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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Jul 08. 2020

나, 춘천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어.

근화동 190

서울에서 춘천으로 향하는 경춘선 타본 적 있어? 아니지, 너는 홍대에서 자주 공연을 하니까 네가 나보다 더 많이 타봤을 수도 있겠구나. 질문이 좀 웃겼네. 경춘선 타려고 플랫폼에서 기다릴 때 말이야. 한 번은 기차가 20분 있다가 온다는 얘기에 대합실에 가서 떡볶이랑 어묵을 사 먹고 시간 맞춰 올라왔거든. 근데 그새 사람이 얼마나 많아졌던지, 나는 반대쪽 지하철 타는 곳까지 밀려서 줄을 서야 했어. 그 후로는 춘천 갈 때 플랫폼에 사람이 별로 없어도 일단 문 앞에 서있는다. 맨 뒷줄에서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보며 ‘이번 열차 탈 수 있을까’ 하고 조바심 내는 기분이 별로더라고.

그렇게 줄을 서 있을 때, 세 번째 줄에 있는 사람까지는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 같아. 가끔 등산복 입은 어른들이 문이 열리기 무섭게 먼저 밀고 들어가 앉아버리시면 별 수 없지만 말이야. 서울에서 춘천까지 한 시간 반 넘게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지만 운 좋게 앉아서 출발하는 날에는 ‘이 정도는 끄떡없지’ 하는 말을 속으로 되뇌게 돼. 너도 별 것도 아닌 일에 별안간 용기가 나는 순간들이 있지 않아?


그럴 날엔 가만히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가다가도, 보리떡 파는 아주머니가 카트를 밀고

오실 때 고개를 들어 그걸 구경하거나 씩씩하게 손을 들어 보리떡을 사기도 해. 나는 원래 지하철에서 쿨토시나 압박 스타킹 같은 걸 파시는 분들이 오면 눈을 감고 음악을 들어버리거나 평소보다 더 열심히 책을 읽는 사람이잖아. 행여나 눈이 마주치면 사야 될까 봐서.

그거 알아? 지하철 안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에 대한 규제를 점점 강화한대. 이거 불법이라더라. 사실 불법이라는 걸 알게 된지는 좀 됐지만. 지난번에는 어떤 할아버지가 건전지를 넣으면 말괄량이처럼 돌아다니는 강아지 인형을 팔고 있었는데 누가 신고를 했는지 ‘지금 차내에서 물건을 팔고 계신 분은 당장 내려달라’고 안내 방송이 나왔어. 할아버지가 처음에는 당황한 기색 없이 강아지 소개를 이어가셨는데 그 방송이 두 번씩이나 나오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힐끔거리고 결국 할아버지는 다음 역에서 서둘러 내리셨지.     


친구가 바보 같은 소리라고 핀잔을 줬는데, 나는 이동상인 분들을 보면 짠한 마음이 들어서 규제를 좀 적당히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 근데 우리 다른 사람을 함부로 부러워하거나 동정하지 않기로 했었지. 쾌적한 지하철 환경 조성만큼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도 얼른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거랑은 별개로 춘천 가는 지하철에서 사 먹은 보리떡은 정말 맛있었어. 아줌마가 경주 특산물이라면서 직접 공수해 오셨다고 하더라. 나는 알 길이 없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체로 믿어버리는 것 같아. 누가 나더러 ‘큰일은 못할 성격’ 이랬는데 이런 걸 두고 하는 소리였을까?

서울에서 춘천에 가는 방법 말이야. 시외버스를 타도 되고 ITX를 타도 되는데 내가 기어코 가장 오래 걸리는 경춘선을 타고 가는 이유, 말한 적이 있던가? 경춘선 의자가 너무 예뻐서야. 너도 알지. 밝은 초록색 바탕에 중간중간 빨강, 파랑 그라데이션 들어간 문양이 박혀 있는 의자. 초록색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 괜히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크게 내쉬고 싶어지잖아. 나만 그래?

초록색 예쁜 의자에 앉아 춘천으로 향하다 보면 대성리를 지나고, 가평을 지나는 동안 온통 초록인 세상이 펼쳐져. 도시에서는 자연이 만든 초록색을 볼 일이 많지 않으니까, 산이나 들처럼 초록이 가득한 풍경을 보면 ‘지금 내가 어디론가 가고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것 같아.

