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옷을 입어야 할까?
이제 류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차례다.
우리는 대학교 때부터 사귀었던 사이라 처음 뵙는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뵌 지가 5년이 훌쩍 넘었으니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광주에 계시고 어머니는 평일에는 서울에, 주말에는 광주에 계셔서 주말에 광주로 찾아뵈었다.
선물은 지난번에 내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때 화과자로 결정해 두었으니 이번엔 선물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이번 단계의 고민은 '무엇을 입을 것인가?'였다. 인사를 드리는 날짜는 2월 19일로 매우 추웠으니 겨울옷 중에 선택해야 했다.
우리 집은 분위기도 옷도 캐주얼하지만 그의 집은 매우 정중한 편이다. 혼자 고민하다가 그에게 물었더니 블라우스가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평소에 블라우스를 좋아하지도, 잘 입지도 않아서 마땅한 옷이 없는 데다가 이 추운 겨울에 블라우스를 입는다니.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목폴라에 가디건, 긴치마에 코트를 골라 입었다.
우리의 일정은 용산에서 아침 9시 22분에 KTX를 타고 내려가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부모님 댁으로 이동해 커피를 한 잔 마신 뒤 오후 4시 34분 기차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이번 모임에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우리 네 명 외에 한 명의 가족이 더 참여한다는 것이었는데, 바로 조카 '율'(누나의 7살 딸)이었다. 누나와 매형이 모처럼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율을 부모님께 맡기고 여행 중이라 우리의 식사에 함께하게 된 것이었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았던 율을 실제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식당에 먼저 도착해 있다가 부모님, 율과 반갑고 정중한 인사를 나눈 뒤 식사를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자리지만 그의 부모님이 약 40년 전 처음 만나셨던 시절부터 결혼하시게 된 이야기 등을 들려주셨고 중간중간 율을 챙겨야 했기 때문에 어색함 없이 식사를 마쳤다.
부모님 댁으로 이동해 조카를 위해 준비해 간 선물(캐치 티니핑 장난감)을 전했더니 율이 무척 좋아했다. 율에게 선물을 줘야 한다며, 내가 주는 척하라고 류가 준비한 선물이었다. 나는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 티니핑이란 캐릭터들을 조카로부터 하나하나 소개받고, 손을 잡은 채 집 구경도 했다.
화과자와 커피를 마시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기차역으로 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고 나는 잊지 않고 그의 부모님께 큰절을 드렸다. 물론 류와 함께.
그의 부모님은 무척 행복하신 듯 보였다. 언제 결혼하나 전전긍긍하던 자식이 드디어 애인을 데려왔으니 감격스러우실 만도!
별 일 없이 그의 부모님께도 인사를 마치고 나니 돌아오는 KTX에서의 마음이 편안했다. 그는 피곤했는지 내 어깨에 기대 잠들었고, 창문 너머 노을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덧.
나중에 전해 들은 바로는 류의 어머니께서는 나의 옷이 이 자리에 아주 적합한 옷차림은 아니라고 느끼신 듯했고, 아버지께서는 나의 (요즘 애들답지 않은) 소박함이 마음에 쏙 드셨다고 한다. 어느 것도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