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은 SNS의 보여주기식 문화와 관련있다.”
유명 일타강사 정승제 선생님이 수업 중 한 발언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샀다.
인스타그램에 호텔에서 아이랑 노는 사진같은 걸 올리면서 허세부리는 경우가 많아서 양육비용에 대한 두려움을 조장한다는 말이다.
마침 EBS에서 ‘인구대기획 : 초저출생’이라는 다큐 프로그램을 보게 돼 채널을 고정했다. 방송에서는 부모와 예비 부모 등 10명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을 진행했다. 저출생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논제를 가지고 몇가지 사항에 대해 접근해 갔다. 출산과 양육비용부터 사교육을 시킬 지 여부와 현재 지출하는 사교육 비용, 앞으로 지출 하고자 하는 비용의 규모 등에 대해 10명의 모집단 사람들이 각기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
미혼인 20대부터 이제 갓 부모가 된 초보 엄마 아빠, 학령기 자녀들을 둘 또는 셋씩 키우는 40대 부모들도 있었다.
여기서 잠깐, '저출산'과 '저출생'의 차이는 뭘까? 둘 다 태어나는 아이의 수가 감소한다는 결과에서는 비슷한 의미지만, 그 원인을 야기시키는 주체나 현상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을 가진 용어들이다.
먼저 출산이란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출산이 감소하는 원인의 주체가 여성만의 문제로 비춰질 우려가 있다. 출생 수 감소는 여성 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에서 야기된다.따라서 저출산이 아니라 '저출생'이라는 용어가 보다 근본적인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아직까지는 '저출산'이 공식용어이지만 명칭변경에 대한 논의는 지난해부터 국회에서 제기되어 활발해지고 있고, 공공 기관이나 지자체에서도 '저출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내가 바라보는 저출생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힌다. 나의 경우 40대 중반에 서울 거주, 대졸 워킹맘, 초등 둘 양육 등의 세대적이고 환경적 배경을 가진 개인으로서의 생각을 정리했다.
첫째, 과도한 양육비용의 부담이 자녀 출산의 걸림돌이다. 치솟는 물가도 문제지만, 사교육 열풍이 주범이다.
다큐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말했다. "맞벌이기 때문에 하교 후에 아이가 혼자 남겨지게 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학원을 보내야 해요" 이건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나 또한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는 그렇게 했었다. 하교 후 오후 시간은 대략 5시간으로, 물론 방과후 수업이나 학원 한두개로 커버되지 않기에, 내 경우 파트타임 시터를 쓰기도 했다. 결국 비용이 수반되는 문제의 연속이지만, 보통 이 지점에서 갈등하는 부모들은 비용을 쓰더라도 아이의 발전과 자신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을 택한다.
여기에서 정승제 선생님이 언급한 SNS로 허세를 부리는 문화도 이러한 현상을 가중시키는 배경 중 하나다.
다만, 문제의 단초를 제공한 게 SNS는 아니다. 그 배경에는 3554세대 부모들의 소비문화가 있다.
소위 밀레니얼 세대인 1980년대 생(현재 35-44세)와 X세대인 1970년대 생(현재 45-54세)들은 경제 호황기에 태어나 소비가 곧 미덕이라고 배워온 세대들이다. 절약하며 살아온 부모들 덕분에 상대적으로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되어서도 외적 내적 자기 계발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는 호캉스 열풍이 불면서 결혼 전부터 친구끼리 연인끼리 호텔 숙박을 하는게 유행처럼 번졌고, 이것이 부모가 되어서도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때마침 각종 소셜미디어가 가세해 화룡점정이 된 것이라고 본다. 인스타그램을 비롯한SNS는 애초에 사용자들의 과시욕구를 자극하고, 시간을 과다하게 사용하게끔 설계돼 있기에 이 함정에 빠져드는 것은 딱히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 어렵다. 인스타그램이 가져오는 부작용이 있다면, 책임의 절반은 자기자신의 몫인 것이다.
둘째, 다큐 프로그램에서 경제학자인 김희삼 교수가 말한 포인트로, 자녀 양육에 있어서 부모로서 기쁨을 얻는 효용가치와 그것에 지불해야하는 시간적•금전적 비용의 가치 중 어느 것이 더 높냐에 대한 문제이다.
13년차 엄마인 나 또한 아직까지 딜레마인 부분을 정확히 짚었다. 이것은 세대나 소득여부와 상관없이 다소 개인의 성격과 성향에 의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 같다. 양육을 통해 얻는 기쁨과 보람, 인간적으로 성숙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대견할 때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지나치게 나의 시간과 에너지, 비용이 소모된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허무해 질 때도 있다. 양가적 감정이 늘 공존한다. 만일 아직 자녀를 출산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후자의 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한다면 자녀의 출산을 피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의 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하면 기꺼이 부모의 세계로 진입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이 더 어려운 것은 두 가지를 미리 저울질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모름지기 기본적인 고충지수가 높지만, 어느 선 이상부터는 이 또한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다. 양육 비용적인 측면에서는 미리 따져 계산해 볼 수 있겠지만, 그 외 시간이나 에너지 소모적인 부분은 어떤 아이가 나올지 알 수 없기에 판단하기 힘들다.그렇다면 첫째를 낳은 사람들에게 둘째 쉽냐고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니다. 첫째와 둘째는 늘 다른 법이니까.
방송에서 김희삼 교수는 자신의 시간이나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수치로 환산돼 더 크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지만, 자녀를 통해 얻는 기쁨이나 성취감, 자기 효능감 등은 수치화 되기 힘들기 때문에 잊혀지기 쉽다고 지적한다. 정말 공감되는 말이다.
한 40대 출연자인 아빠가 말했다."자식을 통해 얻는 기쁨과 양육비의 가치를 비교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이 또한 맞는 말이겠지만, 비교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기쁨을 더 큰 가치라고 여기기에는 대다수 요즘 부모들에게 탑재된 희생의 DNA가 부족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희생을 전제로 하는 양육과 교육은 자칫 과도한 보상심리를 발동시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부모에게는 가능한 만큼의 희생이 요구되고, 자식에게는 합리적인 자유가 보장되는 관계가 맞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아직까지도 여성에게 기울어져 있는 육아와 살림에 대한 부담이다.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시작하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요즘은 가사와 육아노동의 분담이 예전에 비해 합리적인 수준으로 바뀌고 있고, 아빠의 장기 육아휴직도 주변에서 곧잘 볼 수 있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50:50의 수준으로 평등한 정도는 아니다. 맞벌이 부부니까 분담한다는 조건부 분담도 문제가 있다. 전업주부의 노동은 직장을 나갈 경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포기한 기회비용이 엄청나므로 더 인정해 줘야만 한다.
출산부터 사교육까지 부모관과 교육관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은 본래 세대가 안고 있는 배경과 각자가 처한
환경, 가치관에 따라 생각과 판단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만큼 각각의 다양성과 존엄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저출생과 관련된 논의가 더 다양한 미디어와 지자체,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전개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인식과 행동의 변화로, 청년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의 변화로 이어지길 소망해본다.
(사진 : EBS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영상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