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으면서 도보 여행을 하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우비의 불편함을 견뎌야 하고 얼굴에 끊임없이 튀는 빗방울들, 뿐만 아니라 신발이 젖게 되면 다음날 젖은 신발을 신고 걸어야 한다. 찌걱거리는 젖은 운동화를 신고 걸으며 발냄새와 무좀을 염려해야 하는 건 웬만하면 경험하고 싶지 않다.
우울하게 내리던 비가 잠시 멈추고, 길 옆의 작은 마을에서 라디오 디제이 아저씨와 마주쳤다. 그는 숙소 마당 입구 앞에서 자유로움에 취해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흥겨워하고 있었다. 그전까지 함께 다녔던 무리들은 더 멀리 있는 마을까지 갔다고 알려주었다. 그와 작별인사를 하고 계속 이동했다.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또다시 친근해진 무리와 헤어져 혼자가 되었다. 슬펐지만 빗속을 뚫고 더 멀리 있는 마을까지 더 걷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 걷다가 도착한 작은 시골마을, 1박에 5유로 밖에 안 되는 저렴한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이제 비를 피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곳은 식당이었고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숙박시설이 있었다. 식당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주인장이 숙소로 안내해 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방안엔 침대가 일곱 개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숨을 들이마시자 습기를 머금은 축축한 먼지냄새가 들어왔다. 마치 올해 아무도 이방에 머물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몸을 돌려 그대로 나가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역시 그럴 용기는 없었다. 차라리 비를 뚫고 갔어야 했을지도. 정든 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것도 서글펐는데 숙소까지 배드버그 나올 비주얼이라 급 우울해졌다.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어두운 표정을 하고 카운터 쪽으로 가자 주인장은 환불하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럴 땐 내 입이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순례길은 초반부터 시련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 시련은 이불 없이 보냈던 추운 밤이었다.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의 봄은 밤에 꽤나 쌀쌀했다. 온 몸을 덮을 수 없는 야상으로 밤을 보내는 건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두 번째 시련으로는 처참한 영어실력이었다. 어떤 사람은 내게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영어를 못하면서 말을 거는 사람이 처음이었던 걸까. 예전에 로마에서 만났던 칠레 사람은 나의 더듬거리는 말투를 보고 술 취했냐고 묻기도 했었다. 길 위에서 많은 매력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혹은 어울리고 싶었지만 생각이 영어로 바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소통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또 다른 시련은 비로 진창이 되어 질은 찰흙반죽이 되어버린 시골을 걸을 때였다. 순례자들은 대체로 트레킹화나 등산화를 신었는데, 흙반죽이 된 길을 걸으면서 그 이유를 여실히 깨달았다. 가볍고 목이 짧은 러닝화는 흙반죽길에서 잘 벗겨진다. 반죽이 된 흙이 신발을 물고 놔주질 안아서 발이 쑥 나와버리곤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페인의 시골길에는 검은색의 민달팽이들이 매일 같이 출몰했는데, 그것들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인간의 발에 밟혀 생을 마감하는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나같이 사람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느리게 기어가고 있었다. 나는 살생을 피하기 위해 목이 빠지는 통증을 참아가며 길바닥만 보고 걸었지만 다른 순례자들은 신기하게도 달팽이를 신경 쓰지 않고 사뿐하게 즈려밟으며 경쾌하게 앞질러 가곤 했다. 결국 나 역시 살생을 택하게 되었다. 그 밖에도 며칠마다 해야 하는 빨래, 스트레스를 불러오는 부족한 여행자금 등... 모든 배낭여행이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이번 여행은 걱정과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나는 아무런 즐거움도 편안함도 주지 않는 이 여행을 왜 지속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고는 했다. 그렇다고 답을 찾을 수도 계획한 여행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아마도 그냥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포기하면 알 수 없을 무언가를 기대했을 것이다.
우울한 기분을 풀어보려고 마을의 골목을 돌아다녔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지만 우비는 답답해서 더 이상 입고 싶지 않았고 순례길에 챙겨 온 우산도 없어서 비를 맞으며 다녔다. 골목 어귀에서 암탉 무리도 보고 언덕으로 가는 길 건물 주변에서 날 쫓아와 으르렁대는 무서운 개 두 마리도 보았다. 그러다 가랑비는 소나기로 바뀌었고 비도 피하고 목도 축일 겸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서 보았던 시골 분위기와는 이질적인 팬시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마침 브레이크 타임이었고 매니저는 내게 나가 달라고 했다. 밖은 '쑤와아아' 소리를 내며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럴 땐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 위에서 지켜보면서 '아, 오늘은 이 녀석을 좀 골탕 먹여 볼까나?' 하는 거다.
하는 수 없이 더욱 바닥으로 떨어진 기분을 안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가는 길에 팬시 하지 않은 평범한 식당이 있었다. '문이 닫히면 창문을 열라'는 말이 이럴 때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그곳에서 피순대 같은 소시지가 있어서 신기해서 주문했다. 쌀알도 들어있는 게 야채만 더 들어있다면 순대맛과 똑같을 것 같았다. 맥주와 함께 맛나게 먹고 있는데 숙소 주인장이 바 옆에 서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숙소 식당을 두고 다른 식당에 와서 먹다 들킨 게 뭔가 계면쩍어서 숙소의 식당에서는 와인을 한 병 째 사 마셨다. 분명 주인장은 별생각 없었을 텐데...
