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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of SNU May 25. 2021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의 하루

서울대학교 학내 비정규직의 소리를 전하는 학생모임 <빗소리>

서울대학교 학내 비정규직의 소리를 전하는 학생모임 <빗소리>는 노동자 방문 취재, 노동자-학생 연대 활동 진행, 노동 관련 세미나 및 연구 등의 활동을 하는 인권봉사분과 동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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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listen_rain_sounds/
빗소리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nurainsound/





6시 30분, 청소노동자의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EPS실에서 청소 카트를 꺼내 첫 장소인 세미나실로 향한다. 세 개 층에 야외까지 청소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세미나실의 책상을 닦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바닥에 있는 음료수 자국을 지워낸다. 쓰레기통에는 기껏해야 플라스틱 생수병 한 통 정도가 있을 뿐이지만, 그래도 매번 치워야 한다. 


“봄철에는 창틀에 먼지도 많이 쌓여요”


창틀도 하나씩 닦는다. 세미나실을 지나, 교실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의자를 집어넣고 전날 수업시간에 아무도 지우지 않은 칠판의 판서를 지우고 나면 열람실이 기다리고 있다. 문을 여는 와중에 복도의 작은 벌레 사체가 눈에 밟힌다. 줍고 나서 열람실에 들어섰다. 열람실에서 청소해야 할 것은 책상 위만이 아니다. 책상 아래, 창틀, 계단 손잡이까지. 넓은 구역을 혼자서 매일 청소할 수는 없기 때문에 구역별로 번갈아가며 청소해야 한다. 


“열람실에 학생들 없을 때 다 해 놓아야 해요”


서둘러 정리한다. 열람실의 오늘치 구역을 다 청소하면 학생 휴게실 차례다.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신문을 날짜에 따라 정리한 다음 책상을 살짝 훔치고 나온다.


청소노동자의 출근 시간은 6시 30분이다. 씻고 아침을 먹은 뒤 학교까지 오려면 기상 시간은 5시 언저리다. 이때부터 11시까지가 오전 일과, 12시부터 다시 오후 일과가 시작된다. 작업량이 많은 극단적인 경우, 5시에 출근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오기 전에 일을 끝마치기 위함이다. 이렇게 미리 출근하다가 다치는 경우, 산업재해로도 인정받을 수 없다. 코로나로 인해 업무가 줄어들었을 법도 하지만, 한 번이라도 사용한 세미나실, 교실은 다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량은 사실상 변함이 없다.

다음은 화장실 차례다. 휴지통에서 사용한 휴지를 꺼내고 새 휴지를 보충해준다. 치약 섞인 물이 튄 유리를 닦고, 물이 흥건한 세면대를 닦아준다. 남자화장실에서는 소변기도 하나하나 닦아야 한다. 물이 튀지 않게 센서를 가리고 남은 손으로 재빨리 소변기를 닦으면 된다. 이제 좌변기 칸마다 확인할 차례다. 여자화장실에서는 칸마다 설치된 위생용품 수거함도 정리해야 한다. 높고 깊은 위생용품 수거함에서 내용물들을 비워내기는 쉽지 않다. 

“이게 되게 높아요. 꽤나 깊기도 하고 잘 보이지도 않아요”


한탄과 함께 변기 뚜껑을 연다. “아이고...” 탄식소리가 터져나왔다. 첫 번째 칸부터 변기에 음식물을 버리고 물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한 화장실당 한 칸씩은 꼭 이런다는 말과 함께 물을 내린 후, 세면대 아래에 있는 솔과 약품을 가져와서 변기를 구석구석 닦아낸다. 하얀 솔이 고춧가루 기름으로 인해 점점 빨갛게 물들어 간다. 이렇게 매일 두 번씩 여섯 개의 화장실을 청소한다.

“음식 먹고 찌꺼기 버리는 거 다 변기 닦아야 해요. 그리고 물도 좀 잘 내려줬으면 좋겠어요. 정말 사소한 건데 안 지켜지고 있어요.”

