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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ㅠ Aug 17. 2024

대 혐오의 시대

부정의 감정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은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올해 6월 국내 개봉 했다.

국내에는 1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성공적인 영화로 평가받는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올해의 영화로 평점 만점을 부여했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나치 정권 시절, 유대인 학살에 동참했던 루돌프 회스 (이하 회스)의 일상을 다룬 영화이다. 주인공 회스는 집에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가정에 충실한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인다. 아내와 시시콜콜한 즐거운 대화를 하고, 자식들에게 시간을 소비하며 즐거운 추억들을 만든다. 또한 자신이 아끼는 말에게 무한정 사랑 주며, 꽃과 같은 자연물에도 관심이 많은 선인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바로 옆 건물은 유대인 학살이 진행되고 있는 홀로코스트 건물. 집 밖에서 회스는 유대인 청소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나치에 무한 충성하는 악인의 모습을 선보인다. 집의 회스와 밖의 회스의 모습이 번갈아 가며 보여주는 연출로 악의 평범성을 보여준 영화이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며 정말 오랜만에 수준 높은 예술 영화 한 편을 봤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홀로코스트 관련 내용 중에는 <인생은 아름다워>가 가장 내 기억에 깊이 박혀 있던 영화인데 이 영화를 보고 1순위를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올렸다. 다양한 연출 기법, 색깔 표현 등등 박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인생 영화라고 평가 할 수 있겠다.

특이한 점은 기존 홀로코스트 내용을 담은 <쉰들러리스트> <사울의 아들> 등 과는 달리 유대인이 처참하게 죽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소리와 암시적인 말들로만 표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공포감이 극대화되는 부분도 있다.






혐오 피라미드


홀로코스트 및 전쟁 영화들을 보면서 혐오 정서가 군중들을 모으는데 탁월하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인류는 산업시대와 자본주의를 거치게 되며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부의 축적도가 매우 큰 차이가 나게 되었다. 또한 인구는 계속 늘어나며 나의 가치, 나의 일자리, 나의 가족 등을 지켜야 하는데 자꾸 누군가에게 빼앗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부정적인 감정이 커짐에 따라 그런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분풀이를 위한 어떤 희생양을 찾는다.

사실 이런 혐오 정서는 홀로코스트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 언제나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중세 시대 유럽, 기독교에서 하층민 여자들을 학살했던 마녀사냥, 유대인 제노사이드를 자행한 독일 나치. 근대 미국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분리 되어 버스가 따로 존재했었던 혐오 및 차별 정서가 존재했다.

현대로 넘어오면 인터넷을 통해 그전보다 더 많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혐오 정서들이 표출되었다. 성혐오, 노인혐오, 어린이혐오, 세대혐오, 지역혐오 등등 이전 시대보다 카테고리가 넓어진 혐오 정서가 가득해졌다.

어떻게 보면 혐오 자체를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더 쉽게 오랫동안 기억하기 때문이다. 만약 필자가 어린 시절 카레를 먹다가 기도에 당근이 막혀 죽을뻔한 기억이 있다면 카레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카레의 냄새와 사진만 봐도 헛구역질이 나올 것이다. 지금 당장 소규모의 혐오단체의 활동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여 사회에서는 그런가 보다 하고 무관심으로 응답할 경우, 그것이 스노볼 효과로 발생되어 점진적으로 증오의 영역이 되어 한 집단이 정권을 장악하고, 광기의 홀로코스트 같은 끔찍한 집단학살까지도 갈 수 있다.






인류는 제2의, 제3의 히틀러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다.

지구는 시시각각 상황이 변화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지속 되는듯 했으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평화는 갈기갈기 찢겼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곧 중동 전쟁으로 번질 위기에 놓여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언제든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는 평화주의자이다. 전쟁은 상대를 처참히 짓밟지 않는 이상 끝낼 수 없다. 결국 서로에게 증오의 감정만을 남길뿐이다. 그렇기에 전쟁은 무조건 반대한다.

난 100세 밖에 살지 못하는 우주 먼지 같은 존재이다. 타인과 싸우고, 다툼의 의미를 난 이해할 수 없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빛보다 빠르다. 짧은 인생에 혐오와 전쟁보다는 자신과 가족과 연인과 친구 사랑하고, 아끼고, 보살 피는 감정이 요즘 들어 더욱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지 않나 생각하는 하루를 보낸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지도 거진 70여년이 지났지만 인류의 혐오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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