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산티아고
갈리시아 지방의 기후는 습하고 비가 많이 내린다. 방목하는 소와 말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래서 비로 반죽이 된 걸쭉한 흙반죽길이 초식동물의 똥과 뒤섞여 있는 길이 흔했다. 처음엔 기겁을 하고 어두운 녹색이 부각된 곳을 필사적으로 피해 다녔지만 길은 어느 순간 피하는 게 불가능한 똥 반죽길이 되어있었다. 내 얇고 연약한 러닝화는 똥의 침투를 막을 수 없었고 양말까지 똥에 잠식되고 말았다. 숙소에 도착하고 양심이 찔렸지만 세면대에서 똥에 오염된 신발을 빨았다. 그 알베르게는 건물이 두 채였는데 마침 내가 배정된 방이 있는 건물엔 순례자가 나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세면대를 신발 빨래통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도 누가 올세라 허겁지겁 닦고 있는데 창문 건너편 건물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건너다보니 며칠 전 저녁 시간을 같이 보냈던 순례자 중 한 명이었다. 반가우면서 동시에 신발 빠는 걸 들켰을까 봐 난감했었다.
후에 배설물의 주인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직접 보기 전엔 말의 똥이 아닐까 의심했었다. 어느 날 똥 반죽이 만들어질 수 없는 깨끗한 포장도로를 행복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뒤에서 다가오던 목동이 소 무리를 이끌고 나를 지나쳐 갔다. 그리고 내 눈앞에서 똥 반죽길의 초록색 재료가 투둑투둑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소 무리를 뒤이어 양 무리도 뒤따르고 있었는데, 거기가 흙길 위였다면 말차 초코칩이 완성되었을 뻔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휴대폰의 촬영버튼을 빠르게 누르지 못했다.
마드리드에서 온 조각을 전공한 그라시스는 이 번 순례길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그 언니는 조각을 전공했지만 스페인에서 조각으로 먹고살기는 힘들다고 했다. 아마 직업이 조각과 관계없는 일이었던 것 같다. 순례길의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에 괜찮은 알베르게도 종종 추천해 주었다. 한 번은 산골 깊숙한 곳에 있는 알베르게를 추천받아서 갔었는데 분위기는 아늑하고 평화로워서 동화 속에 들어간 것 같았다. 샤워물이 처음에 찬물이 나와서 깜짝 놀랐던 것과 그곳에서 제공해 주는 저녁식사가 조금 아쉬웠다. 그라시스는 너무 맛있다며 만족스럽게 먹었지만 나 역시 맛있기는 했지만 스테이크나 뭔가 특별한 고기요리를 기대했기 때문에 햄치즈토스트 같은, 아마도 비키니라고 불리는 요리가 제공되어서 조금 실망이었다. 하지만 맛은 있었다. 그때를 회상하니 다시 또 먹고 싶어질 만큼 맛있었다.
그라시스는 친절하고 잘 웃고 항상 행복해 보였다. 그녀와 얘기하고 있을 때면 친언니와 함께 하는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얼굴을 두세 번 정도 그려 주었었는데, 그릴 때마다 실물보다 나이 들어 보여서 실물과 비슷하게 그려질 때까지 계속 도전했다. 결국 마지막 그림도 본래 모습보다 늙어 보이게 그려졌다. 매 순간 환하게 웃는 바람에 잔주름이 많이 생겨서 그랬던 것 같다.
