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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asel Aug 31. 2021

레이크 디스트릭트 (Lake District)

2017년 9월.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잉글랜드 북부의 호수가 많은 지역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파 시인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고향으로도 유명하고, 푸른색 재킷을 입은 토끼 피터 래빗(Peter Rabbit)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워낙에 자연환경이 깨끗해서 영국에서도 휴양지로도 잘 알려진 곳인데, 어쩐지 '호수 지방'이라는 이름이 내게는 호반의 고장이라는 춘천을 연상시킨다.


나는 2012년 영국 여행을 할 때, 잉글랜드 런던에서부터 시작하여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올라가는 길에 이틀을 윈더미어 역 근처의 B&B에서 묵었다.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오락 시설은 거의 없지만, 나야 원체 취향이 늙은이 같기도 하고 당시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한창 심란할 때라 호숫가를 산책하는 게 마냥 좋았던 기억이 있다. 2017년 가을, 나는 런던에서 출발한 친구 C와 함께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다시 찾았다. 



윈더미어 (Windermere)


레이크 디스트릭트 여행의 출발점은 대부분 윈더미어(Windermere)다. 옥센홀름 레이크 디스트릭트(Oxenholme Lake District) 역에서 윈더미어로 가는 열차가 가장 보편적이고 편리한 대중교통 수단이기 때문이다.

윈더미어 역에서 30분 정도를 쭉 내려가다 보면 선착장이 있는 큰 호숫가에 도착하는데, 그곳 보네스 온 윈더미어(Bowness on Windermere)가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선착장에서 큰 보트를 타고 호숫가를 쭉 둘러보는 투어가 유명하고, 꼭 보트를 타지 않아도 호숫가 앞에 늘 진을 치고 있는 백조와 오리, 새떼들을 보며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C와 방문했던 날 역시 호숫가 앞에는 백조와 오리 떼가 사람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진을 친 채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아마 계절마다 바라볼 수 있는 풍경에는 차이가 있겠으나 내가 방문했을 때는 날씨가 아주 화창한 가을날이라 차갑고 바스락거리는 늦가을의 풍경이 상쾌했다. 내가 윈더미어를 처음 방문한 것은 2012년의 여름이었지만, 사실 나는 윈더미어의 겨울 모습도 알고 있다. 수십 년 전 작은 아버지께서 영국에서 박사 공부를 하실 때 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고 작은 아버지 부부와 함께 윈더미어 여행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야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가족 앨범의 귀퉁이에는 거의 흑과 백의 색조로 이루어진 윈더미어의 겨울 호숫가 풍경이 남아 있었다. 물론 그 고적한 사진 속에는 아직 여행을 즐기실 체력과 활기가 남아 있던 할머니의 모습도 있다. 20년 전의 아직 젊은 아버지, 작은 아버지 부부, 할머니는 내가 갔던 윈더미어의 호숫가 앞, 바로 그 똑같은 선착장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다른 점이라면 그 사진 속 호수는 차갑고, 선착장 앞에는 하얀 눈이 쌓여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할머니는 '영국'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그 시절의 여행이 생각나시는지 약간 얼굴이 상기되어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곤 하는데, 당신의 기억에 가장 좋았던 곳은 이 윈더미어의 호숫가였던 것 같다. 먼 한국땅에서 여행을 온 할머니의 시선에는 아주 깨끗한 호숫가에 작고 예쁜 영국식 주택들이 늘어선 동화책 속에나 나올 법한 풍경처럼 보이셨는지, 아니면 아들들과 함께하셨던 기차 여행이 즐거우셨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할머니는 여기를 좋아하셨다. 그리고 이 여행에 대한 아빠와 작은 아버지의 회고는 설탕 옷이 입혀진 듯한 알록달록한 할머니 버전의 회고와는 사뭇 달라서, 우리 가족은 윈더미어 얘기만 나오면 자동적으로 좀 피식하고 웃게 된다. 열차를 놓칠까 봐 죽어라고 뛰었던 기억, 작은 호숫가 마을까지 와서도 버터 냄새나는 음식은 싫다고 하시던 할머니 때문에 중국집을 찾아야 했던 기억 등, 아빠가 회고하는 윈더미어 여행은 여행이라기보다 각종 수난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그때 할머니를 모시고 갔던 중국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서(제법 유명한 집이다) 나 역시 이곳을 두 번째로 방문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뭔가 윈더미어와 보네스 온 윈더미어는 잘 알고 있는 곳처럼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은 작게 쪼그라든 할머니의 십수 년 전 모습, 낭랑한 걸음걸이로 호숫가를 산책하셨을 모습이 떠오르는 바람에 나에게 윈더미어, 윈더미어 하는 단어의 어감은 어쩐지 할머니-를 늘여부르는 어조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화창한 가을날의 레이크 디스트릭트(윈더미어, 그래스미어)


혹스헤드 (Hawkshead)

한편 나에게 사뭇 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은 윈더미어에서 버스를 타고 좀 더 깊숙한 구릉지대로 들어가야 하는 '혹스헤드'라는 작은 마을이다. 여기는 아주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피터 래빗의 창작자인 베아트리스 포터와 관련한 작은 박물관이 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니어 소리(Near Sawrey)라는 마을도 갈 수 있는데 두 마을 모두 피터 래빗과 관계가 있는 곳이다. 

