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속에 거대한 칼을 품는 나이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자우림의 노래로 들었을 때도 좋았고, 뜨거운싱어즈에서 장현성 배우가 불렀을 때도 좋았다.
이어서 2013년에 나온 자우림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서는 더 감탄했다. 특히 앞부분에 그녀의 사연을 품은듯한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은 예술이다.
“아파트 평수, 자동차 배기량, 은행 잔고, 그의 희망은 이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20대로 보이는 뮤직비디오 속 샐러리맨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나도 그 옛날에는 그런 것 따위를 꿈꾸지는 않았다(지금와서 후회가 없냐고 물으면 없다고는 말 못하지만)
20대의 나는 인생의 2부를 살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첫 직장생활을 하며 시행착오를 겪던 애송이였지만,
호주와 일본에서는 계획했던 공부는 물론 여행과 연애까지 나름 완벽한 한편의 웰메이드 드라마를 썼던 시절이다.
외국생활을 비교적 많이 경험했던 20대의 나는
나 잘난맛에 살았지만 아직 가치관이 여물지 않았기에
남들이 가는 길에 어서 빨리 한발이라도 걸치려는 생각에만 급급했다.
취직과 결혼. 남들이 하는 걸 하면서 사는게 행복이려니 하는 막연한 생각만 했지 진짜 나를 찾기위해 공들일 줄은 몰랐다.
그렇게 남들처럼 산다고 부산을 떨었건만, 사십대가 된 지금의 나는 어떤가? 내가 가야한다고 생각하던 그 ‘주류’에 안정적으로 들어가 있나? 아니, 들어가고 싶어하긴 하나?
30대에 진짜 직장생활과 연애, 결혼, 출산 등 인생의 커다란 이벤트를 거치며 서서히 진짜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나는 주류보다는 비주류를 선호하고 다수의 모임보다는 소수나 일대일 만남에 강하며, 게으른 천성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꽉차게 썼을 때 어느 때보다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사사로운 감정선이 없어 여자보다는 남자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땐 6개월쯤 지켜보고 결론을 내린다.
육아를 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다혈질 성격이라는 걸 알았다. 엄마가 되기 전엔 누군가에게 그렇게 입에서 불을 뿜을듯이 화를 낼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40대에 들어서면서 독서를 시작했고, 더더욱 나에 대해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고 싶어졌다. 교육관, 경제관, 정치관, 세계관 등 그동안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나의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40대가 되면 그 사람만의 스테레오 타입이 생겨 그 다음은 바뀌기 어렵다는 말도 있지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20대에는 알 수 없던 나만의 색을 찾을 수 있으니까.
20대가 아무 색이나 칠하면 되는 흰색 도화지라면 40대의 나는 도화지에 배경색도 있고 다채로운 색깔의 그림도 그려넣어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을 완성해 가는 느낌이다.
남이 가는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나이.
턱밑에 뾰루지가 돋았다. 20대부터 극심한 여드름성 피부였던 나는 결혼할 때까지도 트러블이 많아 늘 고민스러웠다. 비싼 돈을 들여 피부과에도 다녀보고 화장품을 바꿔가며 미모에 공을 들였건만 그 중 돈값을 한 건 하나도 없었다.
스물 다섯, 한창 회사생활을 하며 동쪽으로 가면 귀인이 나타날까 헛된 꿈만 꾸던 시절이었다. 언제 어디서 내 반쪽을 찾을지 모른다는 각오로 외모에 신경쓰던 시절. 얼굴에 나는 뾰루지는 한시도 못참고 손을 대다가 더 망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마흔 다섯, 지금의 나는 뾰루지가 나도 그냥 놔두는 여유아닌 여유가 생겼다. 그랬더니 글쎄 며칠 있다가 흔적도 없이 말끔히 사라지는 것 아닌가…
며칠 미움의 시간을 견디면 되는 걸 예전의 나는 왜 그토록 못견디고 빨리 없애버리려고 발버둥치다 흉터만 남기기를 반복했는지.
최고의 해결방법은 시간이었거늘. 나이가 들수록 피땀어린 연륜이 쌓이다보면 위기의 순간에 ‘그냥 기다리기’라는 거대한 칼을 품 안에서 꺼내보일 수 있는 것 아닐까?
20대나 40대나 불안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난 위기의 순간 꺼낼 수 있는 거대한 칼을 품은 지금이 더 좋다.
*그림 출처 : 그라폴리오 by 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