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바르셀로나 휴양기

by 해오르

공항으로 향하는 첫차는 새벽 6시 20분이었다. 냉장고에 남아있는 연어 스프레드를 아침으로 먹을까하고 모든 짐과 함께 로비로 내려갔다. 캄캄한 새벽인데도 생각 외로 여러 사람들이 숙소 로비에서 배낭과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몇몇은 소파에 누워 잠을 자는 사람도 있어서 그 사이에서 부스럭거리며 아침을 먹을 자신이 없었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급하게 타는 바람에 잔돈이 없었다. 기사님께 100 유로 지폐를 내밀자 그는 살짝 당황했지만 그냥 타라고 했다. 감사하다고 하고 들어갔으면 되었을 텐데, 이게 맞나 싶어서 어쩔줄 몰라하며 입구 앞에서 눈치 보며 서있었다. 그 와중에 버스에서는 그 시절 내 최애 음악이었던 앨런 워커의 'Faded'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IMG_20160531_115233.jpg 바르셀로나 시내에 도착하고 처음 마주한 상징적인 건물인 베네치아 타워


내가 유럽을 좋아하는 이유는 노천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나 카푸치노를 즐길 수 있는 여유와 눈이 마주치면 방긋 웃어주는 친근한 사람들, 그리고 오래된 이국적인 건물과 앤티크한 실내 우드 인테리어 때문인 것 같다. 그런면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들렸던 작은 마을들은 완벽했다. 하지만 대도시인 바르셀로나는 현대적인 건물이 많았고 어딜 가든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조금 실망스러웠다. 뿐만아니라 바르셀로네타 해변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모래알이 두꺼워서 부드럽지도 않았고 발이 푹푹들어가서 불편했다.


IMG_20160601_134618 (1).jpg 바르셀로네타 해변


가우디의 건축물 중 두 가지였나, 몇 가지였나 외관을 구경하며 특이 하다고 생각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내부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했다. 가우디의 건축물 외관의 모습은 뼈다귀같은 모습이어서 건물의 골격구조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IMG_20160605_194910.jpg 2016년 6월 초의 사그라나 파밀리아의 모습


바르셀로나에서의 시간은 대체로 심심했다. 순례길에서는 눈만 마주치면 친해질 수 있었던 것과 달리 도시에서는 낯선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작은 도시만 다니다가 대도시에 오니 무얼 해야할지 막막했다. 구글지도를 뒤적이다가 찾아낸 코스모카익사 과학 박물관에 가보기도 했고 카탈루냐 미술관도 가보았다. 그 미술관은 언덕 위에 있었는데, 그래서 인지 그 위에서 파는 커피는 2배 가격을 받았다.

하루는 해변에 즐비해있는 클럽 거리를 갔었다. 내 옷차림은 바르셀로나에서 구매한 몸빼같이 생긴 긴바지에 나시, 그위에 니트가디언을 걸치고 있었다. 클럽들을 물색하다가 꽤 흥겨워보이는 클럽에 들어서려고 하자 입구컷을 당했다. 내 옷차림이 문제라는 것 같았다. 좀 더 돌아다니다가 가디건을 벗고 나시 차림으로 돌아다녔더니 클럽 입구를 지키는 사람들이 환호하며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빈정이 상해버려서 그만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축제처럼 소리소리를 지르며 클럽 거리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을 보았다. 내가 조금 일찍 왔던 모양이다. 그들의 아우성을 보니 순례길의 산길에서 주말 아침이면 들려왔던 대포소리가 생각났다. 마치, '이야! 주말이닷! 오늘을 불태워야 햇!'라고 모두에게 알려주는 분위기였던 그 대포소리.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역시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숙소 발코니에 앉아 우크라이나에서 온 아저씨와 함께 살치촌을 안주삼아 브랜디를 마셨다. 아저씨는 내게 두꺼운 시가 하나를 주었다. 그가 말하길, 우크라이나에서는 갱스터들이나 시가와 브랜디를 함께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린 함께 갱스터들이나 하는 유희를 즐겼다. 그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왜 그가 가족을 두고 혼자 바르셀로나에 여행온건지 궁금했다. 아마 언어의 장벽때문에 물어보길 포기했던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경유를 하게 되었다. 공항에서 3시간을 대기해야 했는데, 그곳 대기실은 한국인 뿐이어서 이미 한국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1 년 동안 유럽에서 지내면서 한국 문화가 어땠는지 까먹었던 것 같다. 기내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섰을 때 뒤에 계신 아주머니가 내 몸에 딱 붙어 서 계셨다. 독일이나 스페인에서는 실수로 툭 쳐도 미안하다는 소리를 듣는 게 일상이었는데, 그 시절 한국인들은 어깨빵을 해도 그냥 지나가고 줄 설땐 모든 사람들이 한 가족인 것 처럼 붙어서 섰다는 걸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사람마다 매우 달라지긴 했지만 그 당시엔 그랬던 것 같다.


세계일주를 꿈꾸고 나갔었지만 겨우 러시아와 터키, 그리고 유럽에서 돈만 쓰고 돌아가게 되었다. 게다가 러시아의 경우 열차 안에서 시베리아 풍경을 구경했을 뿐이었다. 1 년 만에 돌아간 핑계를 언니의 결혼 문제로 들었었지만, 돈도 없던 내가 더 돌아다닐 수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다시 나가기까지 2 년이나 지나는 동안 유럽을 그리워만 하고 돈도 모으지 못했던 걸 생각해 보면 전혀 핑곗거리가 될 수 없다고 본다. 내 꿈은 전 세계를 모두 가 보는 것인 걸 모른척 하고 유럽만 세 번을 더 갔다오게 되었다. 익숙한 것을 손에 넣지 못하는 헛된 욕심이 나를 지배했던 것이다. 어느순간 정신이 들었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 한 참 남았다고. 아시아도 가보지 못했고 호주도 아메리카 대륙도 직접 가보고 싶다는 걸. 그래서 네 번째 해외여행은 더이상 유럽이 아니었다. 다섯번째도 여섯번째도. 터키를 다시 갔다오긴 했지만, 어쨌든 가보지 못한 곳들을 많이 돌아다니게 되었다. 스페인 에피소드는 일기와 사진의 부재와 부실한 기억력으로 인해 험난한 도전이었지만 이후 일기는 나름 구색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기대가 된다. 앞으로 해오르의 '골때리는 여행 에피소드' 많이 찾아 주세요. ^^


IMG_20160607_212800.jpg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찍은 구름 덮힌 하늘과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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