처음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방문했을 던 2012년, 어디를 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나는 무턱대고 일단 피터 래빗 뮤지엄이 있다는 혹스헤드로 갔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윈더미어에서도 출발하는 버스가 하루에 몇 대 없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윈더미어에서 니어 소리까지 하루에 다 다녀와야 했는데, 버스 시간을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혹스헤드에서 피터 래빗 뮤지엄을 보는 게 고작이었고 다음 버스가 오기 전까지는 정확히 1시간이 남아 있었다. 어디에 가기도 애매하고, 무턱대고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기에도 애매한 시간. 그래서 나는 무턱대고 마을을 둘러본 뒤, 마을을 감싸고 있는 그 뒤편의 언덕을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언덕은 마을의 교회 뒤편에 있었는데 처음에 갔을 때도 사진 속의 풍경처럼 날씨가 좀 스산했던 기억이 난다. 비가 왔었는지, 여하튼 맑지는 않았는데 올라가 보니 양 떼가 풀을 뜯는 언덕 바로 앞이 마을의 공동묘지였다. 여전히 작은 마을이라 세례와 결혼, 장례를 모두 교회에서 담당하여, 교회 뒤편의 언덕을 묘지로 쓰는 모양이었다. 공동묘지라고 하면 어쩐지 무섭고 싸늘한 느낌이 들 법도 한데, 그때의 나는 그런 생각이 들기보다는 어쩐지 이 작은 마을에서 살다 간 사람들의 삶이 정겹기도 하고 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관광객의 시선으로 보면 특별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는데도, 그냥 사람의 삶이라는 걸 멀리서 관조하는 느낌이 들었다. 공동묘지에는 몇 백 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부터 190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의 묘비가 듬성듬성 솟아난 버섯처럼 늘어져 있었고, 그 뒤로는 교회의 풍경과 먼 구릉, 작은 집들이 보였다. 아마 이곳에 묻힌 사람들 중 몇몇은 여기에서 태어나 여기서 결혼하고 여기서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사람의 삶이라는 게 도대체 뭔가 하는 센티멘털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삶이라는 게 별 거 아닐지도 몰라, 하는 시니컬한 생각도.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다 묘지를 거닐던 나를 눈물짓게 만들었던 건 클리셰 중의 클리셰인 'God is Love'라는 문구가 적힌 작은 묘비였다. 십자가 모양의 돌 묘비는 궂은 날씨와 세월 때문에 모서리가 둥글게 깎여 있었고, 돌의 파인 틈 사이에는 촉촉한 녹색 이끼들이 자라고 있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그 문구는 조금도 특별할 게 없는데도, 이상하게 혹스 헤드에서 본 그 구릉 묘지의 풍경과 낡은 묘비는 당시 여러 가지 이유로 삶에 짓눌려 있던 나를 조금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 언덕을 내려가던 길을 기억한다. 남의 마을 공동묘지에서 울음을 터뜨리고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마음이 정화되는 경험을 했다. 그러고 나서 언덕을 내려가는 길에 나는 몸이 약간 불편한 동네 아저씨와 마주쳤는데 어떻게 봐도 이 동네 사람이 아닌 아시아 여자아이를 보고 그 아저씨는 어디서 왔냐고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왔어요, 그렇게 짧게 대답한 후 나는 언덕길에 있는 울타리 문을 아저씨를 위해 열어주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상냥하게 웃으며, '고마워요 미스 코리아!'라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스산한 날씨 때문에 머플러로 목을 둘둘 감싸고 비에 젖은 생쥐 꼴로 공동묘지를 내려오는 나의 몰골은, 어떻게 봐도 내가 알고 있는 미스 코리아의 그것과는 닮은 점이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그냥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나를 한국 아가씨(미스 코리아, 미인 미스 코리아와 동음이의어)라고 부르던 그 아저씨의 쾌활함이 나를 피식 웃게 만들었다.  


이번에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방문했을 때도 나는 그때의 생각에 혹스헤드로 항하며 친구 C를 데려갔는데, 친구는 안 그래도 흐린 날씨에 음산해진 풍경을 바라보며 얼른 따뜻하고 아늑한 실내로 돌아가자며 손사래를 쳤다. 그 혹스헤드 묘지 주변의 기운이 심상치가 않다나, 기가 세다나 뭐라나. 내 친구는 약간 초자연적인 감각이 발달한 친구인데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며 묘지 위까지 올라가 보자고 하는 나의 제안을 굳이 만류했다. 그렇지만 나쁜 기운은 아니고 그 공간의 기운이 너무 셀뿐이라는 데, 그런 감각이 영 둔한 나로서는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내가 '나에게는 특별한 곳이야, 왜냐하면 6년 전에 내가 힘들었을 때 나를 위로해 준 곳이거든'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친구는 그럴 만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 강한 기운이 너를 도와준 게 아닐까 라면서.


음울한 날씨 탓인지 아니면 정말 묘지의 기운이 강한 탓인지 정확한 이유는 없지만 여기 혹스헤드도 여전히 나에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물론 남들이 꼭 가봐야 한다는 관광지를 가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냥 무턱대고 여행을 다니는 도중에 이렇게 만나게 되는 잊지 못할 장소들을 좋아한다. 이런 곳들은 가끔씩 다시 기억 위로 떠오르기도 하고, 언젠가 다시 한번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곳에 남들이 모르는 내 기억을 두고 왔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나는 이방인이지만, 그렇게 두고 온 내 기억 덕분에 나는 어쩐지 이런 곳들에 대해서는 반갑고 애틋한 마음이 생긴다. 별로 친하지는 않아도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를 보면 자연히 그 시절의 모습이 떠올라 싱긋 미소 짓게 되는 것처럼, 먼 섬나라의 이 호수 지방은 이제 내게 그런 미소를 짓게 만드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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