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부모님과 화해하는 법

이쁘다는 사과의 말

by 눈별숲
눈별숲 그림, "이쁘다구~"


저녁에 엄마가 전화를 했다.

"왜 전화했냐면~ 이쁘다구~ 어제 그 말을 못 해서..."


전날 엄마 병원에 같이 갔었다. 78세이신 엄마는 꽤 오래전부터 가끔씩 어지러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증상이 있어 정기적으로 검진을 다니시는데, 보통 혼자 가시지만 이번에 신경외과 주치의가 바뀌었다고 해서 나도 가보았다. 아버지는 '우리 딸이 보고 싶긴 한데, 요즘 고단해서 집에서 쉬어야겠다' 하시며 못 나오셨다고 한다. 그렇게 건강하시던 아버지도 85세가 되시니 연세가 드셔서 기력이 없으신가 보다.


병원 진료가 끝나니 점심때가 되었다. 고기도 안 드시고 바깥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가 식당에서 갈비를 먹고 가자고 한다. 고깃집에 엄마가 드실만한 음식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나 혼자 먹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아침 일찍 나온 데다가 집에 돌아갈 길도 멀고 갱년기 증상으로 너무 피곤해서 바로 가서 누워있고 싶었다. 하지만 연로하신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하시니 효도하자는 마음으로 친정에 가서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엄마는 걱정의 여왕이며 모든 것을 당신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특히 엄마가 반찬을 뭘 해서 먹일까 끌탕하는 것이 듣기 싫어서 그냥 돌아오려고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 뵙고 가겠다고 하니 예상했던 반찬 걱정이 곧장 튀어나왔다. 그래서 가는 길에 먹을 것을 사들고 가자고 했더니 밥을 못 먹여서 보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셨는지 가만히 계셨다.


가는 길에 오래된 맛집인 ㅇㅇ통닭이 있었다. 어릴 때 이 골목을 지나갈 때면 꼬챙이에 꿰어져 빙글빙글 돌면서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통닭을 보며 군침을 흘렸었는데 엄마는 한 번도 사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참에 먹어보게 사가겠다고 하자, 엄마는 예상했던 대로 여기는 비싸다며 집 근처 시장에 가서 사라고 한다. 짜증이 울컥 올라왔지만 효도하기로 마음먹고 온 것이니 꾹 참고 엄마가 하자는 대로 지나왔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처럼 시장에 갔더니 치킨집이 문을 열지 않았고 다른 음식점도 포장해 갈 만 곳이 없었다.


엄마는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시더니, 결심한 듯 '그냥 너네 집에 가라'라고 했다.


세상에 어이가 없었다.

그래놓고 그냥 가면 멀리서 일부러 왔는데 밥 못 먹여서 보냈다고 또 끌탕을 할 것이 뻔했다. 짜증이 났지만 이번에도 효도하는 마음으로 꾹 참았다. 이번에는 내가 (예전처럼 화를 내지 않고) 정색을 하고 다른 반찬 없어도 괜찮으니 정육점에서 소불고깃감을 사가서 볶아먹자고 말하고 고기를 샀다. 엄마도 어쩔 수 없이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집에 갔더니 아버지가 주무시다가 나와서 우리 딸 왔다고 반가워하셨다. 한두 달 만에 뵌 아버지는 그새 또 많이 늙으셨다. 요즘 다리가 저리다, 고단하다 하신다길래 아까 병원 앞 약국에서 아버지 영양제를 하나 샀다. 아버지도 남의 말은 절대 듣지 않는 분이시라 쓸데없는 걸 사 왔다며 드시지 않을 것 같았지만, 안 드시면 그냥 내가 가져갈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영양제를 보더니 역시나 '이거 먹어도 소용없...' 하시더니, ‘겠지만, 우리 딸이 사 왔으니 성의를 봐서 먹는다' 하고 한 알을 드셨다. 너무 의외여서 고맙기도 하면서 어안이 벙벙했다. 확실히 연세가 드시면서 마음이 넓어지셨나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엄마는 번개같이 양파와 당근을 썰고 고기를 볶았다. 나는 아기처럼 가만히 앉아서 동생이 엄마 드시라고 사다 놓은 과자를 까먹고, 엄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엄마가 깎아주시는 과일을 먹고, 엄마가 챙겨주시는 용돈을 받았다. 나는 아버지께 용돈도 안 드리고 뻔뻔하게 집을 나왔으며, 버스정류장까지 따라 나온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나의 집에 돌아왔다. 예전만큼 많이 화가 나지는 않았고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했다.


그리고 난 다음 날 엄마가 전화를 한 것이었다. 어제 보니까 내가 날씬하고 아주 예쁘더라고..


예쁘다고 전화를 했다니 뜬금없어 실소가 나왔다. 나는 평소에 옷을 편하게 입고 다니는 편인데, 엄마 모시고 병원 가는 길이니 화장도 간단히 하고 카디건에 슬랙스차림, 즉 출근복을 입고 갔었다. 나름 차려입은 모습을 보아서 그런지, 엄마가 늙으셔서 젊은 내가 예뻐 보였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나에게 예쁜 엄마를 닮지 않고 (못생긴) 아버지를 닮아서 서운하다고 항상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서운했다. 심지어 어느 날은 엄마에게 내가 예쁘냐고 물었는데 '그냥 그렇다'라고 답을 해서 엉엉 운 적도 있었다. 아니, 서운함을 넘어서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예쁘지도 않은 내가 엄마 말을 듣지 않거나 공부를 잘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너무나도 불안했다.


아무튼 이 참에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고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옛날에는 엄마가 나보고 아버지 닮아서 '그냥 그렇다'라고 했을 때는 너무 속상했는데, 엄마가 이쁘다고 하니 기분 좋네~"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맞아요. 나는 외모도, 내면도 참 괜찮은 사람인데! 어릴 때는 '그냥 그렇다'는 그 말이 나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었는지 엄마는 모르지. 나를 낳은 엄마가 나에게 예쁘지 않다고 한 거잖아.. 내가 예쁘지 않아서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고,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서 너무 불안했어요. 그리고, 나도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고..'


심리학을 공부하고 수년간 교육분석을 받으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는 남편과 결혼하고, 이 세상에서 엄마가 가장 예쁘다고 매일 말해주는 딸을 키우면서 나는 이미 치유되었다. 이제는 외모에 대한 열등감도 별로 없고, 엄마가 나를 예쁘다고 하지 않은 점에 대한 원망도 잊고 있을 만큼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엄마가 그렇게 말해주니 꽤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다. "이쁘다고 해주셔서 고마워요.."


더 늦기 전에 엄마에게 이 말을 들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잊고 있던 부분에 대해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사과받고 용서하고 화해를 하게 된 것 같은 마음이다. 엄마는 사과의 뜻으로 한 말이 아니겠지만, 나는 사과로 받아들였으니 이걸로 되었다.


어릴 때 엄마는 나를 예쁘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많이 사랑하셨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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