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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Dec 08. 2020

가려진 여성 노동자의 삶

14회 여성인권영화제 경쟁 부문 상영작 GV

여성인권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실>, <영숙>, <일하는 여자들> 3편의 GV가 12월 8일 오후 4시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진행되었다. GV에는 <실> 김명선 배우, <영숙> 라정인 감독, 그리고 <일하는 여자들> 김한별 감독이 함께하여 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 정의 진행 아래 여성 노동자와 이를 영화로 담아내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한별 감독, 라정인 감독, 김명선 배우, 프로그래머 정

조민재, 이나연 감독의 <실>은 창신동에서 오랫동안 봉제 노동을 하며 버터 온 여성들의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그려낸 영화다. 나이는 들고 생산력은 점점 떨어지는 데다가 봉제 일도 줄어드는 현실 앞에서 주인공 ‘명선’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한다. <영숙>은 1920년대 해외로 유학을 떠나 조선 최초로 경제학자가 된 신여성 최영숙의 삶을 모티브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국가를 위해 조선의 여성을 가르치고 조합을 설립하려던 영숙의 꿈은 여성이라는 벽에 부딪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영숙>은 희망과 열정이 가득했던 최영숙의 유학생활과 여성에게는 차가웠던 조선의 현실을 그림으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김한별 감독의 <일하는 여자들>은 방송작가 노동조합 방송작가유니온이 설립되고 국정감사에 참석하여 자신들의 권리에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프리랜서 계약직이면서 직군의 99%가 여성인 방송작가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며, 여성 노동자로서 겪는 이중의 문제를 다뤘다.



삶이 영화로, 실처럼 이어진 인연

<실>의 주인공이자 실제로 오랜 시간 봉제 노동을 해 온 김명선 배우는 아들인 조민재 감독의 자문에 답하다 배우로 연기하게 되었다. <실>에서 ‘명선’이 일하는 봉제 공장도 김명선 배우가 실제로 일하고 있는 곳이다. 봉제 노동자로서의 시간이 묻어 있는 김명선 배우의 아우라는 픽션 영화임에도 <실>에 한층 더 무게감을 실어준다. 영화 속 ‘명선’처럼 실제로 삶에서 변화를 체감하는지에 대한 프로그래머 정의 질문에 김명선 배우는 “일이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로 많이 빠지고 있다. 영화처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한다”라고 답했다. “나이가 들어도 살아가야 하니까, 인터넷 쇼핑몰을 배워서 나보다 물건이 보이는 그런 걸 해 봐야겠다”라고 웃으며 덧붙이기도 했다. <실>은 영화 산업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 근로기준법의 노동 시간과 임금을 준수해서 제작되었다. 이에 김명선 배우는 “영화 업계 종사자가 아니다 보니 잘 몰랐는데, 한 스태프가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해서 너무 놀랐다”며, “예술이라는 이유로 그런 노동환경을 감내할 필요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김명선 배우는 <실>의 ‘명선’처럼 디자인과 봉제를 모두 하는 노동자다. 옷을 만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디자인 공부를 완벽하게 끝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배운 지식으로 디자이너와 봉제 노동자들 모두와 친하게 지내면서 징검다리처럼 서로의 의사소통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문장을 묻는 질문에 김명선 배우는 “영화 마지막 즈음에 ‘명선’이 직접 디자인한 하얀 블라우스가 나온다. 거기서 “그 옷이 너 닮았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관객분들이 많이 좋아해 주셨다”라고 답했다.



<영숙>으로부터 100년 후, 사회는 여전하다

라정인 감독은 EBS 지식채널 e의 내용을 발췌해 놓은 글에서 최영숙이라는 신여성을 발견했다. 지금 시대의 기준으로도 굉장히 진취적으로 살았던 사람이 본인이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떠났고, 사람들도 그를 까맣게 잊고 사는 것이 안타까워 제작하게 된 작품이 <영숙>이었다. 라정인 감독은 “원래 항상 픽션을 만들던 사람이라 다큐로 구성하지는 못하고 최영숙의 삶을 기반으로 재가공하여 애니메이션을 완성했다”라고 덧붙였다. 프로그래머 정이 <영숙>에서 가장 공을 들인 장면을 묻자 라정인 감독은 “유일한 가상 캐릭터인 기자와 영숙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도록 애를 썼다”라고 답했고, 또 영숙이 결국 아이를 유산하며 죽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영숙의 대사는 실제 영숙이 남긴 글에서 따온 것이지만, 죽고 나서 하는 가상 인터뷰 같은 장면의 대목은 ‘살아 계셨다면 이런 얘기를 더 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고 더 꾸민 것이다. 제가 과대 해석해서 쓰고 있지는 않은 지 판단하는 게 조심스럽고 어려웠다”고 말했다.

