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바 Dec 30. 2023

망하려고 시작하진 않지만 우린 망하니까요

어찌할 수 없을 때에도 의미를 찾고 성장하는 법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러 갔다. 막이 오르고, 첫 장면에서부터 난데없이 눈물이 흘렀다. 오랜만에 찾은 영화관이 그립기라도 했던 걸까.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할 새도 없었는데 뭐가 그리 슬픈지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도대체 나는 왜 우는가 따져보려는 지적 집착에서 다시 영화로 관심을 끌어오기까지 애를 썼다. 큰 불이 났고, 어린 주인공은 엄마를 잃었다. 보편적인 비극이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경주 산내 면소재지에 있던 느림보상점이 옮겨 간 두 번째 매장은 경주의 교외, 현곡에 있었다. 그곳은 공동체 기반사업, 7명이 함께 만드는 공동체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내 키를 훌쩍 넘는 통유리 너머로, 벼를 털어내고 바닥이 보이게 말끔해진 논이 나지막한 앞산까지 노란 카펫처럼 펼쳐져 있었다. 매장 바로 옆에는 종교 건물이 있었고, 매장은 그 건물의 연장처럼 보였다.

    그곳을 계획할 때만 해도 나는 내게 닥칠 비극의 냄새를 전혀 맡지 못했다. 그런 건 이전에 맡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이 잘 되었다면 모두는 분명 아주 멋진 일들을 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일이 잘 되지 않을 경우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채 나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세 달 동안 사람들 사이에 무리가 나뉘기 시작하더니 매장을 오픈할 쯤에는 두 팀으로 쪼개어졌다. 나와 병기의 느림보상점과 5명의 카페. 가장 큰 차이는 돈에 대한 입장차이였다. 돈을 벌어야 하는 자, 그리고 벌지 않아도 되는 자.


    그 당시 나는 두 살배기 둘째를 안고 병기와 함께 인테리어 조감도를 만들고, 주방 타일을 고르고, 신메뉴를 개발했다. 알음알음 모은 돈이 있었지만 50평 매장을 만들고 1년간 나갈 월세를 생각했을 때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병기는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느라 인테리어의 대부분을 스스로 했다. 나는 아이를 안고 있어서 도와줄 수 없었다. 다른 팀원들은 카페 준비를 하느라 인테리어에 참여할 수 없었고 한번씩 페인트칠을 하러 오거나 그들의 남편을 보내 일을 도왔다.

    건물 천장이 너무 높아 난방비가 많이 나올 것을 걱정해 적당한 높이에 나무 루바를 설치하기로 했다. 산내에 계신 아버지가 왕복 60km를 달려오셨다. 높은 사다리 위에 올라가 천장을 메꾸는 두 사람의 목이 미켈란젤로처럼 굽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산 밑 겨울바람이 매서웠고, 난방도 되지 않는 공사장에서 2021년 1월부터 4월까지 3개월 동안 하루 10시간씩 작업이 계속되었다. 아버지는 천장 작업을 하시다 타카(못을 쏘는 기계)가 잘못 발사돼 허벅지에 못이 박히기도 하고, 트럭을 몰고 자재를 사러 갔다 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날 뻔하기도 했다. 병기와 나는 체중이 5kg씩 빠졌고, 어디 아픈 건 아니냐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나는 모아둔 돈이 없었다. 빵집이 일주일에 이틀 혹은 사흘만 할 때였고, 둘째가 태어났을 때는 한 달을 통째로 쉬기도 했다. 매달 조금이라도 벌던 돈이 공사를 시작하고 없어졌다. 새로운 매장이 자리 잡는데 시간이 걸릴 것인데 하필이면 그때는 코로나로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폐업하던 시기였다. 돈에 대한 감각이 무뎌 “잘 될 거야.”라고 근거 없이 낙관하던 나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늘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병기에게 훈계하듯 말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돈을 제대로 벌어본 적이 없었다. 공부할 때는 부모님께 용돈을 받았고, 결혼하기 전에는 혼자 쓸 돈만 벌면 됐다. 저축할 생각은 없어서 조금 벌고 조금 쓰고 그렇게 살아졌다. 결혼을 하니 병기가 벌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았던 터라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의 역할이 나뉘었다.

    그래서 카페의 사람들이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한다’라고 했을 때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되는 적자(실제로 그랬다)에도 이 매장이 버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물론 카페는 비영리단체의 후원금을 받고 있었으니, 버틸 수 있느냐는 질문은 빵집, 즉 나와 병기가 풀어야 할 문제였다.

