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잘된거야" 영화를 통해 본 존엄사
우리는 오래전부터 현재, 혹은 미래에 이르기까지 삶과 죽음에 관한 여러 가지 명제와 해답 없는 질문들에 의해 각자에게 주어진 유한한 삶을 살고 있다. 누구나 한정적인 삶을 좀 더 가치 있게 살고자 주어진 환경에 맞게 열심히 살고 있으며, 나 또한 그렇게 살길 희망한다. 하지만, 현재의 삶에 중점을 두며 살다 보니 막상 죽음을 맞이하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맞이할지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먼 미래의 일, 어쩌면 나를 제외한 남의 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만큼 죽음이 주는 어감과 의미가 무겁게 다가오기에 차라리 외면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간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무서운 일들을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이기에 마침 관심 가는 영화가 있어서 함께 보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싶다.
“다 잘된 거야(Tout s'est bien pass'e)”. 이 영화는 프랑스와 오종 감독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라는 원초적인 명제보다는 가족과 죽음의 과정, 그리고 남은 가족들에 대한 영화이다. 오랜만에 보는 주인공 ‘소피마르소’의 열연도 볼만했지만, 그 영화에 녹아있는 우리들의 사회상 여러 문제도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있어서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하였다. 큰 주제는 존엄사(尊嚴死)를 다루었지만, 자연스럽게 노인 문제, 성 소수자 문제(동성애), 불치병 등을 적당히 버무려 넣었지만, 심각하게 다루지 않고 그냥 보는 관객들의 생각에 맡긴 것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았다.
주인공(소피마르소)의 아버지는 85세의 고령으로 뇌졸중으로 쓰러져 딸에게 죽음을 선택하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다. 어릴 적부터 자상한 아버지상이 아닌 끔찍하게 가부장적이고 고집스러운 성향의 아버지를 설득하다가 포기해 버린 주인공이기에 결국 아버지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법적으로 프랑스에서는 불법인 존엄사이지만, 인접 국가 스위스는 인정되는 방식임을 알고 결국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를 보내드린다. 매우 슬픈 영화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 진한 여운이 남고, 생각을 많이 하게끔 하는 영화라서 감정이 복잡미묘하였다. '세기의 미남'으로 불리던 ‘알랭들롱’은 지난 2019년 뇌졸중 수술을 받은 뒤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가 지난 2002년 3월 스위스에서 안락사(존엄사)로 생을 마감하기로 했다고 한다.
"우리는 병원이나 생명유지장치를 거치지 않고 조용히 세상을 떠날 권리가 있습니다."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의 마지막 선택이 남긴 파장은 컸다. '세기의 미남'으로 불렸던 그는 지난 2019년 뇌졸중 수술을 받은 뒤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가 지난 3월 스위스에서 안락사(존엄사)로 생을 마감하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알랭 들롱의 이 같은 결정은 국내 안락사 논쟁에 불을 지폈다. 여기에는 알랭 들롱 등 해외에서 활발히 진행 중인 안락사 논의가 국내에도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우리는 흔히 ‘안락사’, ‘존엄사’, ‘조력자살’, ‘연명치료중단’ 등 여러 용어를 혼용하여 쓰고 있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안락사(euthanasia)’는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직역된다. 불치병의 이유로 더 이상 치료와 생명 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생물에 대해서 직, 간접적으로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인위적인 행위를 말한다. 즉 안락사는 환자의 요청으로 의료진이 직접 환자에게 약물을 주입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다.
‘조력자살’은 의료진이 약물을 처방하지만, 환자가 직접 약물을 복용하거나 주입하여 죽음에 이른다. 즉, 약물 투약 주체가 가장 큰 차이점이다. 안락사와 조력자살을 합쳐서 ‘조력죽음’이라는 말도 쓴다.
‘연명치료중단’은 본인이 선택하기도 하지만, 환자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없을 때, 타의로 결정되기도 하므로 존엄사와 엄밀히 구분된다, 존엄사의 수단으로 연명치료중단이 사용되기도 한다.
안락사와 존엄사의 큰 차이점으로 안락사는 고통 없는 죽음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존엄사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는 죽음의 방식을 말한다.
현재 존엄사(조력자살)가 합법 된 나라는 스위스, 독일, 호주와 미국의 일부 주에 해당하며, 조력자살과 안락사가 모두 합법인 나라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패인, 캐나다 등이다. 우리나라는 존엄사(연명치료중단)는 가능하지만, 조력자살 및 적극적 안락사는 불가능하다. 2018년 2월, 일명 존엄사법(호스피스 완화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연명치료중단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그 외의 안락사는 불법으로 처벌 대상이다.
우리나라에서 허용되는 존엄사의 시행조건은 시행 대상이 사망이 임박한 환자로 회생의 가능성이 전혀 없고, 치료로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한 환자이며, 담당 의사 및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이 임종 과정이라고 의학적 진단을 해야 연명을 중단할 수 있다, 허용 질병으로는 암, AIDS, 만성 폐쇄성 폐질환, 만성 간경화, 등이며, 해당 조건에 해당하는 말기 환자라 판단되면, 여러 가지 목숨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하지 않는다.
2022년 서울대학교 가정의학과 연구팀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체 조사자 중 안락사와 조력자살 입법화 찬성이 73%로 나타났다, 2016년 동일 연구팀이 같은 조사 결과에서 40%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안락사와 조력자살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찬성 이유는 남은 삶의 무의미가 가장 많았고, 반대이유로는 생명 존중 의견이 가장 컸다.
1960년 데뷔작 '네멋대로 해라'(Breathless)로 대중영화에 혁명을 일으키며 세계에서 가장 활력 있고 도발적인 연출가로 우뚝 서며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끈 독창적 '앙팡 테러블'의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감독이 9월 13일 사망했다. 향년 91세, 고다르 감독의 조력자살 소식이 알려지면서 프랑스 대통령실은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해 국가 차원의 토론에 돌입하겠다고 성명을 냈다.
일본도 판례를 통해 적극적 안락사의 기준으로 환자의 참을 수 없는 고통, 죽음 시기의 임박성, 본인의 의사표시, 고통 제거의 수단이 없음 등의 4가지 조건을 제시했고, 생명 연장 치료를 거부하는 방법으로 자연사를 선택하는 존엄사는 점점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이다.
'웰빙(Well-being)'이 2000년대 초 우리 사회를 휩쓴 트렌드였다면 현재는 '웰다잉(Well-Dying)'에 관심 두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삶의 질 못지않게 죽음의 질도 중요하며, 스스로 삶을 마감할 권리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안락사와 존엄사에 대해서 인권 문제, 의사의 오판 가능성, 선한 의도 악용 가능성 등 많은 논쟁거리를 초래할 것은 분명하다.
세계적으로 여러 나라가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에 대한 존중을 높여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 역시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
Life goes on - 삶은 계속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