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떠나야 한다면.

<신글 4th_Day1> 어느 날 갑자기 노매드가 된다면.

by 화몽

어제는 하루종일 소나기가 한 치 앞을 짐작치 못하게 쏟아지고 멈추고를 반복했다. 물에 빠진 생쥐꼴로 자전거 페달을 밟아대었던 어제였는데. 지금 내가 있는 여기는 대체 어디인지? 어제 내놓은 숨이 고스란히 들이마셔지는 동일한 곳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하긴 5월 말부터 쭈욱 이런 날들의 연속이다. 삼한사온도 아니고 말이지. 어제 내린 비의 흔적이 주차장 차들위에 뿌옇게 남겨진 채 모든 게 새로운 파란 하늘. 코발트블루를 펼쳐 바른 캔버스처럼 높은 하늘에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양 떼들이 총총 모여있다. 나는 종종 목적지를 두지 않고 걷기도 한다. 방향만을 정한채 높이 달려있는 구름의 움직임처럼 불어오는 바람에 의지한 채 발을 옮긴다.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부딪히며 눈을 맞추고 스쳐 지나는 도시의 길 위에서 그들은 무엇을 찾아 그토록 바삐 움직이는지? 초점을 알 수 없는 그들의 눈동자에 비친 나를 볼 때면 나 역시 별 다를 바 없는 도시민인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내가 만약, 집 없는 삶, 유목민의 삶을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만약, 집 없는 삶, 유목민의 삶을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유목민의 삶이란 자유로운 삶과 동일선 위에 있을까? 내가 스스로 떠난 삶이라면 어느 정도 자유로운 순간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등 떠밀리듯 삶의 터전에서 튕겨 나와 떠날 수밖에 없었다면... 이 둘은 그 출발점이 완전 반대 지점에 있는것일듯 하다. 지금 여기에 서있는 나. 내가 집을 등 뒤로 한채 어디론가 떠난다면 전자의 모습일까? 후자가 나일까? 선택권이 내게 있기는 할까? 낯선 출발이라 그런지 물음표들만 가득안고 있는 가슴이 떨려온다. 묘한 긴장감이다. 떠도는 생활이란 것을 상상해본 적은 없으니까.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이미 오랜 시간들을 넓은 바다 위를 부유한 채 살아 왔다. 물과 기름 같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무심한 성향 탓에 버텨낼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에서 단단해지기는 커녕 오후의 사막처럼 말라비틀어져가는 관계가 나를 더욱 목마르게 만든다. 또다시 떠나야 할 때인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워갈때즘 내게 질문 하나가 던져졌다. 익숙한 것들을 내려놓고 작은 가방 하나를 챙겨야 한다면 무엇을 넣어 나설까?


글을 쓰고 있는 책상 위에 여기저기 펼쳐져있는 내 물건들을 살려보았다. 먼저 손이 가는 몇 가지를 챙겨야겠다. 작은 가죽 필통에 캘리그래피를 쓸 수 있는 붓펜과 몇 가지 펜들 그리고 이들을 옮겨 볼 종이 한 꾸러미. 작은 이미지들을 남길 채색 도구, 읽고 그리고 옮겨볼 책 몇 권... 내가 살아있다는 흔적을 남길 네모난 사과 한 알. 이 정도 물건들과 떠날 것 같다. 지금보다 더욱 의미있고 소중한 날이 내 앞에 남겨져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