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키로를 걷는 동안 마을도 카페도 아무것도 없었다. 전날 무얼 잘 못 먹은 건지 간 밤에 배탈이 났었고 다시 배가 아플까 두려워 다음 마을까지 전력질주했다. 가는 길은 어느새 경사가 되어 있었다. 오가는 사람이 없어서 바위나 언덕 뒤편에서 느닷없이 산적이 나타날 것 만 같았다.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원동력 삼아 오르막길을 재빠르게 오르다 보니 어느 순간 녹색의 푸른 들판이 펼쳐졌다.
온 세상이 초록과 하늘빛뿐이었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보았던 시베리아의 광활한 지평선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지리산에서 보았던 첩첩산중 사이로 피어올랐던 일출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의 백록담도, 페리에서 보았던 노을빛에 찬란하게 부서지는 회파란 지중해도 그 어떤 장관과도 비교될 수 없었다. 고요한 웅장함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눈앞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냥 너무 아름다워서 그곳에 파묻혀 자연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들판이 되고 들판이 내가 되는, 그래서 세상의 일부분이 아닌 세상 자체가 되는 느낌을 가져보려고 했다. 그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른 한쪽엔 나무 한 그루가 귀엽게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강렬했던 감동을 뒤로하고 언덕을 내려가고 있을 때, 어떤 남자가 나를 추월했다. 우리는 스치는 짧은 순간 동안 지나쳐 온 광경을 찬양했다. 너무 감격한 나머지 되는 대로 횡설수설 떠들었고 그가 한 말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도 최소한의 감동은 받은 것 같아 보였다.
숙소에서 알게 된 아주머니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느렸고 나는 빨리 걷고 싶었다. 먼저 가는 게 마음이 조금 쓰였지만 순례길에서는 대부분 본인 페이스로 걷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지쳐버렸고 발바닥도 아파왔다. 결국 천천히 걷게 되었는데 어느샌가 그녀가 나를 앞질러 갔다. 나는 그녀를 다시 따라잡을 수 없었다. 어리석은 나는 페이스 조절의 중요성을 그로부터 8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된다.
피부가 타들어갈 것 같이 햇빛이 쨍쨍한 날이었다. 이런 날에는 빨래를 널면 한 시간 만에 바싹 마른다. 숙소에 탈수기가 있었는데 주인장이 1분만 써야 한다고 한 걸 1분만 돌아가는 걸로 잘못 알아듣고 10분을 돌아가게 두고 말았다. 컴플레인이 없었는지 혼나지는 않았다. 빨래를 널고 주방에 있던 빵을, 먹으라고 둔 빵이겠거니 하고, 조금 뜯어서 이른 저녁으로 먹었다. 부족한 돈 걱정 때문에 저녁은 대체로 누가 남기고 간 식자재로 때우는 식이었다. 그런데 숙소에서 알게 된 영국 유학생이 순례자 메뉴를 함께 먹으러 가자는 것이다. 나는 그전까지 순례자 메뉴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여행 초기에 같이 식당에 갔던 아주머니가 코스요리를 와인 한 병과 함께 먹었고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와인 한잔만 주문했는데 와인 가격을 받지 않았던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언어의 장벽에는 눈앞에 놓여있는 혜택도 놓칠 수 있는 이런 부작용도 있다. 맙소사, 단돈 10 유로에 맛 좋고 푸짐한 음식과 와인까지 원없이 마실 수 있다니. 물론 당시의 경제사정으로는 그것도 매일 즐기기엔 사치였지만 그래도 엄청난 발견이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보면 식당 같은 곳에서 에일을 기본으로 주던데, 스페인의 순례자를 위한 식당에 들어서면 와인이 기본으로 놓였던 것 같다. 마치 드라마 속을 여행한 기분이 든다.
이곳 숙소 근처에는 성터가 남아 있는 언덕이 있었는데, 성의 모습이 꽤 많이 남아 있어서 호기심을 자아냈다. 부서지고 오래된 건물을 바라보고 또 가까이 가서 그 안을 돌아다니면 마치 과거 그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과 연결되는 신비로운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한국의 산성과는 다른 양식으로 만들어진 모습이 서양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하지만 언덕까지 거리가 꽤 되었기 때문에 혼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같은 숙소에 묶었던 순례자들 한 명 한 명에게 같이 갈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모두가 가기를 꺼려하며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지만 다행이 한 사람이 흥미를 보였다. 그는 자전거로 순례를 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온 의대생이었다. 우리는 함께 언덕을 올라갔다. 성채는 일부는 부서져 터만 남아있었지만 일부는 시간의 역사를 간직한 채 여전히 굳건히 버티고 서 있었다.
성은 외관보다 내부가 더 인상적이었다. 그곳의 역사를 찾아보진 않았지만 과거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에 이곳에서 치렀거나 치를 뻔했을 전쟁을 상상해 보았다. 적진을 살피거나 화살을 쐈을 것 같은 좁은 틈 앞에 서서 화살 쏘는 시늉도 해보고, 입구 모양 그대로 위층으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에 만들어진 계단도 올라가 보았다. 전쟁이 벌어졌다면 이 좁은 계단을 갑옷 입은 병사들이 뛰어 올라갔을 테지.
동행했던 이탈리아 의대생은 헤어지기 전에 길에서 콸콸 나오는 물을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 물통에 담았다. 투명한 페트병에 담긴 물은 뿌예서 마시기에 적절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투명해졌고 그럼에도 찝찝함때문에 나라면 버렸겠지만 그는 괜찮아졌다며 그대로 챙겨 넣었다.
