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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May 22. 2018

심통 난 허리 환자

48. 엄마랑 순례길 - 어마어마한 김치와 삐끗한 허리와 레온 파라도르

10월 26일

Madrid >> León 기차 이동


마드리드에서의 하룻밤이 지났다. 엄마와 나는 일찌감치 일어나 전철을 타고 차마르틴 역으로 향한다. 이미 여러 번 왔다 갔다 한 곳이라 꽤 익숙하다. 미리 예약한 열차표를 확인하며 차마르틴 역에서 우리가 탈 열차 넘버도 확인한다. 아주 안정적으로 도착했다. 엄마와 커피 한잔 하기로 한다.


카페 콘 레체를 두 잔 주문해 맘 편하게 마시고 기차를 타러 간다. 짐 검사를 위해 가방을 검사대에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쳐 멘다. 그때 허리에서 우지끈! 하는 느낌이 온다. 내가 열렬히 원하던 김치, 그놈의 김치를 엄마가 정말 많이 사 오셨는데 그걸 다 내 가방에 넣은 터라 가방이 천근만근인 터였다. 김치와 몇 가지 짐 덕 분에 이미 가방은 체감 20kg. 불안감이 엄습한다.


레온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내 허리는 점점 아파온다. 상체를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기 시작했다. 내 안색이 썩 좋지 않았는지 엄마가 나의 상태를 살핀다. 엄마는 고질적인 협착증을 갖고 계시고, 최근 컨디션이 안 좋았던 터라 굉장히 강한 진통제를 갖고 계셨다. 일단 호텔에서 체크인을 한 뒤 그 강한 약을 한번 먹어보기로 한다.


오늘 묵을 호텔은 레온의 파라도르 호텔, 산마르코스이다. 한 번쯤은 파라도르에서 묵어보고 싶어서 욕심을 내고 있었는데, 마침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특가가 뜨길래 얼른 예약했던 방이었다. 참고로 내가 엄마와 숙소를 예약할 때 반드시 지키려고 했던 기준이 있다면 바로 그것은 '무조건 싱글일 것!' 잠을 잘 때 엄마는 예민한 편이고 나는 둔감한 편이라 둘은 절대로 같은 침대를 쓸 수 없었다. 그것도 잠버릇이 제법 고약한 나와 함께라면 엄마는 잠을 절대 못 주무실 것이 분명했다. 이 순례가 끝난 뒤 이베리아 반도를 여행할 때도 가급적 이 기준을 지키기 위해 나는 나름대로 부단히 노력했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내리고 엄마의 약을 내가 먹는다. 순례길을 떠나기 직전까지 최악의 컨디션이었다는 엄마는 정작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주고 계셨다. 아무래도 엄마의 몸과 마음이 '자 이제 순례 시작이니까 건강하자!'하고 단단히 준비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허리가 너무 아파 낑낑대다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다, 레온을 좀 돌아다녀보자 하고 나서기로 한다. 점심도 먹어야겠고 말이다.

파라도르 앞 광장의 순례자 동상 앞에서 세상 밝게 웃는 엄마.

파라도르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성당, 오른쪽 사진은 파라도르 호텔의 입구. 외부 공사 중이라 근사한 외관을 볼 수 없었다.


레온에는 스페인의 기념비적인 건축가 가우디의 초기 작품이 하나 있다. 까사 데 보띠네스 Casa de Botines, 고딕 양식이 녹아 있는 현대 건물이다. 엄마와는 이 여행의 말미에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에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 건물을 자세히 보도록 말씀드렸다. 이걸 보면 나중에 가우디의 건축물들이 어떻게 바뀌어가는지 더욱 잘 느낄 수 있으니까..! 엄마 머릿속에도 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점심 먹을 곳을 찾기 위해 레온의 시가지를 돌아다닌다.

오~ 화보인데! 하면서 신나서 사진을 계속 찍는다.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아 레온 대성당 광장 근처를 그냥 돌다가 무난한 메뉴 델 디아를 하는 곳을 발견해 들어간다. 이 곳에서 정말 무난한 식사를 한다. 여러 앤틱한 아이템들이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썩 나쁘지는 않다. 인스타용 맛집이겠는걸.. 하고 생각하며 사진을 찍는다. 엄마는 아직 시차 적응 중이라 커피가 필수이시다. 안타깝게도 이 곳에는 믹스커피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날부터 엄마의 지정 커피는 카페 콘 레체에 설탕 하나가 된다.

레온 대성당 앞에서 한 컷.

레온 대성당은 오르간 콘서트의 리허설 중이라 점심 동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 근처를 배회하며 조금 기다렸다가 오픈 시간을 맞추어 들어간다.


내가 레온 대성당에서 기대한 것은 그 유명한 장미 창과 스테인드 글라스. 아주 멀리서 보아도 레온 대성당의 장미 창은 그 위용이 대단했다. 안에 들어가서 보면 얼마나 좋을까, 두근두근거리며 들어갔을 때 우리를 맞아주던 장미 창의 빛깔은 내 기대를 충족시키고 남았다.


창 하나하나에 아름다운 빛깔로 성서 이야기를 그려놓은 스테인드 글라스에 엄마도 나도 한참 감탄한다. 물론 파리의 생샤펠의 스테인드 글라스도 굉장하지만, 레온 대성당에서 나는 공간의 위엄과 스테인드 글라스의 조화가 주는 사뭇 다른 압도감을 느꼈다.  

단 하나 안타까운 점은 메인 장미 창 아래쪽에 공사를 하는 바람에 사진을 온전히 찍을 수가 없었다.

