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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가 Nov 09. 2019

세상은 연결

바라트 아난드, <콘텐츠의 미래>



나는 규모가 그럭저럭 큰 교육 회사의 R&D 센터에서 일한다. 교육 상품을 기획하고, 외주자나 업체에 콘텐츠를 발주하는 일을 하고 필요한 경우엔 직접 채워 넣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교과서나 문제집에 담길 내용을 정하고, 그것을 집필자에게 발주하고, 들어온 원고를 다듬어 넣는 일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최근 회사가 디지털 콘텐츠 제작에 발을 담갔다.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공부 방식이 다를 것이고, 그중 어떤 사람들은 우리 회사가 지금까지 고수해 왔던 방식을 더 편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디지털 기기가 무조건 공부 효율이나 효과를 높일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네, AI가 어떻고 알고리즘이 어떠네 하는 마당에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끼리 머리를 싸매고 대체 어떤 신박한 콘텐츠를 내놓아야 할까를 고민한지가 여러 날이 지났다. 우리 팀원 중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아인슈타인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사람들 생각이란 게 결국 비슷했다. 생각, 생각, 또 생각만 하는 사이에 우리 머릿속에 있는 것과 비슷한 제품들은 어디선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쏟아져 나왔다. 


어떡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 콘텐츠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까? 『콘텐츠의 미래』의 저자 바라트 아난드가 말한다. “바보. 그런 건 없어.” 왜냐하면 콘텐츠 자체는 별 힘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만 사용하는 최고의 콘텐츠입니다!"는 대박을 터뜨릴 수 없다.




잘나가는 콘텐츠가 되려면 우선 연결 관계에 주목을 해야 한다. 생산자는 이 세상에 없는 최고 품질의 제품이 사용자를 끌어 모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생산자가 영혼을 갈아 넣어도 사용자는 잘 알아채지 못한다. 


다른 요인들이 사용자의 상품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콘텐츠가 구매에 100프로의 영향력을 줄 수는 없다. 오히려 콘텐츠의 완결성에 크게 공을 들이지 않더라도 사용자는 그들 자신이 참여해 완결성을 만들 수 있음에 더욱 기뻐한다.


이 책에는 사용자 참여를 특징으로 해서 규모를 넓힌 경우로 ‘위키피디아’의 예를 든다. 백과사전이라고 하면 이미 내용이 고정되어 더 이상 수정할 수 없는 수십만 원짜리 전집을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위키피디아 콘텐츠는 누구든 열람과 수정을 할 수 있다. 




세상은 연결



그렇다면 우리도 콘텐츠에 공을 들이지 않고 대중이 알아서 콘텐츠를 생산해내게만 하면 되는 걸까? 바라트 아난드는 그런 유토피아적 믿음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때 요구되는 것은 콘텐츠를 목적에 따라 선별하고 조합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재창출하는 ‘큐레이션’이다.


이것은 이 책의 Part 3에 나오는 ‘더 적은 것이 좋다’라는 내용과도 어느 정도 통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용하는 것이 나에게 개인화 된다 한들 내가 사용하는 것을 남이 사용하지 않으면 연결 고리가 생기지 않는다. 


‘공유’의 연결고리가 항상 존재해야 함을 잊지 않은 웨이보는 화면에 단 4개의 기사를 12시간 동안 띄워 놓음으로서 기사를 본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만들어 주었다. 


사실 책에 나온 말들은 너무 당연하고 그래 맞아, 하며 쉽게 맞장구를 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 제품을 개발할 때에 이런 것들을 너무 쉽게 잊고 만다. 내가 몸담은 분야의 ‘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날은 예기치 못한 시너지를 불러오는 ‘친구’일 수도 있다.


우리 회사가 가진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연결고리,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회사와 만들 수 있는 연결고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고심하고 콘텐츠 자체가 아니라 확장성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때이다. 물론 콘텐츠가 양질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함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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