폰페라다에서 성을 구경하는 내 모습을 찍어서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내게 사진을 보내주겠다며 이메일 주소를 받아 갔지만 아직까지 메일을 받지 못했다. 혹시 스펠링을 잘못 알려준 걸까. 사진을 받았다면 순례길 얘기도 나누고 좋았을 텐데 아쉽다. 그라시스 말고도 길에서 만난 몇몇 이들과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지만 아직까지 연락을 주고받은 이는 없다. 멀리 있어서 자주 보는 게 어려운 사이에서는 특정한 이유가 없다면 먼저 연락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라시스를 마지막으로 본 건 피스떼라에서 산티아고로 돌아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우연히 길 건너편에 그라시스가 순례길에서 새로 사귀게 된 남자친구와 함께 카페 앞에 서서 키스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눈치도 없이 그라시스를 불렀다. 그들은 매우 집중한 상태여서 두 번 더 불러야 했고 그 과정에서 그녀의 새 남자친구가 나를 노려보기까지 했다... 아... 눈치 챙겼어야지... 순례길에서 나의 캐릭터는 멍청하지만 순진해서 미워할 수는 없는 꼬마 빌런이었던 것 같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기 며칠 전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혼자 순례자의 메뉴를 먹으러 식당에 가면 여러 순례자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 합석하게 되는 경우가 흔했던 것 같다. 그날 그 자리에 함께했던 사람들이 전부 기억나지는 않지만 두 사람이 기억난다. 한 사람은 퀘벡에서 온 할머니였고 다른 한 명은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은 한국인 같이 생겼었다. 그는 캐나다나 유럽에서 왔다고 했던 것 같다.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조상의 고향이 어디신지 물어보진 못했다. 그 시절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장 많이 방문하는 사람 1위가 한국인이었는데, 그래서 그는 내게 그 이유를 물었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난 베를린에서 왔거든 (I'm from berlin).' 이 대화를 하기 전에 내가 베를린에서 10 달 지내다 왔다고 했더니 퀘벡 할머니가 내게 베를리너라고 불렀었고 그래서 이번 나의 대답으로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내 최종 목적지는 산티아고를 넘어 피스떼라와 묵시아까지였다. 피레네 산맥이 무서워서 생장에서 출발하는 건 포기했지만, 순례길의 연장선만큼은 정복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바다는 언제나 여행의 꽃 아니던가. 피스떼라로 가는 여행이야기를 검색해 보다가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나체로 수영하기로 결심했다는 할아버지의 사연을 보았다. 그 이야기가 낭만으로 들려왔고 그래서 나도 나체까지는 아니더라도 피스떼라 마을 해변에서 수영정도는 하고 싶었다. 그날 저녁, 내가 피스떼라 가서 수영할 거라고 했더니 퀘벡 할머니가 후식으로 받아서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 콘을 가리키며 거기 바닷물 온도라고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실화였고 결국 발만 담그는 걸로 만족해야 했으며 발만 담근 것 만으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며칠 후 피스떼라에서 그 할머니와 다시 마주쳤다. 숙소에서 쉬고 있었는데 순례자 몇 명이 들어왔고 익숙한 그 할머니가 벽을 두 손으로 짚고 가뿐 숨을 고르고 있었다. 우리 둘 다 피스떼라에서 몇 박 묶을 생각이었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함께 절벽을 보러 가기도 하고 식당도 함께 갔고 내가 식사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할머니는 기가 막힌 칭찬을 하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하루는 점심으로 돼지스테이크와 와인을 마시고 배가 아파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살며시 나를 깨우며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밥 차렸다고 먹으라고 했다. 그 나긋나긋한 분위기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 할머니는 묵시아를 향하기 위해 피스떼라를 떠났고 나는 의욕이 떨어져서 좀 더 쉬다가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로 돌아갔다.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나 주고받은 이메일 주소도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길에서 만났던 모든 인연들이 반가웠고 소중했지만 그중에서도 떠올리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들이 있다. 피스떼라로 가던 길에서 만났던 세 명의 독일사람들도 그러했다. 그들은 아버지와 두 남매로 구성되었지만 남매가 이미 오육십 대로 보이는 노년 패밀리였다. 그들도 순례길이 처음이 아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남매 중 한 사람이 아버지를 위한 짐을 작은 수레로 끌고 다녔던 것 같다. 한 번은 바에서 마주쳤는데 남매 아저씨가 초록색의 샷을 마시고 있었다. 그게 무슨 술이냐고 묻자 아저씨는 설명하기에 앞서 쿨하게 한 잔 사주셨다. 그는 허브로 만든 술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언제나 공짜 술은 맛있다.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고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기분 좋은 씁쓸한 향이 입안에 퍼졌던 것 같다. 퀘벡 할머니와 피스떼라의 절벽에 갔을 때 거기서 또 한 번 만나게 되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남매의 사진을 찍었다. 왜 퀘벡 할머니 사진은 없는 거냐고.
