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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Nov 25. 2023

대학원생의 삶과 라면의 상관관계


얼마전 두 번의 과제 제출이 있었다. 두 번 다 데드라인에 거의 가까워져서야 가까스로 낼 수 있었다. 과제를 하면서 신기하게도 이제껏 느끼지 못한 방식으로 좀 슬픈 감정을 느꼈는데, 설명하자면 외로움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내 몫의 힘듦을 나 혼자 오롯이 견뎌내야 한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이런 감정은 참 오랜만이라 더 그랬다. 회사 일 역시 내 몫의 어려움을 혼자 감당해 내는 것이 있지만, 사실 회사일은 궁극적으로 내 인생에 중심에 있는 일은 아니니까(늘 내일 퇴사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 이렇게까지 외로워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일을 할 때 나오는 또 다른 자아 - 뭔가 좀 더 과감해지고 대범해지는 느낌- 이 있었던 터라 그런 모드가 나를 지켜주었는데, 이번에 과제하면서 굉장히 쭈구리가 되어서 외롭고 머리 아파하면서 겨우겨우 해냈다.


과제와 군것질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마치 근육을 만드는 데는 꾸준한 단백질 섭취가 필요하듯이, 과제가 완성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꾸준히 군것질을 섭취해주어야 하는 것 같다. 군것질이라는 불량스러운 영양분이 어찌어찌 과제의 진도를 나아가게 한다. 그래서 어제도 라면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하리보 젤리도 마구마구 먹었다. 어쨌거나 과제를 해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먹었다.


며칠 전 군것질거리를 쟁이기 위해서 집 근처에 있는 아시아 마켓에 갔다. 라면 섹션에서 라면을 고르고 있는데, 옆에서 기웃거리던 여학생 둘이 조심스럽게 나에게 "혹시.." 하면서 말을 걸었다. 내가 고른 라면(너구리 순한 맛)을 가리키며, 그거 맛있어?라고 물으며, 혹시 맛있는 라면을 추천해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한국 라면을 좋아하는데 지금까지 신라면, 짜파게티, 그리고 안성탕면을 먹어봤다고, 또 다른 걸 시도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마도 학부생으로 보이는 영국 여자아이들이었는데 너무 귀여워서 절로 미소가 나왔다.


나는 진지하게 그녀들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시도해 볼 만한 라면을 함께 고민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나의 추천은 너구리, 팔도 비비면 그리고 튀김 우동이었다. 그녀들은 새로운 라면을 손에 들고, 뛸 듯이 신나 하면서 연신 고맙다고 했다. 그녀들의 라면 스펙트럼 확장에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뿌듯했다. 라면은 역시 우리 모두의 에너지 부스터임을 확인했던 순간이었다.


과제 시즌의 피크가 다가오고 있다. 너구리와 튀김 우동의 힘으로 남은 과제를 완성해 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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