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미술은 인간의 이야기 -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인간과 예술은 불가분의 영역에서 함께 오랜 궤적을 그려 왔다. 인간의 삶과 마음은 곧 예술로 드러나고, 예술은 반대로 인간에게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흔적을 남긴다. 이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역사를 우리는 오늘날 ‘미술사’라 칭한다.
한국의 근현대 미술사는 그 중에서도 다소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이는 우리 민족이 겪었던 시대의 고민과도 상통한다. 나라를 빼앗겼던 시대, 한 순간 동과 서의 문화가 거센 물살처럼 밀려오던 시대,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 갈등하며 저마다의 존재론적 의문을 품고 있던 시대. 한국의 근대 미술은 당대를 살아가던 예술가들의 잠 못 들던 밤을, 그리운 가족과 쓸쓸한 고독을, 도시의 풍경 속 온기와 냉기를 여실히 담고 있다. 말하자면 “시대의 사연을 품고 있는” 이 시대의 미술은 몸소 그 시간을 살아냈던 이들의 인생이, 그 개개인의 마음이 담긴 예술이다.
우진영의 저서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는 바로 이 한국 근현대 미술의 연결성에 주목한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원인 저자는 모네와 피카소보다 김환기와 구본웅을 사랑했던 자신의 내밀한 애정을 바탕으로, 10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가로질러 근대와 현대의 예술가들을 연결한다.
이 책은 총 47명의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다섯 가지 테마로 엮어 낸다. 도시를 매개로 1920년대 경성의 풍경을 묘사하던 김주경과 오늘날 사라져 가는 판잣집을 담아내는 정영주가 만나고, 자화상을 통해 주체적인 욕망을 드러냈던 나혜석은 희미하게 표현된 얼굴을 통해 정해진 사회적 프레임을 탈피하고자 하는 이재헌과 연결된다. 서로 다른 색으로 한국을 화폭에 담아낸 오지호와 김현수, 자아를 향한 분투를 표현한 권진규와 권오상, 그리고 사라져 가는 옛 것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김환기와 손승범의 세계도 저마다의 지점에서 연결된다.
각 ‘연결’을 마무리하며 삽입된 현대 작가들의 인터뷰는 독자로 하여금 두 작가의 작품을 연결하여 이해하는 방식을 단순히 새로운 방법론이 아닌 일종의 예술적 소통으로 이해하도록 한다. 저자가 정성껏 놓아준 다리 위에서 현대 작가들은 자신의 육성으로 화답하며, 과거의 유산이 오늘날 저마다의 고민과 실험 속에서 어떻게 살아 숨쉬고 상호작용하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자는 이 대화를 통해 작품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예술가와 함께 삶의 본질을 사유하는 여정에 동참할 수 있다.
미술은 결국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바뀌며 과거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새로운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미술사를, 그리고 미술 작품에 관심을 둔다는 것은 어쩌면 개인의 단위에서 인간의 살아온 역사를 돌아보는 일이 아닌가 싶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는 100여 점에 달하는 도판과 함께 한국의 근현대 미술을 조망하는, 하나의 훌륭한 종이 위의 갤러리이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나면, 독자는 책 바깥의 진짜 미술관으로 달려가고 싶어질 것이다. 그림을 읽어내는 경험을, 작품을 매개로 예술가와 시공을 넘어 소통하는 경험을 직접 해보고 싶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미술관이 아닌 오늘 바로 이 순간 우리 곁의 일상에서 예술작품과 같은 풍경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술이 멀고 어렵게만 느껴졌다면, 혹은 책임과 과업의 무게에 눌려 삶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과거 누군가의 삶 속 한 장면이 예술작품으로 남아 백 년 뒤의 뒤의 우리에게 말을 건네듯이, 분명 당신의 삶 속에도 예술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우진영 작가가 정성껏 놓아준 이 다리를 건너며, 당신도 자신만의 ‘잇기’를 시작해 보길 바란다. 과거의 슬픔과 오늘의 기쁨, 살아온 날들 속 명암과 고저, 나아가 타인의 예술과 나의 일상을 잇는 그 다정한 시도 끝에는, 분명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당신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트인사이트 기고글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9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