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 경진이의 51번째 생일.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 현대백화점으로부터 꽃 배달이 왔다.
역시 돈을 썼더니 선물도 보내준다며 좋아하는 경진이. 금방 시드는 꽃을 뭣하러 사고 선물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는 엄마는 나이 50이 되니 드디어 꽃이 주는 행복을 알았다고 한다. 어버이날 당일 아침에 양재 꽃시장으로 튤립과 카네이션을 사러 갔을 정도면 말 다했다. 꽃은 신문지 포장이 가장 이쁜 거라며 꽃시장에서 집 오는 내내 감탄하던 경진이는, 그의 절친 현대백화점에서 고급스럽게 포장되어 온 꽃에 어쩔 수 없이 반하고야 말았다.
금방 시드는 꽃이 싫다고 했던 경진이의 말 처럼 굵직한 장미와 카네이션은 얼마 뒤 시들고야 말았다. 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며 끝까지 남아있는 잔잔바리 꽃들을 보며 엄마는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 한다.
"인생은 저 남아있는 잔잔바리 꽃처럼 살아야 하는 거야. 뭐든 장미처럼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면 무슨 소용이니? 활활 타오르지 않더라도 저렇게 잔잔하고 길게, 꾸준히 갈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해."
별안간 남아있던 잔잔바리 꽃들을 보며 50년 인생의 해답을 찾아버린 경진이. 뭔가 생뚱맞지만 진지했던 엄마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장미처럼 잠깐이라도 반짝일 수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극 중 주인공 천우희가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 친구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산책하면서 듣는 네 시덥잖음이 좋아. 너무 뜨거워지지 마. 그냥 지금 정도의 온도로 평생 옆에 있어."
활활 타오르다 금방 꺼져버리는 불꽃같은 연애가 싫다는 천우희. 적당한 온도로, 적당히 좋은 감정으로 시답잖은 농담을 하면서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며 드라마를 봤던 기억이 난다.
경진이 역시 50년 인생을 지나오며 느꼈던 감정이 아닐까 싶다. 그게 무엇이든, 경진이가 꽃을 보며 느낀 그 교훈에서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