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만 끝내야 한다는 확신이 드는 연애
우리 헤어지고 너는 다섯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출근을 했잖아.
요즘 바쁜 시기라 출근하자마자 내 사진 한 번 들춰 볼 정신없이, 바로 업무에 돌입해야 했잖아.
우리 예전에 한 번. 하루하고도 반나절동안 헤어졌을 때, 그 때 너 오전 내내 화장실에서 울기만 했다고 했었잖아.
퉁퉁 부은 얼굴을 숨기느라 점심도 못 먹고 누가 볼까 후다닥 차로 달려가서 마저 울고, 내내 심호흡을 했다고 했잖아.
그러고 오후엔 매번 너를 못 살게 구는 선임한테 혼나기까지 해서, 유난히 힘든 하루였다고 했잖아.
일주일 같던 하루를 끝내고 집에 오자마자 씻고 침대에 바로 누워, 작정한 듯 머리맡에 화장지를 갖다두고, 이제 마음껏 울어도 된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오전에 다 흘려보냈을 줄 알았던 눈물이 또 흘렀다고 했잖아.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서, 고요함 속에서, 네 울음소리가 메아리칠 틈도 없이 자꾸만 터져나왔다고 했잖아.
그러면서도 내가 밥은 먹었을까? 너무 울진 않을까? 잠은 좀 잤을까? 걱정했다고 했잖아.
그리고 그 때와는 크게 달라질 것 없는 모양으로 너는 지금 나와의 헤어짐을 견디고 있을 거잖아.
요즘 부쩍 더 마른 너의 몸통이, 나를 사랑하면서 힘들었다고 하던 축축한 목소리가, 그러면서도 내가 '미안하다'고 '헤어지지는 말자'고 말해주기를 바라던 그 뜨거운 눈이...
오히려 이제는 정말 헤어질 때라고 내게 알려준 것만 같아.
왜 우리는 사랑하면서 힘들어야 했을까. 왜 너는 나를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나는 너의 눈치를 보느라 애가 닳고, 그러면서도 왜 사랑은 끝나지 않아서, 그 쓸모없어진 사랑 때문에 괴로웠을까?
왜 끝내 손을 놓지 못하고, 죽은 관계를 붙들고 있었을까?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네가 좋아하던 우리집 고양이 두 마리가 정신 없게 해주는 통에 하루가 여전히 바빠.
잘 때면 왠지 곁이 서늘해져서 고양이들을 불러 품에 가두고 자. 그러면 괜찮아.
나랑 헤어지면 나보다 고양이들이 더 보고 싶을 것 같다고 하던 너의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시큰하게 해. 그치만 잠깐 그럴 뿐, 난 또 일상을 보내.
친구랑 깔깔대며 통화 하느라 두 시간을 보내고, 밀린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몰아보고, 냉장고 정리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공과금을 납부하고, 일을 적절히 분배하면서. 나는 평소랑 다름없이 지내.
문득 문득 네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흐르다가도, 나는 금방 그 감정에서 벗어나와 고양이들의 발톱을 깎아주어야 해.
나는 너의 힘듦이 자신 없었던 거야. 자려고 누운 이른 밤에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난 네가 힘들어하는 것을, 혼자 짐작하고 애끓느라, 너와 헤어질 수 없었어.
차갑고 뜨거운 관계.
서로를 지치게 하던 사랑.
그런 것들이 되게 볼품없다는 걸.
내용물을 모두 소진한 샴푸를 끝내 끝끝내 펌핑질하고 있는 것처럼, 부질없기만 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은연중에 느꼈나보다.
그래서 네 생각이 날까봐, 너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질까봐 술도 마시지 않고 새벽이 오기 전에 늘 잠에 들어.
이별을 견디기 위해서.
힘듦을 겪고도 다시, 결국 우리는 우리라고, 우리에겐 우리밖에 없다고, 바보같은 감정을 품으며 너를 다시 만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