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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장 Jun 23. 2024

프로젝트 안암(安岩)

#43. 1-1 안암 외전. ANAM ANAM?

       내 딴엔 꽤 오랫동안 해온 기록이라 쉽게 안암을 시작하기 전이나 시작할 즈음에 내가 했던 고민을 찾아볼 수 있다. 뒤돌아보면 너무 순식간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시간이지만, 그 찰나의 시간 동안 한 블록도 안 떨어진 수많은 상점의 임차인이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상기된 얼굴로 인사하던 그 집 사장님의 얼굴과, 버티기 힘들어 하루를 보내기가 너무 어려웠던 시간들로 가득 채웠던 그 골목의 역사를 떠올린다.

언제나 나였을지 모르고, 지금의 나 역시 언젠가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되는 그 불안함.

그렇대도 눈앞에 주어진 일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1.


2-3년이 넘은 동네 사장님들끼리 마주치면 그런 생각을 안 하기가 어렵다. 

경쟁자인 순간을 한참 지나, 생존자끼리 느끼는 말하지 않는 전우애랄까. 

서로를 모르는 것 같아도, 웬만하면 다 안다. 

몰 MD 분들한테 우리 가게 추천해 주신 분이 L베이글 대표님이란 얘길 들었을 땐 당황하기도 했다.

마주치긴 어렵지만 그냥 막연히 응원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다.


뭐 이런저런 감흥을 느끼는 일이 종종 있는 게, 동네에서 자영업자 중 가장 잘하신다고 생각한 사장님이 있다. 그분의 가게는 항상 5.0점을 받는 가게고 우리 가겐 내가 국밥 파는 주제에 싹바가지 없게 군다는 얘길 종종 듣는 가게라 신묘한 경지에 이르신 분이로구나. 나랑은 차원이 다르네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카테고리가 달라 경쟁심까진 생기지 않았었지만 어떻게 저렇게 칭찬만 들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정말 우연히 그 사장님께서 우리 가게를 확인하는 모습을 보았다. 

뒷모습에,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네 싶었다. 

워낙 잘되는 가게라 별생각 없다가 이번에 확장 이전을 하셔서 우리 가게 쉬는 날도 영업을 하시길래 찾아갔는데, 마침 계시길래 인사드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하고 있는 고민과, 그 생각과 철학을 듣는 좋은 시간이었고, 많은 공감을 했다. 

한 번은 보고 인사 나누고 싶었는데 이렇게 잘 해내시는 분은 생각도 참 건강하구나. 

이 얘기를 굳이 한 이유는, 그 분과 내가 고민했던 문제가 같았고 그 선택이 오묘하게 조금씩 달랐기 때문에.

몰의 확장성에 대해 나는 못한다였고 그분은 해보겠다 하고 하셨다.
확장 이전에 대해 나는 못한다 이고 그분은 하셨다. 
키오스크 사용에 대해 둘 다 사람이 서비스하는 것에 본질이 있다고 느꼈으나 그 선택의 방향성이 달랐다.

양쪽 중 어느 곳이 옳고 그르길 원하지 않는다. 

나는 둘 다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선택에 따른 새로운 결정들이 앞에 주어질 뿐이다. 


고민이 같았다. 

비슷한 연령대에 비슷한 자본규모로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우리가 시장을 본 눈이 같았고, 그 해결책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비슷했다. 둘 다 대중음식이 가진 가치를 생각했다. 차이점은 그는 기존 카테고리의 탑 플레이어가 되고자 했고, 나는 카테고리를 다른 시선에서 보고 접근하길 원했다. 그 과정의 만든 결정의 차이에서, 그는 카테고리의 탑이 되었고 인정받았다.

그리고 우리 가게에서 그는 창의성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었다고 했다. 

이제야 처음 인사했지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구나. 

나는 그의 확장한 공간을 방문해 그가 손님을 생각하는 방식을 많이 이해하고, 다시금 겸손해졌다.

이런 사람이 잘되는 거구나 하는, 그런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그의 말 중 내 가치관과 가장 같은 이야기는, 그가 몰에서 영업 경험으로 얻은 것들을 이야기할 때였다. 

그러니까 그 역시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개선과 과정으로 그것들을 받아 들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역시 멋진 이야기들이다. 

그 덕분에 그의 가게 방문자들이 가진 경험이 그렇게 행복하고 다채로운 것이겠지. 


