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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Dec 30. 2020

미워하는 자들을 위한 변론

넷플릭스 영화 <피엘레스(피부), 2017>

요즘은 책을 읽기가 어렵습니다. 하루에  페이지를  읽지 못하는 날도 있습니다. 머릿속에 가득  어떤 생각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어서입니다. (사랑에 빠졌거든요


...라고 말하면  글이  재밌어지겠지만) 아차, 저는 그만 미움에 빠졌습니다. 저는 지금 미워하는 중입니다. 누군가를 열렬히 미워하는 마음도 나에게 오랫동안 금기였는데 말이죠.
 
해가  있는 동안은 미운 사람의 미운 점을 구체적으로 세느라 시간을 허비하다가 해가 지면 집에  책을 펼쳐놓고 존엄과 아름다움,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있노라면 자신이 얼마나 가증스럽게 느껴지는지요.
 
이처럼 다른 이를 미워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편이 훨씬 쉽고 간편합니다. 마주칠 때마다 표정관리를  필요가 없고 죄책감이 덜하며 무엇보다 마음이 누그러든 뒤에 어색한 화해를 나누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미워한 역사는 끊임없이 흘러왔습니다.
타고난 것과 손상된 , 있다 없어진 것과 없다 있어진 것들을 미워했고  뒤에는 어색한 화해 대신  정신승리가 따랐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미운 점들에게 ‘괜찮은각주를 붙여주는 것이 삶을 지속하기 위한 비밀인지도요.
 
에두아르도 카사노바 감독의 영화 <피엘레스>에는 신체의 일부가 변형되었거나 아예 없는 사람, 자신의 몸을 거부하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거나 인정할  없는 부위의 기능 상실을 바라고 있는 사람 등이 등장합니다.


https://www.netflix.com/title/80100054?s=i&trkid=13747225


영화는 70  동안 인물들이 울고 웃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주는데,  처절함은 범상치 않은 그들의 사정에서 비롯되지 않고 그저 우리의 매일과 닮아있습니다.
 
평생 자신의 몸과 마음을 긍정하며 살기 위해 애쓰는 우리 모두를 생각하니 전부가 안쓰럽고 딱하게 느껴지기도 하나, 우리는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각자가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서로를 눈길로 표정으로 말로 행동으로 아프게 하겠지요.
 
순진한 사람의 혐오 섞인 볼멘소리와 착한 사람의 무례한 오지랖 같은  뭇매처럼 맞으며  손에도 혹여나 몽둥이가 들려져 있지는 않은지 들여다보기까지 하려면 오늘도 나는 바쁠 예정입니다.

모두를 사랑하며 살고 싶었는데 역시나 어렵겠고요.
다만 내일은 나도, 남도 조금  미워하는 하루가 되길. 그렇게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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