<영숙>에서 영숙이 사망한 후 신문에 오른 부고 기사들의 제목에서 조선 최초 여성 경제학자로서 영숙이 이룬 업적과 활동은 찾아볼 수 없다. 인도에서 만난 남자나 가난했던 가정 상황과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조롱과 멸시의 어조로 지면을 가득 채운다. 인상적인 이 장면이 실제 기사에서 따온 것인지 묻는 관객의 질문에 라정인 감독은 “실제 기사들이었고, 어떤 제목은 너무 인종 차별적이어서 고민이 많았다”고 답했다. “저 장면을 만들 때 딱 여성 아이돌들이 자살하던 때였는데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언론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과 여성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씁쓸했다”라고 당시 제작 중 감상을 전했다. 프로그래머 정은 “그래서 <영숙> 같은 작품이 더 필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방송작가도 노동자다

방송작가의 99%는 프리랜서이고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제도 안에 없는 직군이기 때문에 불안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는 김한별 감독은 2017년 방송작가유니온이 출범하면서 “노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들이 모여서 헤매지만 하나씩 헤쳐나가는 여정”을 영화로 담았다. 특히 “여성으로서 겪는 성차별의 문제가 방송작가 직군에도 존재한다”며, “여성으로서 집안에서 겪는 문제들을 통해 여성의 노동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라고 영화의 기획 의도를 전했다. 방송에서 작가들의 역할이 중요함에도 작가들은 “결혼하면 일 그만둘 거냐”, “애 낳았으니까 일 그만할 거지”라는 말들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김한별 감독은 “이렇게 눈치를 주는 것도 여성의 일이 사회에서 노동하는 것이 아닌 집안에서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일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그래머 정이 “코로나 19라는 재난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분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것 같다”라고 의견을 묻자 감독은 “방송가는 코로나 때문에 방송이 중단되거나 밀리는 일이 많아서 돈을 바로 못 받아 생계에 타격을 크게 입은 경우가 많다”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방송작가유니온이 실태조사도 하고 문제 제기도 하고 있다. 내일모레부터는 예술인고용보험법이 시행되는데 이것도 코로나 19의 영향이 컸다”라고 덧붙였다.

뉴스와 탐사보도 프로그램으로 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방송사지만, 정작 자신들의 문제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앞으로 방송계의 노조와 관련한 방송이 제작될 수 있을지 묻는 관객의 질문에 김한별 감독은 “최근 저널리즘 J라는 KBS 프로그램에서 방송 비정규직을 주제로 촬영을 했지만 방송사가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신랄하게 비판할지는 회의적이다”라고 답했다. 노조를 만들고 뿌듯했던 순간을 묻는 또 다른 관객의 질문에 김한별 감독은 “매 순간 느낀다. 일을 하면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노조가 같이 문제제기를 한다는 든든함이 있어서 이제는 두렵지 않다”라고 답했다. <일하는 여자들>에서 김한별 감독이 좋아했던 대목도 노조 회의 중 박지혜 작가가 “노조는 부당한 일에 익숙해지지 않고 지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부분이었다.




GV는 김명선 배우, 라정인 감독, 그리고 김한별 감독 모두 어려운 상황에도 온라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마무리되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하는 14회 여성인권영화제는 12월 10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무료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영화제 기간 동안 진행된 GV와 피움톡톡은 한국여성의전화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감상할 수 있다.

온라인 상영관 주소 http://theater.fiwom.org/



14회 여성인권영화제 개요

슬로건: 우린 흔들리지 않지

기간: 2020년 12월 1일(화)~10일(목)

장소: 온라인 상영관 (전편 무료 상영)

주최: (사)한국여성의전화


*이 글은 14회 여성인권영화제 웹기자단 피움뷰어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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