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내 풍기는 남자

by 해오르

아직 날도 밝지 않은 새벽, 아침을 해결하기위해 알베르게 앞 카페로 갔다. 전날 알베르게에서 미리 지불한 아침식사를 요청하자 작은 크로와상 하나와 머핀과 잼, 오렌지주스 그리고 커피가 나왔다. 충격적이었다. 쩐지 식사가 3유로 밖에 안 한다 했다. 알고보니 스페인의 아침식사는 대체로 이런식이었다. 간단히 구운 빵과 버터와 잼, 그리고 주스 혹은 커피가 아침 메뉴의 전부였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이런 아침문화가 익숙하지만 당시의 우리집은 밥과 국, 최소 3가지 반찬 등으로 갖춰진 한식이 아침이었다. 여력이 안된다면 라면을 김치와 함께 먹거나 그도 안 된다면 그냥 굶었지 빵과 커피로는 입맛만 돋울 뿐이었다. 그래도 계속 먹다보니 나중엔 익숙해졌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스페인식 아침식사가 그리워져 자주 그렇게 먹고는 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아침식사가 있다. 숙소가 두 곳 뿐이었던 작은마을에서, 묵지않은 숙소에서만 아침을 주었기에 그쪽으로 먹으러 갔었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커다란 식탁 주변을 메우고 있었고 나도 빈의자를 찾아 앉았다. 식탁 위엔 살짝 검게 그을리기도 한 빵들이 쌓여있는 바구니가 틈틈이 있었고 자리마다 접시와 밥그릇보다 큰 컵과 포크나이프, 일회용 버터와 잼이 놓여있었다. 버터만 바르거나 잼만 바르거나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버터와 잼 둘다 발라야 훨씬 맛있다. 식사를 대접하는 아저씨가 테이블 사이로 흥이난 모습으로 커다란 커피주전자와 우유주전자를 가지고 다니며 컵마다 시원시원하게 따라주셨다.

다시 첫날로 돌아와서, 팜플로나 도시 외곽에 다달았을때, 초록의 논밭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길 위에서 중년의 여성 외국인 순례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직장인들이라 일년에 5일정도 휴가를 내어 순례길기를 몇 년째 이어서 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 아름다운 길을 5일만 걷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하다니, 그리고 내년을 또 기약해야 하다니 서글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5일 연속 휴가를 얻기 힘든 것과 비교해보면 꽤 괜찮은 휴가인 것 같다.

길은 평지만이 아니었다. 하이킹도 종종 필요했다. 첫날 산길같은 언덕을 힘들게 오르고 있는데 뒤에서 침뱉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내가 예민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뒤에서 침뱉는 소리가 들리면 그 체액이 내게 튈것 같은 불안감과 소음으로 인한 불쾌감까지 견디기 힘들어 두통까지 생길 것 같다. 뒤를 돌아보니 회색머리의 백인할아버지였다. 언덕의 꼭대기는 용서의 언덕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다. 아래 사진처럼 길위의 여행하는 모습의 철제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 때는 내 뒤에서 침을 뱉으며 따라올라오던 할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그 할아버지도, 그때의 매정했던 스물다섯의 나도 용서하려고 한다. 사실 용서할 필요도 없는 어리숙한 불평일 뿐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서럽고 야박함을 느끼는 순간은 화장실이 필요한 순간인 것 같다. 순례길도 유럽이다. 그곳 역시 공중화장실은 없다. 순례자들은 카페나 식당을 이용해야 한다. 순례길을 시작한 다음날이었다. 화장실도 이용할 겸 한 카페에서 쉬고 있었다. 어떤 여자가 먹음직스러운 콩요리를 먹고 있어서 말을 걸었다. 그런데 D라고 하는 남자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면서 내 손톱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베를린을 떠나기 직전 발라둔 매니큐어가 반쯤 벗겨진 상태여서 굉장히 지저분해 보였다. 그는 그것을 보며 나쁘다고 지적했다. 기분이 조금 상한 나는 리너가 없어서 못 지운다고 혹시 클리너 가진거 있냐고 되물었다. 아마 그 당돌함에 D는 내게 관심이 생겼던 것 같다.

잠시후 먼저 출발한 나는 마을을 구경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D가 내앞을 가로막으며 지팡이 삼아 가지고 다니던 길고 단단한 나무 막대기를 바닥에 쿵 내리찍었다. 그는 나를 따라잡기 위해 뛰어온 것 같았다. 그 의기양양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는 내게 맥주 한 잔 마시자고 했다. 맥주를 마시면서 내 담배 한 개비를 빼앗아 피었다. 그는 내가 좋다고 같이 걷자고 했다. 나는 그 시절 절을 잘 못 했기 때문에 그러자고 해버렸다.

같이 걷기 시작하면서 혼자 걷는 자유로움이 속박당한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실례한다고 하고는 풀숲으로 들어가서 노상방뇨를 했다. 나는 기겁을 하고 지체없이 가던 길을 가버렸지만 D는 금새 다시 뒤쫓아 왔다. 나 좋다고 따라오는 사람에게 조금 관대해져야겠다고 마음 먹고나자 이번에는 그가 오래된 다리를 보여주겠다며 끌고 가더니 그 다리위에서 강 속을 들여다 보고 있던 나를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