    옮긴 매장은 상권 분석을 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는 곳이었다. 인구가 줄어가는 조그만 마을 한복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건물이라 인테리어를 전부 새로 해야 했고, 월세와 유지비는 전 매장의 7배가 넘었다. 병기가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나는 까막눈이었다. 의미 하나만 좇아 뛰어든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일 하고, 밥 먹고, 아이 키우고, 그동안 잘 사는 법을 찾아 그리 헤맸는데 드디어 그 실현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빵을 팔아 공동체를 지원하고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된다면, 내가 좇던 의미가 없어진다면, 나는 그저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일 뿐일 테다.


    자책할 시간조차 없었다. 매장은 문을 열었다. 돈도 의미도 사라진 곳에 나는 매일 일을 하러 나와야 했고 도망치지 못해 서 있었다. 공포가 내려앉았고 나는 생존의 위협을 느꼈다.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었다. 매일 밤 병기와 나, 울분을 토해내는 외로운 두 영혼이 서로를 껴안고 위로해 주는 게 다였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출근하는 길, 앞문으로 들어갈지 뒷문으로 들어갈지 고민한다.

    ‘사람들이 와 있겠지. 방금까지 내 험담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싶지 않아. 뒷문으로 가야지. 그래도 안에 있으면 분명 마주칠 건데, 뒷문으로 갔다가 나중에 마주치면 민망하지 않을까. 불편해하는 티를 너무 내는 거 같잖아.’

    이런 식의 대화가 내 안에서 온종일 이어졌다. <상처받지 않는 영혼>에서 마이클 싱어는 그것을 ‘지껄임’이라고 불렀다. 나는 걸어가다 넘어져있는 표지판만 봐도 온갖 생각들이 떠오르곤 했다. 누가 일부러 넘어뜨린 건가? 우리 간판도 넘어뜨려 부서지면 어떡하지? 그럴 때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이런 생각들이 빠른 속도로 생겨나는 것을 보며 나는 이것이 내 머리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뜻인 줄만 알았다.

살다 보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나는 불안해진다. 그럴 때 등장하는 것이 이 지껄임이다. 사람들이 내 험담을 하고 있었을 거라고 말하고, 그런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싶냐고 말하고, 앞문 대신 뒷문으로 가면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고 떠들어댄다. 마치 내가 생각만 하면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제할 수 있다는 듯이. 그러나 그럴 수 없다. 계획과 삶의 틈, 그 사이에서 불안이 만들어진다.

    불안을 없애고 싶다면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래? 뭔지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지 뭐. 매일 뒷문으로 숨어 들어가며 죄짓는 기분을 느끼는 것보다야 낫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앞문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입이 바짝 마르고, 쇄골 아래쪽에서 시작된 기분 나쁜 통증이 온몸으로 퍼졌다. ‘나 불안해하고 있구나’ 그렇게 알아차리자 불안은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앞문을 연다. 사람이 보이면 인사한다. 주방까지 걸어 들어간다. 끝? 해냈다.

    지껄임이 사라진 마음은 고요했다. 그렇다고 사람들 간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서로 대화를 하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내가 조금 더 일찍 책을 읽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생각했다. 매장의 얼어붙은 분위기, 불편한 감정, 그런 것들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연습을 하며 일을 하러 나갔다. 이맘때 내 일기에는 ‘잘했어’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 고요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지, 잘했어. 잡채밥에 래디시피클을 점심으로 차려줬지, 잘했어. 긴장되지만 적당하게 가십거리로 대화했지, 잘했어. 스스로 계속 잘했다고 토닥였다. 그래서 그곳에 내가 있는 의미를 찾고 있었다. …… 그리고 그럴수록 버림받은 느낌은 커져만 갔다.



    몰랐던 것을 깨닫고,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나는 한 손으로 무언가를 꽉 붙들고 놓지 않고 있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사과하고 싶었다.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깨어있지 못했던 나를 너그럽게 봐주기를 부탁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고 싶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 하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집채만 한 두려움이 몰려와서 그대로 나를 집어삼켰다.

    전쟁터에서 책을 펼쳐놓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책은 총을 어떻게 쏠 것인가에 대한 것도 아니고, 요새를 얼마나 견고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 겨눠지고 있는 총구에 가까이 다가가며 총을 내려놓고 헬맷을 벗으라고 했다. 이건 미친 짓이지! 죽으라는 소리잖아. 다른 방법은 없나? 나에게 거듭 물었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누군가 한 말이 떠올랐다. '용감하다는 것은 두렵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아가기 때문에 용감한 것이다.'


