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치료 일기
놀이치료실에 아이들이 들어오면 인사하고 가장 먼저 손을 씻도록 한다. 여러 아이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이라 청결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동시에 놀이 시작을 알리는 의식의 의미도 있다. 아이들은 빨리 놀고 싶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니 처음에는 손 씻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유를 설명해주면 대부분 수긍하고, 점차 습관이 되어 손을 잘 씻게 된다.
얼마 전 놀이치료를 막 새로 시작한 한 아이는 첫날은 안내대로 잘 씻었는데, 두 번째 날에는 비누칠을 하지 않고 슬쩍 물만 묻혔다. 이유를 묻자 시선을 피하길래, ”여기서는 비누로 손을 씻어야 놀잇감을 가지고 놀 수 있어.“ 라고 하니 마지못해 씻었다.
마침 핸드워시를 새로 사야 해서 아이들이 조금 더 즐겁게 씻도록 할 수 없을까 생각하며 열심히 검색을 하다가 초코향 나는 핸드워시를 발견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바로 구입해 보았다.
초코향 비누에 대한 반응은 예상보다 더 좋았다. 거품 냄새를 여러 번 킁킁 맡아보고 다들 신기하다며 좋아했다. 비누칠을 하기 싫어했던 아이도 좋아하며 열심히 손을 씻었다. 초코 냄새가 오래 간다면서 잠들 때까지 손에서 초코 냄새가 나는 게 아니냐고 장난스레 말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진짜 초콜릿 향이 아니라 '초코 향수 향' 이라는 예리한 지적도 있었다. 덕분에 대부분 즐겁게 손을 씻고 놀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어떤 아이가 비누를 보고 ’브레드이발소‘ 라는 만화에 나오는 '초코' 라는 캐릭터라고 했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만화가 어떤 내용이냐고 물었다.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너무 길어서 나중에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좋다고 하면서 다시 물었다.
" ’초코’ 가 주인공이야?"
" 아니요. ‘브레드’ 가 주인공이에요."
" 아~ 그럼 브레드가 이발사인 모양이구나!"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아셨어요?"
" 선생님이 맞췄네! 제목이 브레드 이발소니까 주인공인가보다 생각했지."
이 대화를 통해 머뭇거리던 아이의 말문이 트이고 주고 받는 대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어 보다 나아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중에 온 고학년 아이가 손을 씻으면서 브레드 이발소의 내용을 명쾌하게 설명해주었다.
"브레드가 이발사인데요, 머리를 기가 막히게 잘 자르거든요. 초코와 윌크는 직원이에요!“
집에 갈 때는 비누칠을 여러 번 하여 손에 초코향을 '코팅' 하고 간다. 특별한 공간에서 특별한 선생님과 보낸 행복한 기억을 오래오래 가져가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이 참 고맙기도 하고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다.
선생님과 함께 웃었던 시간들이 아이들의 마음 한켠에 조그맣게 자리 잡겠지. 그 웃음이 아이들이 겪는 슬프고 속상하고 억울하고 화나는 순간들을 잘 견뎌낼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이다.
놀이치료실에서 오가는 모든 활동과 대화, 느끼는 감정은 아이 마음 성장의 작은 씨앗이다. 이 씨앗들이 아름답게 잘 자라기를 바란다. 나는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작은 일로 크게 웃을 수 있는 이런 순간들이 정말 행복하다.
*덧붙임: 대화내용은 등장인물 개인의 특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각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