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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Jul 14. 2020

일단은 도망치듯 골목을 빠져나오며

조양동 138-14

대체 “춘천 닭갈비”는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우리 동네만 해도 지하철역 앞에 하나, 광장 사거리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두 개, 글쎄 세 곳의 춘천 닭갈비집이 있다니까. 심지어 그중에 하나는 “원조 춘천 닭갈비”야. 전국에 춘천 닭갈비라는 상호를 가진 식당이 몇 개나 될지 궁금해. 춘천 대신 식당이 진짜로 위치한 지역의 이름을 내건 호기로운 식당을 찾고 싶기도 하고.

하여간 너를 처음 만났을 때도 내가 그런 질문을 했었지. 춘천은 어쩌다 닭갈비로 유명해졌냐고. 너는 유래는 말해주지도 못하면서 ‘서울 애들이 만나면 삼겹살을 먹듯이 춘천 애들은 만나면 닭갈비를 먹으러 간다’는 뚱딴지같은 대답을 했잖아. 난 서울 살지만, 서울 애들이 만나면 삼겹살 먹는다는 소리는 그때 처음 들었어.     


그래도 춘천 애들은 만나면 닭갈비를 먹으러 간다는 얘기를 들으니 그런 욕심이 들더라. 로컬들이 가는 닭갈비집을 기어이 알아내서 가고 싶은 마음. 춘천에 온 여행객들이 많이 가는 닭갈비집과 진짜 춘천 사는 사람들이 자주 가는 닭갈비집은 다를 것 같았거든. 근데 네가 알려준 그 집은 오늘도 사람이 너무 많더라. 우리 지난번에도 갔다가 줄이 길어서 못 먹었지.

오늘도 거긴 못 가고 닭갈비 골목에서 제일 맛있는 집이라고 추천받은 곳에 왔어. 여기로 가달라고 했더니 택시 아저씨도 이 집을 아신다더라. 지역 불문 절대 불변의 진리, 택시 아저씨가 인정하는 집은 진짜 맛집이야. 아저씨가 닭갈비는 무조건 손님 많은 집 가서 먹으래. 오붓하게 먹는답시고 사람 없는 데에 갈 생각은 하지도 말라면서. 아저씨가 아는 닭갈비집 브리핑을 내내 들으면서 왔지. 중앙시장에 닭 불고기가 있는데 그건 명 짧은 사람은 먹지도 못한다던데? 줄이 길어서 자기 먹을 차례 기다리다 죽는다고.     

네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값싼 모니터 스피커 두 개와 유행이 지난 오디오 카드를 사려고 아르바이트를 구한답시고 여기 이 닭갈비 골목을 전전했다고 했었지. 짧은 머리에 불만 섞인 얼굴을 하고 닭갈비 판 긁을 자리를 열심히 찾는데 닭갈비집 사장님들한테는 남자들은 꼼꼼하지 못하다는 편견이 가득했다고. 여자 알바만 선호하던 ‘이 바닥’에서 유일하게 너를 고용한 그 가게가 닭갈비 골목에서 제일 장사 잘되는 집이었다 그랬잖아.     


이제 너를 조금은 알 만하다 싶어졌을 때쯤 나는 다시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 집이 ‘제일’ 장사가 잘되는 집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어느 정도 손님이 꽤나 오는 집이었을는지는 몰라도 ‘제일’ 유명한 집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했어. 그게 네가 네 주변의 것들에 애정을 가지고 자부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그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닭갈비 판을 긁은 덕에 네가 모니터 스피커도 사고 오디오 카드도 사고 이렇게 음악가가 되었네.     

아르바이트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도 할 말이 많아. 나야 지금도 가난하지만 더 짠하도록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려보자면, 아마 20대 초반이겠지. 그때 난 아르바이트를 정말 많이 했어. 또 나는 최저시급이 4300원이면 한 시간에 4800원 주는 데 가서 알바를 했어. 시급이 5200원까지 오르면 시간당 6000원 주는 알바 자리를 찾아서 구했지. 나한테는 그게 내 자부심이었어. 그때는 돈 없는 게 부끄러울 시절도 아니고, 그 나이에 아르바이트에 몰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에 허리를 얼마나 꼿꼿하게 펴고 다녔는지 몰라.     


그러다 너무 가고 싶은 여행지가 있어서 인쇄소에서도 알바를 한 적이 있거든. 그런 곳은 주로 밤에 일을 해야 하니까 일당이 또 짭짤하단 말이야. 하루 이틀 밤을 새우며 인쇄소 작업을 뛰고 그 대가를 두둑이 챙겨 받아 나오면 새벽에 아침 열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피곤하지도 않았다니까.