    식은땀이 나고, 손이 떨렸다. 심호흡만 수십 번. 그만둘까만 수백 번.

    그렇지만 나는 책을 과하게 믿었고, 내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나는 용감해질 수 있을까.

    사과를 해보기로 했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나는 컴퓨터로 대본을 작성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릴 것 같았다. 배우가 대사 연습을 하듯이 나는 내가 할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때까지 외우고 또 외웠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적어놓은 대본을 읽었다.

    상대에게 먼저 전화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식은땀을 닦았다. 홀로 카페에 앉아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실없이 웃기 시작했다. 분명 내가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기쁜 걸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도파민의 황홀감이 손끝과 발끝까지 저릿하게 만들었다. 나는 고통을 이겨내었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재미없다며 덮었던 책이 다시 읽히고, 언젠가 받았던 조언들이 이해되는 시점이 있다. 이를 작가 비비언 고닉은 ‘준비된 순간’이라 불렀고 그것은 삶의 가장 큰 수수께끼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홀로 카페에 앉아있던 그 순간 나는 그 수수께끼의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상황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한동안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를 한 것뿐이었다.

    사과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사과가 ‘진정성이 없다’고 말했다며, 누군가 내게 전해주었다. 그때의 일은 그런 식이었다. 누가 어떤 말을 했다더라.

    상대가 말한 ‘진정성이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내가 사과하는 태도를 말한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미안하다고 얘기한 후에 일종의 승리감을 느꼈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한 단계 성장했다는 느낌, 그것이 좋았다. 애초에 두 번째 매장을 시작할 때 계획했던 일의 의미와는 달랐지만 내가 스스로 새롭게 찾은 것이었다.

    상대가 원한 것이 그의 감정이 공감받는 것이었다면 아마 실망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만 이야기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그때의 진실된 나임은 분명했다. …… 어쩌면 그 사람이 나를 조금 더 오래 미워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 내가 틀렸다. 우리 잘해보자.’ 그 말을 하기 위해서 나는 매번 나의 모든 것을 뜯어고쳐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좋지 않을까, 해봤자 변하는 것도 없잖아, 왜 나만 사과해, 그런 생각들을 마주하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브레네 브라운이 '용기를 선택한 순간, 우리는 실패, 실망과 좌절, 심지어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까지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서 용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기가 드문 것입니다.’라고 한 말이 위로가 되었다. 나는 처음 사과를 한 날의 황홀감을 잊을 수 없었고, 그 느낌을 기억하며 수백 번의 작은 용기들을 내었다.


    내가 낸 마지막 용기는 ‘듣기’였다. 내가 아주 못하는 것이었다. 자신 없었지만 외면할 수도 없었다. 이미 붙어버린 용기의 가속도가 내 등을 떠밀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통스러웠지만 필연적으로, 나는 상대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그날 그와 내가 앉은 카페의 창밖으로 보이던 논이 푸른색이었는지 노란색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선언했다. 듣기만 하겠다고.

    상대가 말했고 나는 들었다. 적어도 들으려 애썼다. 두 가지만 떠올리자, '그랬구나’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러나 여지없이 대꾸할 말이 끊임없이 솟아올랐고 정신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건 아니지!’하며 끼어들고 싶을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심호흡을 했다. 그 때문에 상대의 말을 중간중간 놓쳐버렸다(멀티태스킹이 안 된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입술을 깨물지 않아도 듣고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적극적인 반응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분명 듣고 있었고 들으면 들을수록 할 말은 없어졌다. 그러면 다시, 듣게 되었다.

    두 시간가량 지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대에게서, 이렇게 만나니 좋다고 자주 이야기 나누자는 소감을 들었다.


    몇 달 뒤 다시 돌아온 두 번째 겨울, 나는 일을 그만두었다. 비난과 책망으로 마무리하는 대신,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을 상대의 안녕을 빌어주었다. 가끔 일기장에 적어 둔, 그때의 마지막 인사를 읽으며 지금도 부끄럽지 않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해하곤 한다. 가게는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보았지만 미련은 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주인공은 엄마의 죽음이라는 삶의 고통에 저항한다. 마음을 닫고, 거만하게 굴고, 스스로 상처를 낸다. 그러다 두렵고 두렵지만 고통을 마주하기로 선택하면서 모험이 시작된다. 틀어진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따라 그의 삶이 흐른다. 성장의 고통을 마주해 본 사람이라면 어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



선택


매거진의 이전글 간단하게 아침을 준비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