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고래는 응가를 조금 번거롭게 합니다.
깊은 바다 속에서 헤엄치다가도 200m 혹은 그 이상의 긴 거리를
헤엄쳐 굳이 수면까지 올라옵니다.
고래 전용 화장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왜 굳이 이렇게 움직이는 걸까요?
그 이유는 수압과 관련이 있습니다.
수심 200m에선 대략 1제곱센티미터 당 20kg의 수압이 가해집니다.
이 압력은 항문에도 그대로 적용되죠.
그러니까 항문을 수십 kg짜리 무게추가 꽉 막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어우 상상만 해도 괴롭네요.
그래서 고래는 바다 표면까지 올라와서 항문에 가해지는 수압을 줄입니다.
수압이 낮아지며 항문이 열린 고래는 시원하게 볼일을 보죠.
그런데 고래의 이 배변 습성은 사실 지구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엄청 중요한 행동입니다.
‘고래 펌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고래가 펌프가 된다는 뜻이죠.
바다 아래에서 먹고 위로 올라와 응가를 하는 게 펌프 같기 때문이죠.
그런데 고래 펌프는 단순히 고래가 먹고 싸는 것만을 가리키는 단어는 아닙니다.
고래 펌프는고래가 영양분을 순환시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고래의 응가엔 철분, 질소, 인 등의 영양분이 풍성하게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식물성 플랑크톤들에겐 좋은 거름이 되죠.
그러니까 고래는 물속 영양분을 물 위로 올리는 펌프인 셈입니다.
또한 식물성 플랑크톤은 지구의 이산화탄소 양을 줄여주는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플랑크톤이 광합성을 하면서 흡수하는 이산화탄소 양이 상당하거든요.
그러니까 고래 펌프는 바다 생태계를 유지시킴과 동시에 지구 온난화를 막는 안전장치인 겁니다.
그런데 이 펌프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고래잡이는 하나의 산업이 되었습니다.
고래에서 나오는 기름이 기계 윤활유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이때 사냥당한 고래의 수가 300만 마리입니다.
전체 고래의 99%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죠.
당연히 고래 펌프의 작동량도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고래가 무차별적으로 사냥당하기 전과 비교하면
고래 펌프가 순환시킨 철분의 양이 남극해를 기준으로
1년에 12000톤에서 1200톤으로, 그러니까 10분의 1토막이 났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또한 고래잡이 산업이 일어나기 전, 고래 펌프로 인해 줄어든 탄소의 양이
2억 1500만 톤이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요.
고래의 개체수 감소가 생태계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죠.
이처럼 고래 응가는 지구 환경에 엄청난 도움을 줍니다.
그래서 어떤 연구자들은 엉뚱해 보이면서도 상당히 의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일명 ‘고래 응가 복원 프로젝트’인데 고래 응가와 성분이 유사한 인조 고래 응가를 만들어서
바다 이곳 저곳에 뿌리는 겁니다.
일단은 인조 고래 응가가 실제로 바다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테스트하는 단계이며,
4~50년 안에 바다를 400년 전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군요.
이걸 보면서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는 옛말이 떠올랐습니다
1900년대 산업 사회에선 고래 응가가 이렇게 아쉬워질지 알았을까요?
만약 고래 응가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사실이 100년 전에 밝혀졌더라면
무자비한 고래 사냥을멈출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주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 논문 : Baleen whale prey consumption based on high-resolution foraging measurements (Nature, 2021)
참고 뉴스 : Scientists Are Crafting Fake Whale Poop and Dumping It in the Ocean (Smithsonian Magazine, 2024)
참고 뉴스 : 이런 변이 있나… 줄어든 고래의 똥, 지구가 위험하다 (조선일보,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