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톡톡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쓴 2020년, 올 한 해 동안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올랐던 말은 “집에 머무세요”였을 것이다. SNS에서는 #StayHome 해시태그를 이용해 집에 머물며 즐겁게 보내는 모습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흐름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남편의,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집이 안전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12월 5일 유튜브 실시간 방송으로 진행된 제14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실뭉치>,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의 피움톡톡은 ‘‘안전한 집’에 머무르라고요?’라는 제목으로 팬데믹 상황과 가정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 '오래뜰' 소장 온수 선생님의 진행으로 시작된 피움톡톡은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직접 만드는 문화공연 프로젝트 ‘마음대로 점프!’의 참여자 명아와 임작가의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했다. 두 선생님 모두 <실뭉치>와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이 그려내는 피해자의 상황에 깊게 공감하며 피해자들이 상황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모습이 아름다웠고 두 분이 참여한 ‘마음대로, 점프!’가 떠올랐다며 감상을 전했다.
명아는 두 영화 모두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은 안전한가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며, 집의 안전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낯설게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적인 폭력'으로 가정의 문제로 축소되는 가정폭력은 쉽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재난 속에도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여러 제도를 마련한 해외 몇몇 국가들과 달리 한국의 대응은 미흡했다. 전염병으로 인한 위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온수 소장은 “재난 상황에서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쉼터와 피해자들의 생활이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충분히 고려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가정폭력의 심각성과 지원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로 짚었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에서 남편의 폭력을 몇 년간 참아온 피해자들에게 주변 사람들은 "왜 떠나지 않았냐"라고 묻는다. 하지만 이 질문은 폭력의 원인과 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돌리는 것이다. 임작가는 이러한 질문들이 결국에는 "내가 나를 고립시키도 한다"며 자신도 '내가 잘못했구나. 엄마로서 참아야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폭력을 감내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의 활동가 킷이 생존자들을 만날 때마다 하는 한 마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는 그래서 정말 중요하다. 온수 소장은 "쉼터에 들어온 분들에게도 이 말을 하는데, 처음 들어봤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문제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더 질문하고 책임을 묻지 않는 현실을 전했다. 명아는 "폭력은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을 모두 무너지게 하는" 것이고 가정 폭력이라는 특성상 피해자도 자신에게서 이유를 찾으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살필 수 있는 지원자(친구, 상담사, 의료인, 법 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에서 활동가 킷은 가정폭력 신고가 들어왔을 때 가해자를 조사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경찰들과 실전 연습을 진행한다. 킷은 이 훈련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적인 폭력이 아니어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던지는 몇 초간의 시선도 억압적이고 폭력적임을 알아채야 한다고 말한다. 임작가는 "가해자의 폭력을 세심하게 잡아내는 게 인상적"이었고 가정폭력은 절대 물리적인 폭력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의 심리적인 면에서 정말 필요한 훈련"이라고 감상을 남겼다. 온수 소장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는 아직 이 정도의 훈련은 없지만, 가해자가 쉼터에 침입하는 일을 겪은 후 경찰청에서 가정폭력 초동대응 매뉴얼은 만든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매뉴얼 정도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관계를 인식하기에는 어려우며 가정 폭력 문제 자체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지금의 통념들을 개선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여성의전화의 '마음대로, 점프!' 프로젝트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예술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폭력의 경험을 말하고 다시 해석하며 정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2019년 4월에 모인 19명의 피해자들은 가정폭력의 해결이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누구도 홀로 폭력에 맞서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담아 자작곡 음반 '우리, 이젠'을 제작하고 지난 11월 25일 문화 공연을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마음대로, 점프!'로 생긴 변화를 묻는 질문에 명아는 "나의 경험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을 꼽았다. 이전에는 "내 이야기를 받아주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고 가정폭력의 경험을 말하면 시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했"지만 이제는 "유튜브라는 채널로 얼굴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 큰 변화라고 말했다. 임작가도 이에 "'마음대로, 점프! 프로젝트' 참여자들과 깔깔대며 말하기 시작하면서 가정폭력 문제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깨달았다"고 공감했다. 임작가는 프로젝트로 얻은 용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제작 중이기도 하다.
한국여성의전화 쉼터와 '마음대로, 점프!' 프로젝트, 그리고 오늘 피움톡톡의 영화 <실뭉치>,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을 통해 명아와 임작가는 가정폭력 피해 경험을 말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의 힘을 느꼈다고 말했다. 명아는 "내 얘기를 마음으로 들어주고 있다는 눈빛과 충분히 말해도 괜찮다고 하는 존재들이 고맙다"고도 덧붙였다. 피움톡톡은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임작가의 노래 <파티룸302>와 명아의 <골목>을 재생하며 마무리되었다. 최근 발매된 ‘마음대로, 점프!’의 음반은 음원 사이트에서 전곡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하는 14회 여성인권영화제는 12월 10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무료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영화가 던지는 문제와 관련된 전문가와 당사자들을 모시고 심도 있게 이야기를 나누는 피움톡톡은 12월 8일까지 매일 저녁 7시에 유튜브에서 진행된다.
온라인 상영관 주소 http://theater.fiwom.org/
■ 14회 여성인권영화제 개요
슬로건: 우린 흔들리지 않지
기간: 2020년 12월 1일(화)~10일(목)
장소: 온라인 상영관 (전편 무료 상영)
주최: (사)한국여성의 전화
* 이 글은 14회 여성인권영화제 웹기자단 피움뷰어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