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년 간의 공시생 생활을 단어로 요약하자면'공부 기계'였다. 밤이고 낮이고 할 것 없이 공부에 매진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차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심지어 밥을 먹으면서도 그저 공부, 공부뿐이었다. 조금이라도 계획했던 공부를 못하거나 틀어지는 날에는 극심한 불안과 함께 조절할 수 없는 짜증이 올라왔다. 내가 짜놓은 루틴에서 벗어나는 순간 합격에서 한 발자국씩 멀어진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어딜가든 함께였던 교재
그냥 모든 게 불안했다. 학창 시절 공부 깨나했다는 나였지만 공무원 시험에서 나는 어느 수준이고 이 정도면 합격 가능한지, 다른 사람들은 어느 정도 하는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하나라도 더 맞히자는 생각으로 몰두했다. 그래야 '내'가 합격할 수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친구들과도 편한 마음으로 만날 수가 없었다. 만나자는 친구들의 제안에 나는 꼬리표처럼 항상 조건을 덧붙였다.
"근데 나 몇 시간밖에 못 보고 그마저도 집 근처만 가능할 것 같아."
어떻게 보면 너무나 이기적인 발언이지만 당시 나에게 타협이란 없었다. 오늘 못하면 내일은 배로 해야 했기 때문에. 다행히도 착한 친구들은 내 상황을 모두 이해해 주었고 그 짧은 시간이라도 얼굴을 보러 동네까지 와 주었다.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끝맺음은 항상 내가 맺었다. 이제 가야 할 것 같아, 미안해 등의 말을 달고 살았다. 만나서 고민을 털어놓고 즐겁게 웃다가도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오늘 하다 만 공부가 떠올라서.
지금 생각하면 그게 과연 사람이 사는 모습이었을까 싶다. 스스로를 옥죄다 못해 외부로부터 고립을 시켰으니. 만나는 사람이라곤 가족들과 모니터 화면 너머의 인강 선생님들 뿐이었다. 일 년 간 내 세계는 그게 전부였다.
열등감 덩어리
그렇게 사람 같지 않게(?) 살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점점 비뚤어져갔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정신을 유지하는 게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심적으로 힘든 상황의 탓을 점점 외부로 돌리기 시작했는데 그 대상은 친구들이었다. 매 시간 공부를 하고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휴대폰이 문제였다.
첫 째로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즐거운 사진을 올리는 친구들과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자세로 공부를 하고 있는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모습과 상황을 끝없이 비관하게 되었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자기 연민의 굴레에 빠졌다.
이 상황은 카카오톡 메시지 때문에 더 심해졌다. 내게 친구들과의 유일한 소통 창구라곤 카카오톡뿐이었는데 퇴근 후 혹은 주말에 개인 시간을 즐기느라 잠잠한 친구들의 연락을 보고 깊은 서운함을 느꼈다. 지금 나도 직장인으로서 그때의 친구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아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 서운했다. 하루는 입사 전 건강검진 어떻게 받는지 아냐며 나에게 질문하는 친구가 너무 미워 혼자 화를 삭인 적이 있다. 또 회사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보기 힘들어졌다.
결국 이런 서운함이 공부를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자, 마음에 여유가 단 한 점도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열등감으로 가득 찬 나에게 적잖이 충격을 받은 후 친구들과 연락을 잠시 끊기로 결정했다. 초등학교 5학년, 생애 첫 휴대폰을 가진 이후로 친구들과 연락을 끊은 게 처음이었다. 결국 2주 정도 뒤에 몇몇 친구들과 문자로나마 다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지만 내 자존감과 정신건강을 생각하면 유의미한 선택이었다 믿는다.
공무원 수험 기간은 가깝던 친구들마저 떨어져 나가는 외로운 싸움이라고 한다. 직접 겪어보니 너무나 와닿는 말이었다. 당장 내가 살려면 인간관계를 놓아야 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이 모든 못난 마음에도 곁을 지켜준 친구들이 너무나 고맙고 그래서 한 명 한 명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고생했다
이상하게도 이 당시의 내 모습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상상을 종종 한다. 다른 어떤 때도 아니고 오직 이때의 나만을. 상상 속에서 나는 매번 같은 자리에 앉아 벽을 바라본 채 공부를 하고 있고 그 뒷모습을 지금의 내가 바라본다. 그냥 내 등과 어깨가 한없이 굽어보이고 작아 보인다. 그저 다가가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비록 최종 합격이라는 내가 바랐던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결말은 아니지만 그때의 나에게, 그때의 나를 지켜봐주고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준 주위 사람들에게 참 고생 많았다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