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가는 우리를 긍정하기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을 아는가?
시절인연은 모든 만남과 일에는 정해진 시절이 있으며, 그 때가 되어야 인연이 이루어진다는 불교 용어이다. 다르게 말하면, 인연의 때가 다하였다면 억지로 붙잡지 않고 떠나보내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이는 집착을 버리고 마음의 평안을 추구하는 불교 철학을 대변하는 인생의 통찰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들 떠나보낸 옛 풋사랑을 떠올리며 ‘시절인연’을 언급하고는 한다. 그러나 이는 비단 연인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학창시절에는 선생님이, 사회에서는 직장 동료가 될 수도 있다. 삶의 한 지점에서 만났던 사람과 활발히 교류하면서도, 시간이 지나 환경과 상황이 변하면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한 번 맺은 인연을 오래 이어가는 것은 분명 귀한 일이나, 사람의 노력만으로 관계를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친구와의 우정도 마찬가지이다.
고등학교 시절 매일같이 함께 생활하며 무척이나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 성인이 되어 서로 다른 대학교에 진학하면 관계는 변하게 된다. 정확히는, 친구들의 상황과 우정의 활동이 달라진다.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 못하고, 서로에 대해 모르는 일이 많아지고, 선물은 만나서가 아닌 메신저로 전달하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언젠가 신경 써야 할 일과 관계가 늘어나며 사람 사이의 가까운 거리가 피로해진 나를 두고 친구가 자신에게 ‘거리를 둔다’며 서운해했던 일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우정은 이제 유통기한이 다 한 것일까?
생활도, 우선순위도, 사고방식도 우정을 맺던 시기와는 너무도 달라졌다면,
더 이상 우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우주선을 발사할 때에는 궤도의 계산과 예측이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한다. 지상에서는 매우 미세한 각도의 오차라도 우주선이 발사된 이후 우주에서는 그 오차가 훨씬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모종의 동질성과 사소한 오차를 품은 채 함께 출발했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 살펴보면 꽤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날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우주선과 사람이 다른 점은, 사람은 서로 거리를 두고 날아도 충분히 서로를 지켜보고 응원하며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 저마다 우주 속에 있어야만 하는 위치 혹은 서로 간의 거리에 있어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우정의 모습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다.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며 현재의 관계를 예전의 모습으로 바꾸려고 못 살게 굴 이유 또한 없다.
환경이 바뀌고, 경험이 쌓이고, 가치관이 변해가며 저마다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매일 연락을 주고받으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서로를 속속들이 알아야만 좋은 친구인 것은 아니다. 더불어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남에 따라 과거에 당연했던 것들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같다면, 방식이 달라졌을 뿐 우정은 계속 그 자리에 있다.
각자의 삶에 충실한 가운데 서로의 여정을 조용히 지켜보며 응원의 마음을 보내고, 때때로 여유가 될 때 만나 회포를 풀면 된다. 서로의 생활패턴과 정서적 거리를 존중하는 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를 위한 더 성숙한 우정이자, 더욱 지속가능한 우정일지도 모른다.
만남의 횟수와 연락의 빈도를 넘어 서로에 대한 우정에 마음에 집중하자. 서로의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봐주고, 어쩌면 시간이 지나며 찾기 어려워진 과거의 모습을 오래 기억해주자. 그것이 바로 오랜 친구들만이 가질 수 있는 조용하지만 끈끈한 우정일 것이다.
[아트인사이트 기고글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8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