인쇄소에서 어떤 일을 했느냐고? 밤새도록 슈퍼주니어나 소녀시대 앨범을 포장하는 거야. 일단 저녁 9시쯤 인쇄소에 도착하면 각서부터 써야 해. 각서의 내용은 앨범에 대해 어디 가서 스포일러 하지 않을 것, 사진 유출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 이런 식인데, 안 지키면 3대가 망한다면서 반장님이 겁을 엄청 줬어.      


거기서 새벽 넘어갈 때 야참으로 김치찌개나 샌드위치 같은 걸 먹으면 그게 얼마나 맛있던지 힘이 나서 더 꼼꼼히 슈퍼주니어 앨범의 커버를 접고, 더 열심히 소녀시대 음반을 박스 채 들어 옮겼지. 거기 반장님이 나더러 아예 여기 인쇄소에 들어올 생각 없냐면서 날 영입하려고 애를 많이 쓰셨는데. 알잖아 너도, 나 야무진 거. 그러면 나는 아침이 오기가 무섭게 ‘아 반장님, 저 꿈이 있다니깐요!’ 하면서 도망치듯 인쇄소를 빠져나왔는데. 그때,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게 뭐였을까.     

네 노래를 듣고 여기에 와서 그런지 바쁘게 돌아가는 닭갈비집의 구석구석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사연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저쪽에서 깻잎과 마늘을 가져다주는 사람도 그때의 너처럼 갖고 싶은 물건이 있는 걸까. 방금 이쪽으로 와서 타지 않게 판을 계속 저어 주라며 주걱을 넘기고 간 사람도 그때의 나처럼 가고 싶은 어딘가가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자니 저 사람들의 바쁜 손발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거야.     

난 요즘 들어 부쩍 이런 말을 자주 들어. “너 그때 000되고 싶다고 그렇게 열심이었잖아”, “야~ 너 전에 **한다고 엄청 뽈뽈대고 다녔었는데 요즘도 하냐” 그럼 나는 속으로는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고 있으면서도 겉으론 빤빤하게 ‘언제적 얘기를 하냐’는 식으로 피식 웃고 말아버리지.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꿈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전개가 고리타분하긴 해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에 허리를 더 꼿꼿하게 세우게 돼.     


그래. 별로 씁쓸해할 필요도 없이, 나도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일도 많던 때가 있었어. 그건 인쇄소 반장님께 큰소리쳤던 “꿈”같은 것이기도 했고, 꿈이라 하기에는 너무 크거나 작은 일들도 있었던 것 같네. 얼마 전에 볼 일이 있어 간만에 인쇄소 골목에 갔는데 그 사이에 문만 닫아놓고 기계를 돌리지 않는 인쇄소들이 늘어났더라. 그것도 별로 씁쓸하지는 않았는데 반장님 계시는 인쇄소 앞으로는 못 가보겠더라고. 반장님이 그놈의 잘난 꿈 이뤘냐고 성화라도 내실까 싶어서 그래.     

춘천에 닭갈비가 이렇게 유명해진 이유 말이야. 춘천에 미군부대가 많았던 6-70년대에 마침 또 이 근처에 양계장, 도계장이 많았는데 미군부대에 마침 양배추와 닭을 납품하다가 사람들이 그 두 가지를 섞어서 먹기 시작했고 그렇게 닭갈비가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대. 또 누구는 춘천 하면 닭갈비가 떠오르게끔 춘천과 닭갈비 두 단어를 함께 반복적으로 신문에 내면서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마케팅 덕이라고도 하더라.     

우연이든 필연이든 우리도 사는 동안 줄곧 뭔가를 원했다가 잠시 가졌다가, 이내 잊어버리는 일을 반복하겠지. 속에 어떤 짜여진 의도나 씁쓸한 이력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를 느끼지도 못할 만큼 눈 앞에 놓인 것들로 바쁠 테니 골목을 빠져나가듯 또 그렇게 지나가게 될 거야.      

아 근데 그게 뭐 어때서. 난 열심히 여러 오늘을 살아내며 왔을 뿐인데 어찌어찌 지나온 길들을 다 설명해보라는 식으로 물음을 던지는 사람들이 요즘은 아주 성가셔. 내가 나중에 더 나이가 들고 혹시나 더 지혜로워지면 ‘당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이러이러한 유래가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라고, 그런 이야기는 그때나 가서 떠들자고 대신 얘기 좀 해주라. 난 지금 또 급하게 해야 할 말이 있어서.     


- 여기 볶음밥 추가요, 춘천 닭갈비집에서


https://www.melon.com/song/detail.htm?songId=30436824

* 이 원고는 2018年 어반플레이 웹매거진에 '춘천 음악기행' 시리즈로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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