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ers of March, 사랑 후에 남는 것이란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by 그린빵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하고 궁극적인 사랑은 자기애가 아닐까. 상대를 위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결국 그래야만 내가 편하니, 기꺼이 건네는 따스한 말과 배려라면 사랑하는 대상은 결국 '나'일 것이다. 굳이 따져보면 말이다.


인간의 뇌는 이기적이라 자신보다 타인을 사랑할 순 없다고 한다.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한다면 그건 '자기'의 영역이 타인으로까지 확장된 결과다. 그러니 "사랑해" 내뱉는 한 마디는 얼마나 불가능하고 기적 같이 들리는지. 그래서 더 아찔하고 영원인 것처럼 믿고 싶어지기도 한다.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는 이러한 사랑을 충실하게 이어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극 중 율리에는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의대에서 심리학으로 전공을 변경하고, 포토그래퍼가 되고 싶단 생각에 대학까지 그만두는 인물이다. 이러한 모습은 주체적인 젊은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싶은 걸 도저히 참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진로와 관련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동시에 사랑에도 여러 번 변주를 허락한다. 만나던 애인과 헤어지고 우연히 마주한 악셀과 사랑에 빠져 정착하는 듯 보이지만, 때때로 들러리가 된 듯한 기분에 아는 이 한 명 없는 파티에 몰래 들어가 에이빈드와 밤을 보낸다. 사랑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있지만 그럴 때마다 율리에는 기꺼이 다른 이에게도 마음을 여는 선택지를 고른다. 그런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마치 정박하지 않은 채 이리저리 흘러가는 나룻배와도 닮아 보인다.



그런 그가 온 세상을 멈추고 웃으며 힘차게 달려가는 장면이 하나 등장하는데, 하룻밤을 보낸 에이빈드를 다시 만나러 갈 때다. 율리에는 한 여름밤의 일탈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기로 인생에서 또 한 번의 결단을 내린다.


이별을 말하는 애인을 앞에 두고 악셀은 훗날 헤어짐을 후회할 거라 조언하는데, 이때 율리에는 "우리 다시 사귈 수도 있잖아"라고 답한다. 그 말은 매달리는 상대를 달래려고 뱉은 이야기가 아닌 진심이었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의 한 감상평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인생은 몇 번이고 당신에게 왈츠를 건넬 것이다. 내민 손을 붙잡을지 결정하는 건 당신의 몫." 율리에는 다시 그 손을 잡았고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를 춤을 췄다.


늘 그러하듯 꿈결 같은 춤은 오래가지 못하고 현실이 되어버린다. 인생이란 무엇을 택하든 후회가 뒤따르는 선택지와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나날일 뿐이다. 에이빈드와 삐걱거리며 다시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을 느끼는 사이 율리에에게 바라지 않던 아이까지 생겨버린다. 동시에 옛 애인 악셀이 췌장암에 걸려 투병 중이란 소식도 함께 들려온다. 악몽이라면 끝없는 악몽과도 같은 길.


죽음을 목전에 둔 악셀의 앞엔 율리에가 앉아 있다. 그의 몸엔 지금 새 생명이 자란다. 죽음과 잉태가 뒤섞인 끔찍하고도 경이로운 삶의 한 장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대부분 많지 않을 것이다. 율리에는 그저 옛 애인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뿐이다.



결국 오늘 밤 고비를 넘기지 못할 거란 연락을 받은 율리에는 길거리를 한참 서성이지만 병원을 찾진 않는다. 계단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하늘엔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삶은 우리에게 수많은 고통을 주지만 뜻하지 않은 선물과 살아가는 기쁨을 주기도 한다. 어떻게든 시간은 흐르고 사건을 겪으며 새로워진 나와 살아가야만 한다.


결말 부분에서 율리에는 드라마팀 사진작가로 일하고 있다. 더는 흘러가듯 살지 않고 앞에 난 길을 똑바로 응시하며 걷는 듯 보인다. 그는 이제 촬영 현장에서 자책하는 배우를 앞에 두고 흔들리거나 동정하지 않은 채 지금 표정 그대로 지어달라고 주문할 수 있는 프로다.


현장 스틸컷 작업이 끝나고 촬영이 마무리되자 눈물짓던 배우는 곧장 마중 나온 남편에게로 달려간다. 그 뒷모습을 쫓는 율리에의 눈엔 에이빈드가 담긴다. 자연스럽고 다정한 키스를 나눈 에이빈드와 배우는 유모차를 끌며 유유히 사라진다. 율리에와의 시기엔 아이를 원치 않던 그였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카메라를 든 율리에는 어떤 표정을 지었던가.


집에 돌아와 촬영한 작업물을 정리하던 율리에는 배우의 얼굴을 가만히 오래 바라보았다. 그 배우가 뱉은 어떤 문장, 어떤 단어, 에이빈드에게 보인 어떤 행동은 율리에와 많이 달랐을 것이다. 한참 동안 카메라와 맞닿은 배우의 눈을 바라보며 율리에는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Waters of March. 엔딩 장면에 등장하는 곡이다. 3월은 대개 봄의 시작을 뜻하지만 원작자의 고향인 브라질에선 비가 많이 쏟아지는 여름의 끝을 의미한다. 노랫말은 막대기, 돌, 유리 조각, 해와 삶 등 단순한 단어의 나열이다. 이러한 가사를 통해 빗물에 떠내려가는 만물이 흘러가는 생과 다다르는 죽음을 닮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 후에 남는 것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앞선 선택을 뒤바꾸게 하는 것. 지금까지 세워 온 신념을 무너지게 하는 것. 결국 나를 향하게 되는 것. 다 알 것 같다가도 아무것도 모르게 되어버리는 것. 부질없는 약속들로 끝없는 오해를 만들어내는 것…

그럼에도 3월의 비가 만물을 휩쓸고 우기가 그치듯 삶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새롭게 태어나고 낡은 내가 끊임없이 죽어가면서.


그래서 사랑 후에 남는 것이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율리에가 앞으로 담을 필름의 장면, 장면은 보다 또렷하고 생동감 있는 작품이 될 거란 건 안다. 더는 흘러가지 않고 자신만의 집을 가진 채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지 아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비가 그친 진정한 봄날이 찾아오고 이후 우기가 오더라도 휘청이지 않을 힘을 쌓아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