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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장 Aug 21. 2021

프로젝트 안암(安岩)

#05-1. 나는 그곳을 인테리어 하기로 했다.

기존 가게에서 팔던 음식의 결이 달라 인테리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무리지만, 그렇대도 인테리어를 해야만 했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겨우 인테리어 비용을 마련했다. 

많지 않은 인테리어 비용과 제한적인 한옥의 구조, 공사가 많이 몰리는 계절 그리고 코로나로 인한 자재값 상승 등은 안 그래도 부족한 비용의 한계를 더했고, 다양한 이유로 거절당했다. 

덕분에 난 18곳의 인테리어 업체들과 미팅을 했다. 

세비야 테니스 클럽에서 안암
변화과정 기록 01



감사하게도 대부분의 팀들은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주시며 친절히 내용을 설명해주셨고, 미팅 내용과 실측한 내용을 토대로 자기들이 맞출 수 있는 견적과 디자인을 보내주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솔루션을 받게 되었는데, 공통적 분모를 찾아내면서 과정에 대한 이해를 조금 할 수 있었다. 

장마와 뜨거운 여름에 대부분의 업체들은 공사가 밀려 있었고 소규모 공사를 해줄 수 있는 팀은 세 군데 정도로 보였다. 일이 없거나, 규모가 큰 회사 거나, 구라거나. 

원하는 바를 설명하기 위해 그려둔 상상화(?) 

가견적이지만 견적서를 꼼꼼히 살펴보고, 미팅한 업체 중 일을 진행하고자 하는 형태와 먼저 신경 쓰는 디테일들을 확인해보니 시공업체들 중 장난을 치려는 팀들을 흐릿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몇몇 팀은 구색만 갖춘 견적서를 보여주며 최저가 시공을 외쳤지만 내 귀엔 견적서에 쓰여있는 금액은 계약금에 다를 바 없다는 말로 들렸다. ??니가 해달라며??라는 말이 벌써부터 들리는 기분이었다


인테리어 업체 선정을 하는 과정에서 시공에 사용 가능한 금액이 마땅치 않아 민망한 순간이 꽤 많았다.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없으면 없는 대로 해야 하고, 돈이 없으면 뻔뻔하기라도 해야 한다.


시공업체 선정에 답답해하다가 얼마 전 성수에 파스타 바를 오픈한 동생에게 연락을 했고, 자기 가게를 시공해주신 대표님께 조언을 받아보라 하여 대표님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견적서를 보여주면서 이렇다 저렇다 말도 안 하고, 듣는 이에게 설명이 친절한 편도 아니었다. 

차곡차곡 설명하게 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부분이 신뢰가 가는 부분이다. 


다양한 이유로 내 임대차 계약이 몇 번 깨지고 붙는 동안 일이 잔뜩 생긴 대표님이 일을 맡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고, 심지어 장마 때문에 다른 공사가 밀리기까지 해서 시공일도 점점 미뤄졌다. 

못한다, 불가능하다, 자기 죽으면 어떻게 하냐 하는 대표님께 애걸복걸해서 공사를 진행해주시기로 했고, 덕분에 나는 약간 늦게나마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변할 것인가?

선비라 남한테 아쉬운 소리 못하고, 효율적인 게 좋고, 의심도 많은 내가 대표님께 어려운 공사를 부탁했던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그날 공간을 보러 온 대표님이 모서리를 보고 아 여긴 이렇게 하면 예쁘겠다, 하면서 혼잣말하던 장면 때문이다. 

그게 뭐라고 해야 하나, 하고자 하는 것보다 멀리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해달라고 해서가 아니라 해야만 해서인 사람들. 나의 직업에서도 그랬고, 대부분의 직업에서 타인이 원하는 만큼만 한다의 선을 넘어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겐 누군가의 요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만족할 완성도가 중요하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런 사람에게 내 첫 가게를 맡길 수 있었고, 손님들이 마주하게 될 이 가게의 첫인상을 만들어 줄 유능한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완연히 신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행운이 따라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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