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만우절이라오.
만우절에 무슨 거짓말을 할까, 하고 고민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거나, 올해는 어떤 대단한 거짓말이 있는지 뉴스를 더 꼼꼼히 살펴보는 정도다.
어른이 된 후 가장 기억에 남는 만우절 거짓말은 "나, 셋째 가졌어."라는 아는 언니의 카톡이었다. 그 말에, "축하해!", "언니, 이제 다 키웠는데 무슨 고생이야.", "아니, 아직 금슬이 좋네~." 등등의 답이 이어졌다. 결국 "거짓말이지롱~"하고 만우절이 지나갔다. 하지만 언니의 생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는 듯, 그 해 말 진짜 셋째를 가졌다. 언니는 입이 방정이라고 했고, 우리는 그런 언니를 보며 웃으며 놀렸다. 언니의 막둥이자 늦둥이는 쑥쑥 자라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다.
언니의 거짓말은 마치 생의 예감같이 느껴졌다. 거짓말 같이 일어나는 생의 반전. 이 거짓말처럼 내 인생에도 생의 반전이 있을까? 그래서 내게 유리한 거짓말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살아가며 내게 많은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거울을 보며 거짓말을 했다.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괜찮아."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수없이 내게 되뇌며, 사실인양 나를 달래곤 했다. 괜찮아질 리가 없다고 믿었던 시기에도 그렇게 했다. 달리,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하기도 했다. 그래야 내일 또 살고, 모레 또 살고, 그렇게 살아질 테니까.
어릴 때, 나는 양치하는 것을 싫어했다. 어느 날 양치를 하지 않고 양치를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랬더니, 아빠가 "치약 무슨 색인데?"하고 물어보셨다. "하얀색이지."하고 대뜸 대답하는 나를 보고 웃으시며, "가서 양치하고 치약 색 확인하고 와."라고 하셨다. 할 수 없이 치약 색은 하얀색이라고 굳게 믿으며 양치를 하러 갔는데, 치약이 초록색이었다. 치약이 초록색이라니... 이건 반칙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닦았다.
이때의 거짓말은 양치를 하기 싫었던 마음에서 우러난 한치의 망설임이 없는 거짓말이었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어린 시절의 거짓말은, 하기 싫은 일을 시키기 위한 어른의 거짓말로 바뀌었다. 그렇게 나는 양치하러 가라고 잔소리하는 부모가 되었다. 시간은 내 거짓말의 형태를 바꾸어 놓았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할 거야."라는 뻔한 거짓말이, "넌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나를 위하는 척하면서 나를 다그치는 거짓말보다 친근하다. 그래서 나는 내 거짓말을 교묘하게 다듬어 나를 속인다.
"딱 10분만 운동하고 오자."
그렇게 나서서, 뛰고 땀을 내고 돌아온다. 그래도 이 거짓말은 건강해질 내 삶의 예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헬스장에서 또 거짓말을 하겠지.
"딱 한 번만 더 하자."
이렇게 거짓말은 늘어만 간다.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려, 만우절은 별 쓸모가 없다. 무슨 거짓말을 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이렇게 숨 쉬듯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걸.
내 인생의 반전은 거짓말의 반칙들 사이에서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