당시엔 남자친구도 없었고 백허그도 좋아했기 때문에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남자의 가벼운 스킨쉽을 마냥 거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뒤에서 안자 그 전까지 은은하게 풍기던 그의 암내가 바로 뒤에서 풍부하게 풍겨왔다. 그 남자의 뭔가 불편하게 만드는 저돌적인 태도나 아무렇지 않게 길에서 배설을 해결하는 야만적인 모습 보다 속 안좋아질 것 같은 그의 풍성한 암내가 더 큰 거리감을 만들었다. 나는 '노'라고 말했다. 한 번만 말하자 그는 계속 냄새를 풍기며 나를 끌어안고 있었고 다시 한 번 더 말하자 드디어 나를 놔주었다. 살작 당혹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태연한 모습으로 그래도 같이 걷는 건 괜찮은지 물었다. '아니, 전혀, 네 냄새도 못 견디겠고 길에서 오줌 갈기는 것도 짜증나고 뭔가 너 불편해 혼자 걷고 싶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거짓말로 괜찮다고 했다. 우리는 다리 아래로 내려왔고 그는 피곤하다며 잔디받에 누워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이전 카페에서 혼자 와인 한 병을 다 마셨던 탓이었다. 나는 그를 두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는 제멋데로인 데다 끊임없이 나를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상태로 몰아붙이는 것 같아서 너무 불편했다.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같은 숙소에서 묵었다. 나는 그를 피해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그 작은 마을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까지 했다.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 쉬고 있었다. 그는 내 침대로 찾아와 파스타를 먹으라고 하고는 먼저 방을 나갔다. 정말 먹고 싶지 않았지만 역시나 거절하지 못하고 그를 뒤따라 주방으로 갔다. 덜익었지만 간은 잘 되어 먹을 만한 라비올리가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먹으며 저녁 고맙다고 예의상 말했다. 그는 괜찮다고 다른걸로 값으면 된단다. 돈 쓸 걱정과 함께 여행을 떠난 나는 뭘 더 뺏어 먹으려는 건지 걱정스러웠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담요나 침낭은 준비하지 않았다. 내 작은 가방에 그것을 위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묵은 숙소엔 담요가 없었다. 첫 알베르게에서는 담요를 받아서 따뜻하게 덮고 잤는데 담요가 숙소에 담요가 없을 수 있다니 너무 충격이었다. 쌀쌀한 밤에 덮을 것도 없이 자다니,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다. 일단은 야상을 덮고 잤지만 그 걸로는 추위를 온전히 막을 수 없었다. 야상은 이불로 사용하기엔 너무 작았다. 슬프게도 담요를 주지 않는 알베르게는 여기 뿐만이 아니었다. 읍내같은 마을에서 담요를 구매하기 전까지 어쩔 수 없이 야상을 덮고 자야 했다. 하지만 담요를 파는 가게를 찾을 수 없었던 작은 시골마을은 그 뒤로도 여러차례 계속되었다. 영화 피아노에 나오는 유대인들이 수용소에서 추운겨울에 추위에 떨며 자려고 노력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다음날, 오전동안 D를 피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아침을 못 먹어서 의도치 않게 공복 유산소 운동을 하게 되었다. 배가고파서 브런치를 먹기 위해 카페에 들렸다. 스페인의 오름렛 같은 계란요리인 또르띠야를 먹고 있었는데 어느새 D가 나타났다. 그는 내가 그를 피한 걸 몰랐던 걸까, 모르는 척 한걸까. 그는 내게 지난날 먹은 저녁 값으로 홍차를 사달라고 했다. 뭐 홍차 정도면 저녁에 비하면 굉장히 싸니까 그냥 얻어먹은 격이나 마찬가지지만, 당시의 치졸했던 나에게는 억지로 얻어먹은 저녁값으로는 너무 비싸게 느껴졌다. 속으로 증오심을 불태우며 사줬다. 먹고 싶어서 먹은 건 아니었지만 D가 정성스레 준비해준 요리로 저녁을 해결해 놓고 차 한잔가지고 기분 상해 한건 인간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카페에서 조금 더 쉬고 싶었지만 D를 피하기 위해 D가 일어나기 전에 출발했다. 정말 빠르게 쉬지도 않고 계속 걸었다. 그늘 하나 없는 길을 구름 한 점도 없이 뙤약볕을 그대로 맞으며 걸었다. 이쯤 되면 그도 더 이상 따라잡지 못하겠지 생각되는 즈음에서 멈추었다. 마침 광야 위에 세워진 트럭카페가 있던 것이다. 그곳엔 이미 세 명의 순례자가 앉아 있었다. 한 분은 암 투병 중이어서 머리카락 한 올 없는 할머니였고 나머지 두 분은 중년부부 한 쌍이었다. 부부는 이미 안면을 튼 사이였다. 그들과 여행일정에대해 얘기하던 중 나는 계획없이 걷는 중이라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 자유로운 여행을 충실히 이행하는 중이었다. 난 좀 단순하게 살 필요가 있어요. 내가 한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 이후의 여행은 좀 더 좋은 조건의 알베르게에서 묵고 싶은 욕심때문에 별로 단순하지 않아졌다.

어느정도 기력을 회복하고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맙소사 어느새 D가 내 옆에서 걷고 있었다. 그는 이제야 내가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걸 확신한 것 같았다. 그는 내게 몇마디 말을 걸고는 안녕이라는 말을 남기고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 갔다. 그렇게 매정하게 그를 피해 도망다닌 건 나였으면서, 안녕하며 돌아서서 가버리는 그가 비정하게 느껴졌다. 그 뒤로 그를 다시 보는 일은 없었다.

처음부터 솔직히 얘기했다면 그런 찜찜한 기분 없이 유쾌하게 헤어질 수 있었을 까? D를 겪고나서 한 동안 낯을 많이 가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알베르게 앞 구석에 세워져있는 나무 지팡이를 발견했다. 그것은 D가 가지고 다녔던 것과 같은 것처럼 보여 그에대한 미안함과 원망 그리고 이상한 반가움이 느껴졌다.


2025년 7월 21일 다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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