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가 뭐길래?
노력하라.
성공하라.
사랑하라
목표를 가져라.
수많은 사회의 압박들은 가치를 가져라, 가치를 찾아라, 가치를 증명하라는 말을 돌려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압박은 인류가 발전됨에 따라, 한국에 살고 있음에 따라 쉬지 않는 챗바퀴가 되어 무수히 빠르게 회전하고 있다. 압박에서 벗어나거나 이겨내지 못하면 원치 않는 갈망에 몸담게 되고 결국 번아웃과 우울이 찾아오기를 반복하게 된다. 원하는 것이 뭔지, 노력, 성공, 사랑이 뭔지를 망각한 채로 반복된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쳇바퀴 안에서 도파민에 중독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똑같은 상황 속에서 도파민에 중독되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비정상인 사회이다.
요즘의 그림, 사진 전시회를 보러 가면 나와 가치를 보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부쩍 더 눈에 띈다. 방식에 정답이 정해지진 않았으나 앞으로의 방식의 변화와 고착화될 사회가 두렵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예술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림작가, 사진작가라는 직업을 평하기를 반복된 작업으로 인해 무언가가 완성되었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취미로 그리고, 찍고 작업이 쌓였으니 전시회를 열거나 출품한다. 마케팅을 통해 홍보하고 인기가 많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진을 찍는다. 작품의 예술성에 가치를 매기지 않고 전시회장에 숨겨놓은 그림이나 메시지를 찾으며 거기서 가치를 찾는다. 전시회의 중점은 작품의 가치가 아닌 '내가 이곳을 왔다' '많은 사람이 이곳을 왔다'로 일단락되어 가치가 전환되고 있다. 좋은 작품이 아닌 비싼 작품. 좋은 작품이 아닌 유명한 작품. 이러한 가치의 전환에서 나는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아이러니함을 감당해야 한다.
그림의 가치가 아이러니한 것은 뭐가 예술이고, 뭐가 잘 그린 것인지 모르기 때문인데 나는 안타깝게도 그림을 보면 감각적으로 예술이 느껴진다. 그래서 잘 그린 것보다 예술이 담긴 작품을 좋아한다. 내가 느끼는 감각을 일부 요약하자면 그림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이 느껴진다, 보이기 위해서 기술적으로 표현한 것인지 표현하고자 했던 무언가를 감각으로 표현한 것인지가 느껴진다,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린 것인지가 느껴진다. 이는 한편으로 행운이었으나 요즘의 전시회를 보러 가면 나는 불행하다. 내가 원하는 가치의 작품들은 없고 가치 없다고 느끼는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류가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림의 가치는 예술로 정해지는가, 비싼 걸로 정해지는가, 유명세로 정해는 지는가.
이미 과거부터 그림에 예술을 담는 것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 그림을 잘 설명하는 것이 금전적 가치를 올리는데 더욱 유용했다. 그렇기에 그림에 예술을 담는 것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중요했다. 잘 설명하려면 소수의 사람이 인정하는 예술보다는 다수의 사람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잘 그린 것이 좋았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요즘은 예술도, 잘 그리는 것도, 설명도 아닌 유명한 것이 1순위가 되어가고 있다.
금전적인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사회에서의 가치의 전환은 예술이 아닌 돈이 되었다. 어느 직업이냐를 평가하던 사회에서 얼마를 버냐, 얼마를 가지고 있냐가 우선순위가 되었다. 돈만 많으면 장땡인 사회에서 예술은 죽어가고 있다. 그에 비하면 다행히도 글과 문학은 예술이 아직은 더 선호되는 편이긴 하다. 다만 앞으로의 글의 가치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다행인 부분이 있다. 책도 이미 유명함과 마케팅을 이용해 글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매기는 경우가 많으나 전시회처럼 희소되는 느낌이 아니다. 클래식한 고전책들이 현재에도 높게 평가받고 있음에도 그림처럼 천문학적으로 높은 가격이 되지는 않는다. 책을 의도적으로 절판시켜 한 권이 1억의 가격으로 올리는 도전을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그리고 책에는 예술보다 사람의 역사가 담기기에 돈의 가치와는 다르게 평가되는 부분이 있어서 좀 더 오래 지속되어 생존할 것이다.
과거에 연기를 전공하고 학교를 졸업한 후 한동안 고정된 생각이 있었다. '사람의 말 한마디에도 그 사람의 역사가 담겨 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파생되어 생각한 것이 '모든 사람은 예술을 품고 있다.' 표현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자신의 세상이 있다는 것은 예술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근래 들어 새로운 생각이 자리 잡았다. '모든 작품이 예술이 되지는 않는다.'
반복적으로 그려놓은 그림과 지속적으로 찍어놓은 사진들을 전시회라고 열어 놓았으나 예술이 느껴지지 않는다. 작업을 반복한 것이 예술이 된다고 말하기엔 그림 작가, 사진작가라고 말하기엔 말에 어폐가 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예술을 담지 않은 모든 반복작업이 예술일 수는 없다. 다만 이는 그의 역사가 될 수는 있다. '역사는 예술이다'라는 가치관이라면 그 또한 그 사람에겐 맞는 말이기에 틀렸다고 말한 수는 없다. 누군가의 역사를 보고 예술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요즘 나는 무엇을 가치로 볼 것인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챗바퀴에 빠져 나의 가치를 찾지 못한다면 AI가 정해놓은 가치를 따라가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의 진정한 가치는 압박이 아닌 온전히 나에게서 나와야 한다. 요즘 세상은 이것이 부쩍이나 어려워졌다. 글에서도 작가의 의도가, 성격이, 성향등이 느껴진다. 예술보다는 좀 더 확연한 역사가 담겨 있기에 책을 출판한다면 한번 더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 책을 출판하는 것은 어떤 가치를 위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