반가워하시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먼저 하면 되지, 하고 툭 말을 던졌다. 엄마는 니가 직장 다니고 아이들 키우느라 바쁜데 내가 어떻게 그러냐고 하신다. 나는 전화를 또 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