화장실에서 나와서, 화장실 앞의 쓰레기통을 비울 차례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카페에서 아이스 음료를 테이크아웃 한 뒤 버리는 경우가 많아져 업무가 더 힘들어진다. 일부 테이크아웃 컵 속에는 먹다 남은 음료나 얼음이 녹은 물이 고여 있다. 만약 넘어져서 흐르기라도 하면 끈적한 기운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닦아야 한다. 테이크아웃 컵홀더는 종이로, 남은 음료는 변기에, 컵은 일반 쓰레기로 버려야 하지만, 플라스틱 쓰레기통 안의 상당수가 테이크아웃 컵이다. 플라스틱 수거함인 만큼 흘러내린 액체를 흡수해줄 휴지 같은 것도 없어 일일이 걸레로 수거함 안을 닦아야 한다.


시험 기간에는 학생들이 학교에 남아 공부하면서 전날 저녁에 먹은 배달음식, 컵라면, 도시락이 쌓인다. 여기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와 일회용품을 정리하는 것도 고역이다. 음식물을 정리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경우는 드물지만, 어설프게 한 정리가 일을 키우기도 한다. 컵라면처럼 기름기가 있는 국물을 변기에 버린 후 물을 내리게 되면 변기 벽면에 기름기가 묻어나 다음 날 아침까지 변기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


”뚜껑이라도 분리해서 버리고 플라스틱은 플라스틱 통에, 여름에 남은 물 버려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죠. 안 그러면 일일이 버린 다음 봉투에 넣어야 해요.”


얼음과 남은 음료를 변기나 하수구로 버리지 않고 그냥 버려 무게가 늘어나고, 녹은 물이 엎질러지거나 새서 바닥을 더럽히면 청소노동자의 노동 강도는 더욱 과중해진다. 여름철에 쓰레기통을 비우는 작업이 고된 이유다. 투명 테이크아웃 컵은 재질이 보통 플라스틱과 다르기 때문에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알고 일반쓰레기에 버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결국 청소노동자가 일반 쓰레기로 분리배출해야 하고, 업무량은 배가된다. 컵라면도 업무를 고되게 만드는 주범 중 하나다. 컵라면 용기는 국물이 스며들어 씻어도 재활용이 되지 않으며, 남은 국물을 변기에 쏟아부을 때 변기에 붉은 기름띠가 남아 변기 청소도 해야 한다. 변기에 국물을 단순히 버리지 않고 변기를 내리면서 국물을 한 번에 부으면 물살 덕분에 기름띠가 변기에 묻지 않게 버릴 수 있다.

  복도를 닦는 과정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물마포로 바로 닦으면 먼지가 바닥에 엉켜서 오히려 더 더러워진다. 그래서 기름마포로 일단 먼지를 한 번 닦아낸 다음 같은 곳을 물로 다시 닦아야 한다. 물론 바닥을 잘 보면서, 자국이라도 남아 있으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닦아야 한다. 오늘 두 번 닦지 않으면 내일은 세 번 닦아야 지워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담배꽁초를 정리한다. 재떨이에 잘 놓아주면 그나마 다행인데, 꼭 서너 개의 꽁초는 재떨이 옆 바닥에 떨어져 있다. 다음으로는 바닥을 한 번 쓸어주면 된다. 봄은 그나마 다행이고, 여름에는 꽃, 가을에는 낙엽, 겨울에는 눈을 치우느라 일이 늘어난다.


  한 층의 마무리는 파지장에서 이루어진다. 백지, 신문, 책, 종이컵은 모두 다 따로 분류해야 한다. 박스는 납작하게 접어주고, 여러 봉투에 담긴 쓰레기들은 하나로 합쳐주어야 한다. 앞에서도 고생시킨 테이크아웃 컵 속 액체가 쓰레기를 적시기도 한다. 이렇게 재활용이 되는 쓰레기와 아닌 쓰레기를 나누고, 되는 쓰레기를 다시 세분화해서 나누어주어야 폐기물 처리 업체가 쓰레기를 가져가기 때문이다.

“꽃, 낙엽, 눈이 주는 낭만이 사라졌어요. 원래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우리 눈에는 다 일”


청소노동자 한 명이 보통 3개 층을 담당한다. 여기서 해당 층에 야외로 통하는 문이 있다면 야외까지 해당 노동자의 몫이다. 계단이나 공터처럼 별로 청소할 것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도 해야 할 일은 많다. 단적으로, 계단 손잡이를 닦느라 오른손 관절에만 문제가 있는 청소노동자도 적지 않다. 야외 계단 모서리마다 쌓인 솔잎을 의식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기 위해서는 매일 청소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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