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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Oct 14. 2024

경계에 선 휴머니스트

인간은 추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 - <툴루즈-로트렉: 몽마르트의 별>


Belle Époque(벨 에포크):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을 가진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19세기 말 평화를 누리며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융성했던 유럽 역사의 한 시기를 일컫는다. 특히,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는 몽마르트에 모인 예술가들이 화려한 밤 문화를즐기고 서로 활발히 교류하며 다양한 예술 양식을 풍부하게 발전시키던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물랑루즈의 작은 거인’으로도 불리는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은 당시 캬바레의 유명인사와 파리의 보헤미안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이러한 파리의 ‘벨 에포크'를 화폭에 매혹적으로 담아내었다. 감각적인 포스터 작업으로 유명한 로트렉은 석판화 광고 포스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 고급미술과 저급미술의 경계를 허문 현대 그래픽 포스터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로트렉의 탄생 160주년을 기념하여 마이아트뮤지엄에서 개최되는 <툴루즈-로트렉: 몽마르트의 별> 전은 벨 에포크 파리의 화려함과 그 이면의 인간미를 동시에 조명하는 그의 감각적인 작업들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귀족이었지만 장애를 가진 로트렉의 심리적 결핍과 짧은 비운의 생애에 집중하던 경향을 탈피하고, 그의 작품 곳곳에서 엿보이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비범한 통찰에 주목한다.  






보헤미안적 실험과 개성


로트렉은 특정한 유파에 속하지 않고 다양한 예술 경향을 흡수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양식을 개척하였다. 그는 신체적 장애에 굴하지 않는 호방함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한편, 역동적이고 활기찬 벨 에포크 파리의 밤 문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자유롭게 표현했다. 당대 유명 인사들을 뮤즈로 작업한 포스터 작품들은 절제된 색의 사용과 역동적인 구도가 극도로 감각적일 뿐 아니라 조화로운 서체 배치를 통한 현대적인 레이아웃을 겸비하였다. 


앙리 드 툴루즈 로 트렉, <디방 자포네>, 1892- 1894

 로트렉의 보헤미안적 실험 정신은 그의 석판화 포스터 작업에서 느껴지는 동양적인 요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대표적인 1880년대 작업인 <물랑루즈:라 굴뤼>와 <디방 자포네>에서는 비대칭의 대각선 구도와 평면성, 간결한 색채 대비 등 일본 판화 우키요에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이렇듯 로트렉의 작품은 단순히 상업적인 삽화 또는 광고에 그치지 않고, 복합적이고 실험적인 양식을 토대로 현대 그래픽 디자인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


로트렉은 귀족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몽마르트에 정착해 생활하며 다양한 인간사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장애로 인한 소외를 경험해 온 탓인지 편견 없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에게 다가갔던 그는 특히 매춘부와 같은 하층 계급의 일상적인 모습에 관심을 가졌다. 비난이나 동정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묘사된 그림에서 로트렉이 가졌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과 애정이 엿보인다. 

 

앙리 드 툴루즈 로 트렉, <목욕 중인 여인 - 욕조, 엘르 연작>,1896

 매춘부의 소박한 일상을 담은 판화집 <엘르>는 로트렉의 관찰력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녹아 든 대표적인 작품이다. 사창가에서 시간을 보내며 매춘부의 생활을 직접 가까이서 경험하고 관찰했던 로트렉은 그들을 단순히 에로틱한 성적 대상이 아닌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해 냈다. 인간사의 화려함과 저급함 이면에 놓인 개인으로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인간미를 소탈하게 포착해 낸 로트렉 예술의 비범한 통찰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경계에 선 휴머니스트


툴루즈 로트렉은 경계에 선 예술가이다.  


그는 사람과 삶에 대한 본원적인 연민을 바탕으로 귀족과 하층민, 상업예술과 순수예술, 추함과 아름다움의 경계를 탐구했고, 이러한 로트렉의 다양한 감각적 시도는 미술사의 큰 족적으로 남았다. 추함을 포용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그의 미술은 “인간은 추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던 그의 인생관을 반영하는 듯하다.

 

그의 미술에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추함과 저속함 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로트렉의 시선을 따라가며 우리는 행복과 불행, 아름다움과 추함이 한데 뒤섞인 우리의 인생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아트인사이트 기고글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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