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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Jul 10. 2022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

물물교환, 새러 티즈데일

제목이 물물교환이라 깍쟁이 같은 내용일 것 같지만, 사실은 팍팍 퍼주자는 것이 이 시의 매력이다.


물물교환

새러 티즈데일


삶은 아주 멋진 것들을 팝니다.

모든 아름답고 빛나는 것들을,

벼랑에 하얗게 부서지는 푸른 파도

경이를 컵에 담듯이 올려다 보는

아이들의 얼굴.

음악은 금처럼 휘어지고

내리는 빗속의 솔향기

당신을 사랑하는 눈, 보듬은 팔...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을 위해 써버려요.

사고는 그 값을 매기지는 말아요.

한순간의 엑스터시를 위해

당신이 가졌던 모든 것들을, 가질 수 있는 것들을 다 써버려요.


이 시를 읽어보면 거래 관계 같은 것이 문학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지난 날의 모습을 확 벗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 즐기는 것은 돈을 주고 받는 것과는 다른 영역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현실과는 다르다. 인간이 경제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문학 아니라 그 무엇도 제자리에 설 수가 없게 된다.


물물교환은 인간의 경제적 교환 행위 중에 가장 원초적인 형태에 해당한다. 쌀농사를 짓는 농민이 농기구도 만들고 신발도 만든다면 물물거래도 필요 없을 것이다. 소박한 농사라도 짓는 사람이라면 배곯지 않고 살겠지만 옷도 입고 집도 짓고 살아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을 내어 주고 남에게서 그 가치에 해당하는 만큼의 상품을 사온다. 이것이 물물교환이다. 각각의 상품 가치만큼의 거래가 발생하기 때문에 여기에는 어떠한 가식도 없다. 일부 거래 관계에서 빈틈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전 사회적으로는 차질 없이 거래가 이루어진다. 잉여가치라든지 착취 같은 것은 아직 논할 수 없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원제: 화산 자락에서)에서도 확실한 물물교환이 등장한다. 주인공 사카니시는 건축회사의 촉망받는 직원. 유키코와 마리코, 2명의 여성 동료들과의 관계를 미묘하고도 아름답게 설정해간다.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건축회사에 들어가고 싶고 마음이 아름다운 여성 2명과 반드시 썸을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사카니시처럼 멋진 남성 스타일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기서 마리코는 사카니시의 몸과 마음을 내놓고 만날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아직은 젊은 남자 주인공이 카사노바처럼 달려드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물물교환>에서 살펴본 그 법칙, 완전히 내어놓고 거래해도 좋겠다는 관점에서도 보면 그렇다. 사카니시의 처지에서는 놓치기 너무 아까운 사람이 마리코이며, 마리코의 처지에서는 마찬가지 사카니시가 정말 듬직한 젊은이다. 그렇게 아름다는 처녀 총각이 아름다운 별장 사무실에서 땀흘리고 일하면서 사랑한다는 설정이 참 아름답다. 사카니시는 처음에 쭈뼛쭈뼛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내놓고 마리코를 대한다. 낮이나 밤이나 그들은 사랑하는 커플이 된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사카니시는 유키코와 결혼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유키코에게는 다 내어주지는 못했다. 한여름밤에 청춘남녀가 반딧불이에 의지해서 손을 잡고 걸어가는 장면을 생각하면 가슴 뛰는 부분이 있다고는 하겠지만, 그런 것은 잔잔하게 깔아놓은 모습이다. 다 내어주지는 않고 조금씩 내어 준다. 가랑비에 옷 젖는 게 무섭다고 했던가? 결국 완전히 젖어버리도록 내어놓은 마리코와의 관계를 추월해버린다. 열탕에서 몸을 뜨겁게 데웠다가 온탕에서 느긋하게 데우는 방식? 거래라고 한다면 목돈을 한꺼번에 주는 방식을 택했다가 결국 조금씩 푼돈을 적금하는 방식? 


그 어느 것이든 결국 거래고 교환이다. 가만히 폼을 잡고 있으면 아름다운 사람이 내게 다가올 거라 믿는다면 부질없다. 배용준쯤 된다면 모르겠다만. 우리같은 필부들은 그런 것을 기대하고 살 수 없다. 꼭 남녀관계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가 한 걸음 다가가 열 마디 말을 건네고 음료 2잔을 대접한다면, 딴 그만큼의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이왕이면 과감한 것이 좋다. 티즈데일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마음에 담기 위해, 경이롭게 쳐다보는 아이들의 얼굴을 만나는데에도 뭔가 액션을 취했다는 것이다. 한 순간의 엑스터시(for a breath of ecstasy)라도 좋으니 아낌없이 바치라는 것이 물물교환, barter가 되겠다.


<여름은 오래 그것에 남아>에서 마리코와의 관계는 완전히 끝나는 것으로 나온다. 그게 독자로서도 너무 아쉽게 느껴지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 아름다운 여름별장을 사카니시 부부가 마리코에게서 매입하는 대목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아름다운 여름날, 사카니시가 아낌없이 퍼 준 것이 그냥 옛날 일만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어쩐지 뭔가가 있다. 여름날의 향기는 너무 진했다. 두 사람 간에 부동산을 사고 팔았는데, 분명 만남이 있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그 아름다운 장소에서 만났을 것이다. 아름다운 추억이 그렇게 끝나서는 너무 아깝다고 믿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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