산티아고로 다시 돌아간 이유는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를 산티아고 공항에서 타야 했기 때문이었다. 산티아고에 있는 동안 순례길에서 두 달 가까이 열심히 돈을 아낀 보상을 받고 싶었다. 해산물이나 스테이크 같은 특별한 요리를 먹을까 고민하며 골목을 돌아다녔던 것 같은데, 뭘 먹었는지 사진도 기억도 남아 있는 게 없다. 그러던 중에 운 좋게도 골목에서 알렉스와 재회하게 되었다. 유끼는 벌써 일본으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그때 같이 걸었던 무리 중 셋 뿐이었다. 나머지 둘 중 한 명은 유끼의 단짝이었던 도미니크였는데, 그녀에 대해 잘 알진 못했지만 무척 착해 보였다. 나머지 한 명 역시 잘 알지 못했다. 함께 걷다가 마주친 아주 작은 교회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던 모습만 기억난다. 여행 초기를 함께 했던 그들을 다시 만나다니 수미상관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빨리 걸었을 텐데,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너무 신기했다. 우리는 함께 이메일도 주고받고 지나가던 할아버지에게 부탁해 함께 사진도 찍었다. 할아버지에게 부탁한 게 낭패였다. 함께 찍은 사진 두 장 모두 흔들려서 얼굴이 흐릿하게 찍히고 말았다. 그래도 알렉스가 다정하게 어깨동무해준 모습은 잘 구분할 수 있어서 그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때의 반가움과 즐거웠던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이후에도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었던 무리 중 한 명도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 다른 이들의 행적을 물으니 다들 증명서만 받고는 떠나버렸다며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하루는 이상하고 불쾌한 경험이 있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는 아저씨가 술집 앞에 서 있길래 반갑게 인사했다. 그는 다른 스페인 남자에게 나를 인사시켜 주었는데, 그는 약간 취했는지 호들갑을 떨며 반가워했다. 그리고는 내게 볼을 내밀었다. 스페인에서는 흔히 인사를 볼뽀뽀로 하지만 그때까지 그렇게 저돌적으로 볼을 들이민 사람은 처음이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I don't know'라고 했고 그는 갑자기 'F**k your Country!' 라고 소리쳤다. 인종차별인가? 당혹스러움에 벙쪄있는데 지켜보고 있던 아저씨가 그를 말려주었다. 그 아저씨가 웃으며 가볍게 넘어가서 나도 더 이상 심각해 지진 않았지만 개한테 물린 것만큼이나 깜짝 놀랄 일이었다.
또 다른 날, 며칠 전 저녁을 함께 했던 일본 남자애와 마주쳤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매우 가냘프고 귀여웠다. 그는 하루 종일 광장 앞에 앉아서 사람들 지나다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식사도 잘하지 않아서 그와 함께 들어간 식당에서 나만 음식을 주문해 먹었다. 편견에 찌들어있던 내게는 그날의 그의 목소리나 행동들 모두 비정상처럼 느껴졌지만 표를 내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비정상이었다. 그의 목소리도 그의 해동도 그냥 그 다웠을 뿐이다. 그걸 그때도 알았다면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즐거웠을 텐데.
바르셀로나로 출발하기 이틀 전부터 새벽 네시쯤 잠에서 깨어났다. 25년을 살면서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이 층침대가 열 개 정도 놓여있고 거의 모든 침대에서 사람들이 잠들어있었다. 새벽 네시에 깨어난 나는 다른 이들의 호흡소리를 들으며 설명할 수 없는 처음 느껴보는 상태에 빠져 있었다. 정확한 진단은 모르겠지만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였고 가만히 누워있으면 발끝으로 한 없이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혹시 공황이었을까? 그 이후에도 불안하거나 벗어날 수 없는 문제에 시달리는 날이면 같은 경험을 하곤 했다. 한 번은 약국에서 수면 보조제를 구매해 먹었더니 여지없시 새벽에 깨어나 졸린 상태와 각성상태를 동시에 경험했다. 당장 쓰러질 것 같은 피로를 느끼면서도 발끝은 한없이 추락하며 잠들지 못하는 상태였다. 일 년을 생각 없이 싸돌아 다니다가 곧 한국으로 돌아가 취업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포를 느꼈던 걸까. 그러나 아직 바르셀로나 여행이 남았는데 왜 산티아고에서 불안을 느낀 걸까. 내 불안은 일주일 앞서 오는 모양인가 보다.
쓰다 보니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내 글의 목적은 대단하지 않다. 여행하며 겪었던 흥미로운 사건들을 이야기보따리처럼 꾸려놓고 싶을 뿐이다. 너무 두서없이 적어놓은 것 같아 상품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게 아쉽긴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며 재밌어하고 공감해 준다면 글쓴이로서 무척 기쁠 것 같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에서 있었던 일들을 에필로그로 짧게 올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