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을 걷던 중 어떤 공원의 연못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백조를 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한국말로 한국! 이라고 외치는 소리에 뒤를 돌아 보자 알렉스가 나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알렉스는 얼마전에 알게 된 스무살의 오스트리아 남자애였다. 그는 각 나라의 이름을 본국 발음으로 어떻게 발음하는 지 알고 싶어했다. 그는 그의 나라를 외스트라이히 (Österreich) 라고 알려주었다. 그 뒤로 서로 마주칠때면 그는 나에게 한국! 안녕! 해오르! 등을 부르며 반가움을 한껏 표현했다. 그와 더 친해지고 싶었지만 그는 항상 유끼라는 일본여자애와 함께 다녔다. 유끼를 처음 알베르게 식당에서 만났을때 한자가 적혀있는 책을 읽고 있기에 생각없이 중국인이냐고 물어본 이후로 그 애는 나를 볼 때마다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중국인이냐고 물어본게 극혐할 일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한국인을 싫어하는 걸까 혹은 내가 뭔가 치명적인 실수를 했으려나? 뭐, 직접 말로 표현하지 않고 성깔만 부린거 보면 나보다 고집스런 어린애 였던 것 같다. 나는 뭔 고집이었던 건지, 마주칠때마다 받아주지 않는 인사를 악착같이 계속했다. 그러는 내 행동이 자랑스럽다거나 뿌듯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한심하게 느껴졌는데도 인사를 멈추지 않았다. 난 또 왜 그랬던 걸까? 그냥 고집이었을까? 이제는 불쾌해하거나 무표정으로 인사를 무시하는 사람에게 애써서 인사를 건내며 에너지 낭비하는 행동은 그만 두었다.
순례길을 걷다보면 걷는 거리가 매일 비슷해서 그런지 어느정도 같이 걷는 무리가 생기게 된다. 함께 걷지는 않아도 잠시 쉬어 가는 카페나 식당, 숙소의 주방에서 매일 보이는 그런 무리 말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금 걸었기 때문에 첫번째 무리를 먼저 보내고 어느새 새로운 무리를 조우하게 되었다. 걷기를 멈추기엔 조금 이른 시간에 길에서 벗어나 알베르게로 갔다. 그 곳 마당에서는 처음 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둥그렇게 앉아서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친절하게도 그들은 내게 함께 하자고 했지만 나는 의자 하나를 차지한 채 비가 와서 어쩔 수 없이 모임이 파 할 때까지 영알못으로 멀뚱멀뚱 앉아만 있었다.
그날 저녁, 알베르게 식당에 모인 그들은 대략 세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두 그룹은 거의 대부분의 여정을 함께 하는 것 같았고 나머지 한 그룹은 그룹이라기 보다는 개인주의자들이 우연히 이 곳에서 무리지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디에도 끼지 못 한 채 낯을 가리고 있었다.
흥겨운 분위기에 동화되고 싶은 마음에 옆에 앉아있던 화기애애해 보이는 중년의 여자와 젊은 남자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나에겐 치명적인 병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인 걸 은연중 감지하면서도 말로 내밷는 병이다. '그래서 당신들은 엄마와 아들인가요?'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사이가 연인이거나 하다못해 가까운 친구사이로 보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었던 것 같다. 나도 그걸 분명 느꼈던 것 같은데, 이건 분명 병이라고 해야 말이 된다. 나도 모르게 던진 그 질문에 여자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남자는 내게 이름을 물어보며 대화의 주제를 바꾸려 했다. 나는 그들의 반응으로부터 내가 희미하게 감지했던 그 느낌, 그들이 커플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내가 던졌던 눈치없는 질문을 주어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들은 이내 식당에서 사라져서 마음이 쓰였지만 다행이 흡연을 하러 잠깐 나간 것이었다. 휴...
다음날 또다른 알베르게 식당엔 전날과 비슷한 무리의 사람들이 시끌시끌하게 오후를 보내고 있었고 역시나 마음으로는 매우 끼고 싶었지만 서로 매우 친해보이는 그룹엔 도저히 끼지 못하고 겨우 내 앞에 있는 집시 분위기를 풍기는 일본여자와 간간히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였다. 그녀는 여행을 하기위해 돈을 번다고 했다. 돈벌이 수단은 주로 마사지라고 한다. 나 역시 여행을 좋아하고 자유를 동경하지만 한 직장에서 장기근무 하지 못하고 집시처럼 떠돌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럴까봐 걱정되었다. 나는 무례하게도 서글픈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나의 미래는 당신같다고. 지금도 입으로 똥 싸는 순간이 나도 모르게 찾아올때가 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정말 심각했던 것 같다.
길에서 엠마누엘이라는 이탈리아남자를 알게 되었다. 그는 매우 천천히 걸었고 영어를 겨우 예스랑 노만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하는 순간들은 무척 달콤했다. 우리는 소통하기 위해 손짓 몸짓 온갖 표정들 심지어 내가 거의 알지 못하는 스페인어까지 동원했다. 깊은 대화는 불가능했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 스윗해서 바디랭귀지만으로도 대화는 충분히 즐거웠다.
어느날 알베르게 식당에 한국인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단체로 온 것인지 여기서 단체가 된 건지 모를정도로 단합력이 대단해 보였다. 식당의 거의 반이 한국인 단체였고 며칠동안 내내 마주쳤던 외국인무리가 나머지 반이었다. 물론 나는 홀로 겉돌았지만. 그렇게 식당은 두 무리로 나뉘어져 있었고 외국인 무리에서 전에 내가 엄마와 아들로 오해했던 그 여성분이 외국인 무리를 위해 요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드디어 용기를 내어 외국인 무리가 저녁을 즐기고 있는 식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재밌게도 한국인 무리의 몇몇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반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뭔가 어색하고 뻘쭘했지만 나는 그 모습을 지나쳐 외국인 무리가 둘러 앉아있는 식탁으로 곧장 갔다. 그리고 가장 성격 좋아 보이는 여자애 A에게 함께 즐길 수 있냐고 물었고 그녀는 물론이라고 했다.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한 발자국 도약한 기분이었다.
다음 날 더 신나는 일이 일어났다. 같은 무리가 또다시 같은 알베르게에 모였다. 게다가 전날 함께하는걸 승락했던 A의 그룹이 길을 헤매는 걸 발견하고 내가 길잡이로 활약하는 영광까지 누렸다. 우리는 저녁을 같이 먹진 않았지만 식후땡을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때 인상깊었던 라디오 디제이 아저씨가 왼손에 담배를 들고 한 모금씩 뻐끔거리며 허리를 흔들면서 일장 연설 같은 걸 했는데 거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몸짓이 무척 재미졌다. 안타까운 건 그 즐거운 모임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두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알렉스는 항상 유끼와 함께 사라졌고 엠마누엘은 알베르게에서 조차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하루종일 불어 눈도 뜨고 있기 힘들었던 날, 지쳐버린 나는 조금 이르게 짐을 내렸다. 숙소 앞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드디어 엠마누엘이 나타났다. 그는 여전히 천천히 걸었지만 열심이었다. 그는 더 걸어가서 어느 무리와 함께 할 거라고 했다. 나는 아마도 그게 그와의 마지막임을 직감했다. 스윗한 나의 엠마누엘, 왜 나는 그를 따라 다음 마을로 이동하지 않았을까. 나는 도저히 그를 그냥 보낼 수 없었다. 난 그에게 작별 포옹을 했고 그도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그날 밤 나는 혹시모를 그와의 제회를 기대하며 스페인어를 공부했지만 역시나 그에게 스페인어를 뽑낼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2025년 7월 21일 다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