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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Nov 30. 2023

- 양말 2 -

잔소리 찬스


초등 아이들이 하교 후에 해야 하는 몇 가지 집안일이 있다. 집청소로 하는 빗자루질과 걸레질, 엄마가 저녁 준비할 때 테이블 세팅과 반찬 세팅(종종 계란찜 정도는 만든다), 그리고 빨래 정리. 빨래정리는 유딩이 때부터 시켰기 때문에 꽤 능숙하게 잘한다.

엄마는 세탁기만 돌린다. 세탁기에서 꺼내서 의류건조기에 넣고 작동시킨 다음 완료된 옷들을 개고 각자 서랍에 구분해 넣는 것까지가 아이들의 몫이다. 우리 집은 하루 입으면 세탁하는 스타일이라 매일 세탁물이 많다. 아이들은 바구니에 한 아름 세탁물을 담아 와서 각자 배분한다. 보통 아들은 자기 옷과 수건 위주로 개고, 나머지는 딸이 한다. 두 녀석이 붙어서 엄청 재잘대며 세탁물 정리를 하는데, 내가 하면 십 분도 안 걸릴 일을 30분쯤 하나보다. 그래도 하는 게 중요하니까 별 터치는 안 한다. 물론 아빠는 “엠티 왔냐!”며 버럭 대긴 하지만. 사실 무얼 해도 아빠의 잔소리를 피하긴 힘들다. 아빠 눈에는 아이들 행동이 어설퍼 보이니까.

가끔 아빠가 세탁물을 정리하는 날이 오면 스스로 빨래를 갤 때보다 더 많은 잔소리를 듣는다. 왜 옷을 거꾸로 벗어놨냐, 왜 옷에 뭐가 많이 묻어 있냐, 양말 좀 똑바로 벗어놔라! 아빠의 잔소리 폭격을 맞으며 아이들은 반격의 기회를 꿈꾼다.

생각보다 기회는 일찍 찾아왔다. 전날 회식으로 술이 과했던 탓에 숙취로 좀비가 된 아빠가 비척비척 1층으로 내려오자, 딸이 기다렸다는 듯이 아빠의 양말을 들이밀었다.


“아빠! 양말을 제대로 벗어놔야지. 안 말랐잖아.”

“맞아, 맞아.”


딸의 잔소리에 맞춰 아들이 맞장구를 쳤다. 양말 발목이 접혀서 열풍 건조에도 끝이 다 마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한테는 양말 제대로 안 벗어놓는다고 잔소리하면서, 아빠가 제대로 안 하면 어떡해?”

“맞아, 맞아.”


아이들은 제대로 기회를 잡았다. 그토록 기다려온 아빠를 구박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술 마시고 실수할 수도 있지.”


아빠가 기가 좀 죽은 것 같자, 아이들이 잔소리를 이어갔다.


“술을 안 마시면 되잖아. 술 먹지 마!”

“먹지 마.”


꿀관전을 하고 있던 나는 속으로 아이들을 열심히 응원했다. 솔직히 말싸움으로 우리 집 남자를 이기긴 힘들다. 그래서 나도 함부로 덤벼들지 않거든. 아니나 다를까.


“니들은 맨 정신에 거꾸로 벗어놓잖아!”


아빠의 한 마디로 카운터를 맞은 아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들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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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과 궁상사이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일상툰입니다.

매주 월(정기) 목(부정기) 업로드하여 주 1-2회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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