-

앞서 살짝 얘기했지만, 그는 확장 이전(둘 다 운영한다.) 했고 나는 개선 공사를 하기로 했다.

이전을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개업 목적 그대로 북촌의 경험 중 일환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그에 맞게 그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라고 믿으며 아이들 역시 방문 가능한 식당이 되려고 한다. 


맨날 그래서 욕먹는다.

손님 욕 같아 적진 않았었지만 이 분, 글 마지막에 가격 올린 것부터 서비스 이해도에 대한 비아냥까지 곁들이셨다. 

앞서 적은 내용대로 종종 싸가지 없단 얘길 듣는 이유는, 자영업자 주제에 억울한 걸 참지 않아서다.

어찌 됐든 안암은 그 미래를 꿈꾸고, 나 어렸을 적 떠올리는 어떤 음식점처럼 누군가의 기억에 남길 바란다.

그래서 아이가 식사하고 있는 식당을 바란다. 

10년이 넘는 식당이 되기 위해선, 그 손님이 10년이 넘어도 찾아올 수 있어야 한다. 

이거 여기 아직도 있네? 나 아빠랑 왔었어하고 말할 수 있게 버티는 건 내 몫이고. 

안암이 노포가 될까 봐 두렵진 않다. 그건 정말 큰 영예다. 

핫한 브랜드 좋다. 대중성을 가질수록 엣지는 옅어지겠지만,

헤리티지 있는 브랜드가 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역시 그 골목의 역사를 지키고 있다는 뜻이니까.

-

#2

    공사 기간 안암은 10일 간(예정) 문을 닫는다. 

해서 공사 내용을 인테리어 해주실 스튜디오 분들과 주고받는 중, 실장님이 말했다.

"성수로 저희 이사 가는데 사무실 텅텅 비어 있어요ㅎㅎ, 팝업 하세요 장소 빌려 드릴게요"

웃으라고 한 얘기였던 것 같은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마인드 노드가 휙휙 그려지더니 해야겠단 결론이 났다.

시간이 한 달쯤 지난 지금 공사 준비랑 팝업 준비에 헉헉 대던 내가
담당인 디자이너 분께 "책임지세요!!!" 하면
"아니 진짜 할 줄 누가 알았어요!!!" 하신다.

한동안 기록을 못했던 이유도 그렇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그건 팝업 끝나고 이야기하기로 하고, 

그 팝업이 일주일 채 안 남았다. 다음 주 이맘때면 짐을 옮기고 공사를 시작할 준비에 바쁠 거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때 우리 팝업에 필요한 이런저런 디자인을 하셨던 분께 이런 문자를 받았다. 

팝업 디자인을 하면서 로고디자인만 요청하려다 여러 요소가 잘 맞아 함께 팝업 디자인을 대부분 진행하셨던 디자인 팀.

원래 본점에 필요한 요소에 대한 디자인을 요청하려고 했는데, 레퍼런스나 기타 요소를 요청드리기가 너무 어려워 살짝 미뤄뒀다. 요즘 내가 너무 과부하라, 공사일정에 맞춰 보려던 본점 디자인 변경안에 대해 일단 비워두기로 했다. 


처음 본점 오픈을 할 때 마주했던 디자이너님 역시 그랬지만, 생각을 구체화시키시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이 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하는 모든 일들에 그저 감사. 


하도 할 얘기가 많아 글이 길지만, 시작도 못했다. 

어찌 됐든 바쁜 와중에 브런치에 글을 남기는 것은, 저 문자의 내용을 보면서 팝업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 기록해두고 싶었다. 나는 진심으로 관계의 연속성이 가진 가치를 믿는다. 

저 사람들은 저 사람들의 인생에서 밝게 빛나는 사람들이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현재 내 머릿속에만 있을 모든 것들을 구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 


이번 역시 그렇다. 가게를 열 때만큼 열심히 준비했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번 팝업에 설령 목표한 내용들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 준비가 부족해서이고, 내가 모자라서이다.

나를 도운 사람들은 부족하지 않고 넘치도록 도와주셨다. 

부족했다면 내 능력과, 내 체력과, 내 생각일 테다. 

업의 시간이 3년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나 스스로 뭔가 해내지 못한다. 

잠깐이라도 떠올린 아이디어를 이젠 오래 기억하지도 못해,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스티브 잡스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 아이디어가 우스워도 그 기술을 가진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구현해 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나보다 잘난 사람들을 괴롭힐 수 있을 뿐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관계의 영속성을 믿진 않지만 그 연속성이 가진 가치를 믿는다. 그건 내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말 만약 이번 팝업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나는 이 시도의 연속성이 가지게 될 힘을 믿는다.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난 이 팝업을 넘어서고 내 부족함을 더 깨닫고, 수정할 거다. 