우리는 헤어지기 위해 포옹을 했다. 그는 다신 만나지 못 할거 같다며 성채에 같이 간 것을 포함해 모든 것에 대해 고맙다고 했다. 나 역시 그를 다시 못 볼 것 같았지만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을 또 보자는 말로 대신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그대로 멀어져 갔다.
며칠이 지났다. 돈을 아끼기 위해 이 날은 카페에 들르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잔잔한 음악소리에 정신을 빼앗겨 길을 벗어나 다가간 곳엔 천국같이 아름다운 카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작은 건물이 하나 있었고 그 외엔 드넓은 들판 위에 아래 사진처럼 테이블이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곳을 지나치는 것은 여행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여행이 끝나고 나면 항상 그렇다. 하지 않은 것, 아낀 걸 후회하지 한 걸 후회하진 않는다.
그곳에서 아이스바를 하나 사서 잔디 위의 한 의자에 앉았다.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천국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달려 나왔고 또 한 마리가 뒤쫓아와 서로 달리기를 하며 장난을 쳤다. 그리고 곧이어 닭 무리가 천천히 건물 뒤쪽에서부터 바닥을 쪼으며 들판으로 나아갔다.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서는 자주 보이는 흔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바로 뒤이어 흰 오리들이 꽥꽥거리며 나타나는 장면은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드넓은 잔디와 잔잔한 음악으로도 충분히 천국스럽다고 느끼고 있었다. 닭에 이어서 오리가 나오기 전까진. 그곳은 마치 천국의 동물농장 같았고 아름답고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날의 숙소는 매우 아늑했다. 샤워시설이 부족했던 게 아쉬웠지만 드넓은 마당에 식탁도 많았고 귀여운 고양이도 있었다. 거기에서 연극배우인 제이라는 사람과 함께 삼겹살을 구워먹고 와인도 마셨다. 삼겹살과 한국인 때문인지, 오랜만에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그녀도 술을 잘 마셨기 때문에 둘에게 와인 한 병은 부족했지만 부족할 때 그만두는 것이 옳았기에 한 병으로 파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어둠이 내린 그윽한 시골 마을을 홀로 산책하며 향긋한 취기에 마음을 녹였다. 스페인의 저녁은 낭만적인 주홍빛에 물들어 있었다.
다음날, 또 다른 마을에서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가방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 만났던 사람들을 연습장에 그려 그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정말 바보 같은 해결책이었지만 그림 연습도 할 겸 스치는 만남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고 싶은 욕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림을 그리면서 친해진 한국 아주머니가 내가 잠든 사이에 계란을 남겨두고 가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챙겼다가 쉬려고 앉은 테이블에서 까먹으려고 내리쳤다. 하지만 기대했던 삶은 달걀 대신 투명한 콧물 같은 날달걀이 터져 나왔다. 여행하면서 날달걀을 받아 본 것은 처음이라 확인도 하지 않고 그런 낭패를 보고 말았다. 바로 근처에 당나귀가 홀로 목이 묶인 채 서 있었는데 발정기인지 다리만큼 기다란 피너스를 쭉쭉 늘리며 들어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갈리시아 지방 언저리쯤의 작은 마을에 다다랐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알베르게에서는 침대뿐만 아니라 저녁까지 제공해 주었는데, 늦은 오후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다 함께 식사 준비를 했다. 할아버지가 하나 하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그는 내게 꼬레아! 꼬레아!라고 부르며 감자 썰기를 시켰다. 활달한 할아버지의 지위와 함께 신나고 정겨운 식사 준비가 되었다. 메뉴는 대충 스튜 같은 거였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지만 맛있는 식사였다. 시끌벅적한 단체 설거지도 마무리 짓고 다시 테이블로 모였다. 우리는 할아버지가 직접 증류했다는 그라파 맛이 나는 독한 술을 나눠 마셨는데, 포도주를 증류했다는 건지 포도주도 직접 담갔다는 건지는 영 못 알아들었다. 건배하는 방법도 재밌었다. 스페인어로 앞으로 위로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 아쉽게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역시나 이 날도 몇몇 사람들의 그림을 그려서 나눠주었다.
전체 순례길을 걷는 동안 가장 행복했던 밤이었다.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함께 저녁준비도 하고 독한 술로 하나가 되기도 했으며 내 미천한 그림 실력에 환호해 주어 그날만큼은 내가 이 순례길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다른 알베르게와는 다르게 순례자들을 하나로 이어 주어 누구 하나 외로이 저녁을 보내지 못하게 해 주었다. 그게 참 따듯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후 영화 로건에서 로건과 로라, 그리고 자비에르가 윌 먼슨의 농가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저렇게 따듯한 저녁식사의 기억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게, 그 기억이 그저 보물 같다.
처음엔 괴팍해 보였지만 쾌활하고 다정하기도 했던 그 할아버지와 헤어지려니 마음이 아팠다. 이 주 전 엠마누엘과 이별할 때 보다 더 큰 아쉬움이었다. 순례자들은 떠나기 전 한 명 한 명 할아버지에게 볼 뽀뽀 인사를 받았다. 내 차례가 되어 나 역시 같은 인사를 받고 싶었지만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진심으로 받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할아버지의 입술이 넓고 축축해 보여서였을까? 할아버지는 뽀뽀를 하려다 말고 찡그린 나를 보고는 머리를 헝크리며 '에이 이 녀석'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2025년 7월 22일 다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