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나.
기억은 국민학교 저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에서 지우개를 얼마나 많이 잃어버렸는지, 엄마가 지우개를 박스로 사놓고 내 필통에 하나씩 매일 넣어주었다. 그러면서, “지우개를 필통에 묶어놔야 하나.”하며, 한숨을 쉬셨다. 그런 기억은 있는데, 왜 지우개가 매일 없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우개를 쓰려고 보면 없었다. 아들이 나를 닮았는지, 식탁에 앉아 지우개를 찾는다. 내가 아들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린다. “야, 니 손에 있잖아.” 엄마가 나를 보던 심정이, 이제서야 이해된다.
지우개는 작고 싸다. 그걸 매일 잃어버리는 것은 저금통에 매일 동전을 넣은 저금통의 무게처럼 언젠가 무거워질 것이다. 그처럼 나는 점점 더 비싸고 큰 것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공중전화박스에 지갑을 놓고 왔다. 용돈을 받은 직후라 돈이 많았다. 그런데 거기에 지갑을 놓은 이유는, 아주 가볍다. 친구랑 지나가다가 공중전화에 전화를 걸지 못할 금액이 남은 것을 확인했고, 거기에 동전을 넣으면 그 돈만큼의 통화를 더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실없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나는 몇 십원에 몇 만 원을 바꾸고 왔다.
그렇게 덜렁거리며 사는 나는 대학교를 다니고, 취업을 하면서 사회화된다.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니까, 다이어리든, 노트든 모든 것을 메모하는 습관을 들인다. 지금도 자리에는 달력과, 주간 스케줄표가 나란히 놓여있다. 기한에 맞추어 일을 마치기 위한 매일의 노력이다. 그렇다고 내 덜렁거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은 어떻게든 하는데, 집에 오면 나사가 서너 개 풀린 것처럼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챙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우리 집 달력이 메모장이 되고, 그 달력을 자꾸 보면서 살아간다.
메모에 의존하는 삶
하지만 첫 출장 때는 명함도 챙기고, 정신도 챙겼는데, 노트를 안 챙겼다. 그래서 회의 중에 손을 놓고 멍하니 듣다가 왔다. 하, 얼마나 얼빠진 애처럼 보였을까. 지금이라면 핸드폰 메모장이라도 열어서 메모했을 텐데, 그때 회의록은 어떻게 써냈는지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 첫 출장은 무려 고객사 미팅이었다.
아, 그리고 팀장님과 둘이서 갔다.
아 진짜, 지금 생각해도 너무했다.
팀장님이 노트를 펼치고 메모하는 동안 넋 놓고 있는 사원이라니. 쫓겨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내가 겪은 가장 덜렁대는 사람은 바로 나다.
나보다 덜렁대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진짜 없다.
하, 매일 먹어야하는 약과 화장품을 넣은 파우치가 아무리 찾아도 없다. 진짜 눈물난다.
영하 8도의 추위를 이기고 주차장으로 간다. 차 뒷좌석 바닥에서 찾아왔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