안암에서의 업을 영위하는 만 3년 동안 내가 봐온 것들은 그렇다. 

우린 이번에 우리가 오픈할 때보다 훨씬 큰돈을 쓰고, 나의 생각이 가진 상상력에 더 큰 에너지를 쓰고 있다.

어쩔 수 없음으로 점철되어 있던 직원 고용에 관한 것들 역시, 그들의 미래가 이곳에 사용되는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 훨씬 책임 있는 직원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는 것 역시 나의 능력이 아니다. 하지만 떠나게 된다면 그건 내 문제겠지.

해결해야 할 문제의 값이 점점 커지고, 리스크도 커지는 걸 보니 나 역시 성장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

#3.

이번 팝업은 안암의 국수 팝업.

안암의 기획 첫 번째 음식이 국수였는데, 그게 팝업이라는 가벼움과 잘 어울려 서문시장에서 먹었던 잔치국숫집을 이미지화하고, 홍콩 음식점들을 모티브로 잡아 쌓아 올렸다. 

우리 음식을 떠올리는 북촌/고수/초록색 중 북촌이라는 장소적 특성을 벗어나면, 

우리 브랜드가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가? 가 첫 번째, 

(그래서 우리 팝업 이름이 이름을 두 번 반복한 ANAM ANAM!?이다.)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것들에 얼마나 반응시킬 수 있는가? 가 둘째,

그리고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우리 음식의 이미지를 얼마나 확장시킬 수 있는가? 가 셋째다.

원래는 푸드트럭이었는데 그게 참 제약도, 제한도 많아 불가능해졌다. 경동시장에서 했으면 진짜 기가 막혔을 텐데. 안암에서 컴백홈 팝업, 연세대 앞에서 안암 아남? 시즌 투 팝업도 할 예정인데.. 혼자 재밌다.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 방향성 제시 같은 내부 브랜딩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손님과 안암 이 둘만 생각했다. 이는 우리가 가질 확장성 또는 다음 브랜드에 주요한 문제로, 우리가 현재 이루고 있는 인지도는 AREA에 국한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차기 브랜드가 포지셔닝해야 유리한 방향성은 안암과의 연계성인가? 독립적 인지도 향상 후 결정할 문제인가? 또는 원 소스 멀티 유즈가 가능하도록 브랜드 확장이 가능한가? 등 그 나름의 여러 질문에 접근성을 가진다. 


  가게에서 사용될 음식들의 피드백을 받고, 이미지로 있던 기획에 맞게 서비스를 진행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우리가 완전 생짜 초보인 구역에서 장사를 한다는 건 엄청나게 큰 리스크다. 그렇지만, 나는 실질적 경험으로 다음 스텝에 대한 상상이 아닌 구체화된 기획을 가지게 되겠지? 아니면 일주일 정도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있거나. 아마 다음 글이 올라올 즘이면 그 팝업이라는 것의 피드백이 잔뜩 생겼을 때라 글이 더 길어지지 않을까.

가게에 음식에 한국적 변주와 한국 외적 변주를 곁들임 음식으로 차용했다.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 진 평생 궁금해야 할 숙제일 거다. 

단지 나는 등대처럼, 내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이번 팝업 역시 완벽하진 않지만 나의 지향점의 가치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팝업 후의 내가 어떤 경험을 쌓게 될지 일주일 남은 지금도 여전히 모른다. 

무조건 확실한 건 오픈을 하지 않고 마케팅하는 방법을 체크하고, 그 오래된 시간의 마케팅을 하는 모든 행위가 여러 요소로 큰 꿈을 꾸고 있는 내겐 엄청나게 도움이 될 일이다. 

모르는 일에 대해 사람 객체 하나가 해낼 수 있는 일은 오직 사고하고, 증명하며, 실패를 개선해 나가는 것뿐이다. 칼을 들었다 놔서 손을 베면, 그 손가락을 피해서 다시 내려놔야 다음 칼질을 진행할 수 있다. 

손 베는 거 무서우면 칼질 못하지.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렇게 살 거다. 

나는 언제가부터, 그렇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어쨌든, 7월 1일부터입니다. 국수 한 그릇 하러 오시고, 피드백으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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