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른왕자 Mar 20. 2024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2024.03.19.

오랜만에 글을 쓴다. 글을 쓰지 않는 동안 열심히 책을 읽었다. 청소년 문학에 빠져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청소년 소설에 깊이 빠져 있다. 청소년. 어린이와 어른의 중간단계에 있는 사람. 딱 나랑 어울린다. 어른은 되었지만 어른임을 거부하고(어른이 덜 되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그렇다고 어린이는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방황 가득한 시간 속의 이야기들이 너무 아름다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돌아가고 싶다. 나도 그때로. 나의 하루하루 속에 책은 언제나 함께 있고 여전히 기쁨과 슬픔과 감동을 준다. 나를 읽어준 책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가족만큼 고마운 존재들. 


저녁밥을 먹는데 딸이 말한다. "난 잘 태어난 것 같아." 갑자기 툭 튀어나온 말 한마디. 글로 쓰면 여덟 글자면 끝난다. 공기 속의 밥알보다 적다. 그런데 이 말이 나를 꽉 차게 만든다. 이 말이 너무 커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 말이 너무 고마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참으려고 하는데 밥알이 점점 안 씹어진다. 욕실로 튄다. 나도 속으로 말한다. '딸, 아빠도 진짜 잘 태어난 것 같아.'


요즘 나는 말 한마디에 쉽게 감동한다. 행동 하나하나에 쉽게 감동한다. 아주 쉬운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아들이 "아빠, 세상에는 왜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많아?" 물어보면 감동하고. 쉬는 시간에 학생이 다가와 "선생님, 저는 수업 시간이 너무 행복해요." 하면 감동하고. 조용히 남몰래 쓰레기통 주변을 쓸고 있는 녀석을 보면 감동하고. 혼자 놀던 아이가 친구들 사이로 쏙 들어가 함께 게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하고. 감동이 여기저기서 마구마구 쏟아져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선물이다, 매거진은 이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이제 하루하루 속에서 선물을 일부러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기록하지 않아도 된다. 선물은 언제나 있었고, 많았고, 나는 그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찾지 못했을 뿐이다. 글을 쓰면서 나는 그것을 볼 수 있는, 찾을 수 있는 눈이 생겼다. 브런치에 소소한 이야기를 남기면서 혼자 많이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탈탈 털어내고 회복했다. 어느새 가족처럼, 책처럼, 맘 편히 머무는 곳이 되어버린 브런치.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주는 유일한 친구, 나의 브런치. 진짜 어른왕자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이 너무 소중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사진: UnsplashJoshua Hoehne

매거진의 이전글 프리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