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상념조각

포기할 결심

포기에는 시작보다 더 큰 결심이 필요하다

by 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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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포기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한 해였다.


아무리 노력하고 이어가려고 애써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고, 포기한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며,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는 시간이었다.


흔히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에는 용기와 결심이 필요하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시작은 대개 미지의 영역에 대한 희망과 설렘을 동력 삼는다. 반면, 해오던 것을 끝맺는 일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시작의 결심과 유지를 위해 쏟았던 그간의 노력을 다른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매몰된 시간과 자원, 그리고 ‘조금만 더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가느다란 미련의 줄기를 제 손으로 끊어내는 일. 포기는 어쩌면 자신의 과거와 치열하게 작별하는 두 번째 결심이다. 시작이 전진을 위한 발걸음이라면, 포기는 나를 지키기 위해 언제든 잠시 멈춰 서서 방향을 트는 고독한 결단인 셈이다.


언젠가 지나가듯 읽었던 문구 가운데, “일도, 성취도 나의 삶 위에 있을 뿐”이라는 말이 있다. 결국, 나의 일상이 무너질 정도로 이루어내야 할 일은 없다는 말이다.


많은 이들은 끈질긴 노력 끝에 달성해 낸 나의 성취가 곧 나 자신이고 그 성과들이 모여 스스로의 삶이 된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나조차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취가 무너진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나의 일상, 나의 삶이라는 본질에 대해 다시금 깊이 사유해볼 수 있다. 아무리 화려하고 좋은 집이라도, 그 집이 서 있는 지반이 흔들린다면 얼른 도망치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어떤 때에 끝까지 매진하여 정점에 올라야 하고, 어떤 때에 무기를 버리고 후퇴해야 하는지 우리는 미리 알 수 없다. 인생에는 정해진 매뉴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끝까지 달려본 경험과 도망쳐본 경험 모두가 우리를 성장시킨다는 사실이다.


포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한 실패로 기록되지는 않는다. 물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오히려 나를 잃어버릴 위기에서 스스로를 구해내는 건강한 도망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번의 포기를 통해 우리는 다음 기회에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안목을 얻을 수 있다.


전력을 다해 부딪혀보고, 때로는 뼈아픈 포기를 선택하며, 그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발견해 나가는 일.

어쩌면 이 치열한 시행착오의 반복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진정한 소명이 아닐까.



[아트인사이트 기고글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9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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