대성당 정문 앞에서의 엄마와 스케치하는 가우디상 옆의 엄마.


엄마의 크레덴시알과 조가비를 사기 위해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공립알베르게에 들른다. 친절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봉사자가 우리를 환영해준다. 내 크레덴시알을 보면서 이미 여기 전문가가 있으니 그렇게 많은 조언을 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하면서 웃으신다. 순례자라면 모름지기 조가비와 함께여야하지 않겠는가. 엄마는 조가비들중 꽤 잘생긴 놈을 골라 내신다.


레온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잠깐 호텔에 방문하기로 한다. 아무래도 내 가방이 너무 무겁고, 심지어 나는 허리를 삐끗했고, 그렇다고 협착증을 갖고 있는 엄마가 가방을 멜 수는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우리에겐 트랜스포트 서비스(한국인들은 동키 서비스라고들 많이 부르던데 이유는 모르겠다)가 필요했다.


잠깐 호텔로 돌아와 정원도 둘러본 뒤 컨시어지 직원에게 물어본다. 다행히 이 호텔에서도 트랜스포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아침 8시까지 가방을 가져오면 봉투 쓰고 대기하는 것을 도와주겠단다. 만세! 방으로 돌아가 잠깐 쉬고, 저녁에는 이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기로 한다.


미사를 드리기 이전 엄마와 나는 저녁을 먹기로 한다. 스페인 대부분 식당의 저녁시간은 8시 이후, 지금은 6시가 채 안된 시간. 엄마와 나는 벌써 배고픔을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김치 때문에 무거워졌다며 잔뜩 심통이 난 나는 더더욱 먹을 것을 입에 넣어야 했다.


이렇게 애매한 시간, 순례자가 주를 이루는 마을이 아닌 이런 큰 도시에서 배를 채우려면 바에서 메뉴를 시키는 수밖에 없다 생각한다. 레온 파라도르 뒤쪽에는 좀 더 모던한 느낌의 신시가지가 있었는데, 한 바에 들러 맥주와 안주를 시켜 저녁으로 먹기로 한다. 이곳저곳 둘러보았을 때 사람이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고 직원이 적절히 눈길을 던져주는 곳을 하나 골라 들어간다.


주문을 마친 뒤 한참이나 걸려 음식이 나온다. 우리를 놀라게 했던 것은 바로 어마어마한 양. 오징어 튀김과 보까디요, 그리고 맥주 두 잔을 시켰는데 오징어 튀김이 정말 산더미 같은 양이었다. 보까디요야 원래 크다 치지만(엄마는 그 크기에도 몹시 놀라셨다)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아서 양도 적겠거니 했는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엇나갔다. 둘이 낑낑대며 먹다가 도저히 다 못 먹겠다 싶어 보까디요는 싸 오기로 하고, 오징어튀김만 열심히 정복한다. 위가 작은 엄마는 애초에 백기를 드셨다. 무엇보다도 딱딱한 빵인 바게트와 하몽은 엄마에겐 조금 어려운 모양이었다. 오징어튀김은 맛있었지만 애초에 양이 너무 많았다. 나는 오징어튀김과 열렬한 전투를 치러 이겨낸다! 실컷 오징어튀김을 먹고 바를 나선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미사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잰걸음으로 성당으로 내달려간다. 운 좋게도 미사 시간에 딱 맞추어 참여할 수 있었다. 엄마는 세례, 견진 받은 뒤 해외에서 드리는 첫 미사시리라. 순서 같은 건 한국과 거의 동일하니 걱정 마시라 말씀드린다.

오랜 세월 동안 이 곳에 자리했던 유서 깊은 성당, 신심이 깊은 신자들로 채워진 미사 시간. 소박하지만 충만한 미사를 드린 뒤 바깥으로 나오니 벌써 어둑하다.

광장에는 바람을 쏘이러 나온 할머니 할아버지들, 자전거를 타러 나온 아이들과 그를 살피러 온 부모님들로 나름 북적인다. 그 앞에서 아까 만난 순례자상을 다시 만난다. 그래, 내일부터는 다시 순례자로 돌아간다. 그것도 엄마와 말이다.


그냥 호텔로 들어가기 이전에 내일 걸어갈 길 방향을 한번 살피기로 한다. 다행히도 순례길 화살표는 이 호텔 앞을 지나 바로 옆 다리를 건너 이어진다.

이 다리가 화살표가 이어지는 다리.

엄마 뭐 봐요?


하루가 정말 금방 지나간다. 약은 정말 마법같이 내 허리 통증을 없애주었지만 확실히 삐끗한 느낌은 내 허리에 여전히 가득하다. 한 일주일간은 고생하겠구먼... 약간 아득하지만 다 잘 되리라 되뇌어본다.

레온 파라도르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풍경. 바로 왼쪽이 콘시어지, 그리고 저 계단으로 올라가면 여러 객실과 식당 등등으로 이어진다. 마치 미로와 같다.


스페인 전 지역의 파라도르를 보여주던 지도.

방을 향해 빛의 속도로 걸어가는 엄마!


뽀송하고 새것 같은 침구는 아니지만 굉장히 고전적인 맛이 있는 침대 안에 파 묻힌다. 김치 너무 많아.. 만나는 사람들 나누어주자 등등의 이야기를 엄마와 나눈 뒤 잠을 청한다. 걱정과 허리 통증과 피곤이 뒤섞인, 심통 잔뜩 난 순례자의 하루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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