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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안키친 May 14. 2022

스물다섯 vs 마흔다섯

가슴 속에 거대한 칼을 품는 나이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자우림의 노래로 들었을 때도 좋았고, 뜨거운싱어즈에서 장현성 배우가 불렀을 때도 좋았다.


이어서 2013년에 나온 자우림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서는 더 감탄했다. 특히 앞부분에 그녀의 사연을 품은듯한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은 예술이다.


“아파트 평수, 자동차 배기량, 은행 잔고, 그의 희망은 이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20대로 보이는 뮤직비디오 속 샐러리맨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나도 그 옛날에는 그런 것 따위를 꿈꾸지는 않았다(지금와서 후회가 없냐고 물으면 없다고는 말 못하지만)


20대의 나는 인생의 2부를 살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첫 직장생활을 하며 시행착오를 겪던 애송이였지만,

 호주와 일본에서는 계획했던 공부는 물론 여행과 연애까지 나름 완벽한 한편의 웰메이드 드라마를 썼던 시절이다.


외국생활을 비교적 많이 경험했던 20대의 나는

나 잘난맛에 살았지만 아직 가치관이 여물지 않았기에

남들이 가는 길에 어서 빨리 한발이라도 걸치려는 생각에만 급급했다.


취직과 결혼. 남들이 하는 걸 하면서 사는게 행복이려니 하는 막연한 생각만 했지 진짜 나를 찾기위해 공들일 줄은 몰랐다.


그렇게 남들처럼 산다고 부산을 떨었건만, 사십대가 된 지금의 나는 어떤가? 내가 가야한다고 생각하던 그 ‘주류’에 안정적으로 들어가 있나? 아니, 들어가고 싶어하긴 하나?


30대에 진짜 직장생활과 연애, 결혼, 출산 등 인생의 커다란 이벤트를 거치며 서서히 진짜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나는 주류보다는 비주류를 선호하고 다수의 모임보다는 소수나 일대일 만남에 강하며, 게으른 천성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꽉차게 썼을 때 어느 때보다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사사로운 감정선이 없어 여자보다는 남자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땐 6개월쯤 지켜보고 결론을 내린다.


육아를 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다혈질 성격이라는 걸 알았다. 엄마가 되기 전엔 누군가에게 그렇게 입에서 불을 뿜을듯이 화를 낼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40대에 들어서면서 독서를 시작했고, 더더욱 나에 대해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고 싶어졌다. 교육관, 경제관, 정치관, 세계관 등 그동안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나의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40대가 되면 그 사람만의 스테레오 타입이 생겨 그 다음은 바뀌기 어렵다는 말도 있지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20대에는 알 수 없던 나만의 색을 찾을 수 있으니까.


20대가 아무 색이나 칠하면 되는 흰색 도화지라면 40대의 나는 도화지에 배경색도 있고 다채로운 색깔의 그림도 그려넣어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을 완성해 가는 느낌이다.

남이 가는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나이.




턱밑에 뾰루지가 돋았다. 20대부터 극심한 여드름성 피부였던 나는 결혼할 때까지도 트러블이 많아 늘 고민스러웠다. 비싼 돈을 들여 피부과에도 다녀보고 화장품을 바꿔가며 미모에 공을 들였건만 그 중 돈값을 한 건 하나도 없었다.


스물 다섯, 한창 회사생활을 하며 동쪽으로 가면 귀인이 나타날까 헛된 꿈만 꾸던 시절이었다. 언제 어디서 내 반쪽을 찾을지 모른다는 각오로 외모에 신경쓰던 시절. 얼굴에 나는 뾰루지는 한시도 못참고 손을 대다가 더 망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마흔 다섯, 지금의 나는 뾰루지가 나도 그냥 놔두는 여유아닌 여유가 생겼다. 그랬더니 글쎄 며칠 있다가 흔적도 없이 말끔히 사라지는 것 아닌가…


며칠 미움의 시간을 견디면 되는 걸 예전의 나는 왜 그토록 못견디고 빨리 없애버리려고 발버둥치다 흉터만 남기기를 반복했는지.


최고의 해결방법은 시간이었거늘. 나이가 들수록 피땀어린 연륜이 쌓이다보면 위기의 순간에 ‘그냥 기다리기’라는 거대한 칼을 품 안에서 꺼내보일 수 있는 것 아닐까?


20대나 40대나 불안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위기의 순간 꺼낼  있는 거대한 칼을 품은 지금이  좋다.


*그림 출처 : 그라폴리오 by 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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