숙소 건물로 돌아오니 배드버그와 함께 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맥주로 나아졌던 기분이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주문한 와인마저 맛이 별로였다. 우울한 기분에 와인 한 병을 안주도 없이 급하게 마셔 버렸다. 그런 다음 잠시 침대에 누워있다가 속이 뒤집어져서 화장실에 가서 전부 게우고 말았다. 위산과 섞인 포도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속이 계속 안 좋아서 비도 그쳤겠다 마을을 다시 거닐었다. 와인 한 병을 급하게 마신 탓에 많이 취했던 것 같다. 마을 언덕 위에 있는 교회까지 가는 길에 드문드문 기억이 끊겨있었다.
교회가 있는 언덕까지 올라오니 감정이 폭발했다. 언제까지 이런 시련들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언제쯤 이 여행을 진짜 즐길 수 있게 될까. 사람들에게 말 걸 용기와 싫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힘, 그런 것들이 필요했다. 언젠가 자신 없이 비굴해하는 내게 누군가 했던 말이 비수처럼 꽂혔었다. '자신감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와인 탓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도 없는 교회 앞에서 철장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신도 믿지 않는 내가 무언가에 빌고 있었다. 정확히 뭐라고 빌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제발 줘... 한 번만 줘... 라고 읊조렸던 것 같다. 아마 조용히 스며드는 불안정한 비참함과 외로움으로부터 구제받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취해서 정신 나간 짓을 한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절박한 마음이 그런 행위를 만든 것 같았다.
난 누구에게 빌었던 것일까. 또 무엇이 나의 절규에 귀를 기울였을까.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미약하지만 무언가 분명 달라졌다. 더 이상 심하게 우울해하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먼저 말 거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내가 바랐던 먼저 말 걸 용기가 생긴 것이다. 무엇보다도 드디어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나의 스페인 여행은 이날 이후 진짜 시작되었다.
혹자는 신의 개입이 있었을 거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신이 있다 해도 이런 식으로 개인에게 개입할 것 같지는 않다고 믿는 나로서는 다른 추론을 해보았다. 나에겐 수호천사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처음엔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수호천사는 내가 어디서 무얼 하든 나를 위험과 죽음으로부터 지켜주고 불행으로부터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았다. 오랜 사색 끝에 그것이 나의 무의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심연처럼 깊은 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의 멍청함과 돌발적인 실수와 극한에 치닿는 불안과 고통으로부터 의식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 같다. 나의 수호천사는 나의 무의식이다.
교회 앞에서 생 난리를 친 후,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숙소의 침실로 돌아왔다. 침실에는 어느새 여러 숙객들이 들어와 있었고 벽난로에 불이 지펴져 있었다.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던 눅눅하고 어두운 그 공간이 그들에게는 낭만으로 충만한 공간이었다. 그들은 처참했던 나의 기분과는 다르게 행복한 표정으로 벽난로의 불을 쬐고 있었다. 술과 낭패감에 쩔은채 옆에서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는데 행복에 젖어있는 그들이 내게 담요를 덮어주고 난로 가까이로 끌어다 불을 쬐게 해 주었다.
다음 날, 숙취와 추위에 손이 오그라들었다. 아침에 날씨는 추웠지만 기막힌 풍경 속을 걸었다. 푸릇푸릇한 들초로 뒤덮인 언덕 사이로 걸었는데, 마치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에서 아라곤 무리가 납치된 호빗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녔던 들판이 연상되는 장소였다. 스페인의 시골과 자연은 중세 혹은 판타지 영화 속 배경과 꼭 닮아서 마치 영화 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들판의 끝에 도달하니 오아시스 같은 따듯한 카페가 있었다.
이 날 부르고스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작은 시골마을만 접하다가 오랜만에 도시 외곽에 다다르니 반갑고 셀레 었다. 부르고스에 있는 대성당은 매우 아름답고 거대했다. 특히 첨탑에 파도를 표현한 것 같은 조각들이 인상적이었다. 성당이 너무 거대해서 50유로 짜리의 후진 스마트폰에는 전체 샷을 담을 수 없었다.
즐길거리가 많은 도시에서 혼자 심심하게 보낸 다음날, 라디오 디제이 아저씨를 숙소 앞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너무 반가워서 함께 카페에 갔다. 별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지만 마주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하고 좋았다. 마침 가지고 있던 연습장에 그의 얼굴을 그려주었다. 그는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부심과 수줍음 때문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의 여정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도시에 하루 더 머물 거라고 했다. 나는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길 고집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한 장소에서 하루만 머물렀을까. 아마도 어린 날의 그 고집들은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리숙함이었던 것 같다. 나의 그 이유 없는 고집으로 그와 그렇게 헤어졌다는 게 후회로 남는다. 헤어질 때 내가 아쉬워하자 그는 나의 양 볼에 입을 맞추어주고 뜨겁게 안아 주었다. 이 늙은 털복숭이 아저씨에게 이상하게도 설렘이 느껴졌다.
나중에 피스떼라에서 알게 된 어떤 언니에게 그의 소식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언니는 내가 떠난 날 그 도시에 있었고 우연히 그와 마주쳤는데 그가 흔들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를 빌려주었다고 했다. 그 아저씨는 우쿠렐레를, 언니는 흔드는 악기를 연주하며 즐겁고 황당한 거리공연을 했더랬다. 그렇게 번 수입을 그가 언니에게 나눠주었지만 언니는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날 그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그 흔드는 악기를 내가 연주했다면, 거리공연으로 번 수익을 그에게서 나눠 받았다면, 그날 아침의 불필요한 고집으로 인해 많은 후회가 남는다. 무엇보다도 가장 아쉬웠던 건 꿈만 같은 거리공연을 경험해 볼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2025년 7월 22일 다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