나는 경춘선을 타고 가는 춘천이 좋아. 춘천에 네가 있으니까 더 좋지. 사실 예전에는 춘천이 되게 멀리 있다고 생각했어. 춘천으로 오라는 너의 노랫말을 들었을 때, 결심하듯 춘천행을 택했으니까. 내가 종로나 강남에 나갈 때 주먹을 불끈 쥐게 되지는 않을 거잖아. 그 후로 줄곧 널 만나러 춘천에 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는 사이 그 길 곳곳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숨겨뒀나 봐. 여정이란 게 그런 거겠지.


그러고 보니 우리 요 몇 달 간은 ‘여정’이라는 단어를 정말 많이 주고받았네. 너는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고 나도 여지없이 이십대의 중반에 들어섰기 때문일까. 지나온 날들과 지금 이 순간에도 지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우리 이 시기를 지나며 겪는 모든 일들, 형편없고 아찔한 기억들까지 모두를 여정이라고 여기기로 했는데, 잘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자신이 없어서 자주 유난을 떠는 것 같아.

너는 넘어지고 일어날 때마다 뭐라도 주워서 일어나는 사람이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네가 새로운 일을 겪은 뒤에 깨달은 바나 배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줄 때가 좋아. 그리고 너는 곧잘 흥얼거리면서 그걸 노래로 만들어내잖아. 나도 배우는 걸 좋아하지만 많이 울었던 일을 돌이키며 기어코 많이 배웠다고 말하는 게 아직은 기만처럼 느껴져. 두서를 잡아 말하는 일에도 서툴고.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쓰나 봐.


네가 내 나이 즈음을 지나오며 있었던 일들을 말해줄 때 어떤 날은 안도가 되고, 어떤 날은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음악을 하겠다며 서울에 자취방을 구해 살 때, 너는 자주 좌절하고 그걸 또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거짓말을 했다고 그랬지. 나는 넘어지는 게 무서워서 잘 뛰지도 않고 내가 뱉은 말에 책임지는 것도 두려운 사람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네가 멋지다고 생각했어. 그런 말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쯤은 나도 알거든.

타지에 가서 살아보고서 춘천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다고 말했잖아. 그리운 곳이 있다는 건 뭘까. 나는 짧은 여행에도 내 집이 그리워질 때가 있는 것 같아. 화려하고 사람이 많은 곳이나 요즘 말로 너무 ‘힙한’ 곳에 잠깐 외출을 한 날에도 금세 동네가 그리워지지. 확실히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외로움보다는 덜 슬픈 단어 같아. 그래서 좋다고.


어딘가가 그립다는 건 어쩌면 거기에 있는 사람이 보고싶다는 말을 좀 더 담백하게 표현하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 가족이나 친구처럼 여전히 거기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더 이상 거기 없거나 거기 있어도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을 거야. 어쨌든 그리운 대상이 있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말하고 쓰고 노래하던 것들도 거의 그리운 것들이었잖아.

그러니까 내가 언젠가 춘천이 그리워진다면 그건 아마 네가 보고싶다는 얘기일 거야. 그때 네가 더 이상 거기 없거나, 거기 있어도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너는 춘천에 계속 살고 싶다고 그랬지. 여기서 아저씨도 되고, 할아버지도 되고, 그렇게 쭉 살고 싶다고. 그러니까 내가 춘천이 그립다는 얘기를 넌지시 건네면 너는 여전히 거기 있는 사람으로 이렇게 말해주라. “돌아와요, 여기 춘천에.”     


다 왔나 보다. 나 곧 내려. 이번에 며칠 춘천에 머물기로 했지만, 그것도 정말 잠깐이겠지. 우리는 또 어디로 가고 있을까. 글쎄. 그런 건 잘 몰라도 너한테 이번 ‘여정’에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다. 지금이 그리워지는 순간도 분명 올 거야. 그때 꺼내볼 이야기들을 미리 전해두는 거라 생각해주길.


- 춘천으로 가는 경춘선, 초록빛 의자에 앉아


https://www.melon.com/song/detail.htm?songId=30436831&ref=W10600

* 이 원고는 2018年 어반플레이 웹매거진에 '춘천 음악기행' 시리즈로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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